근래에 나는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자랑하고자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아마도 1달 가량 무기력하게 OTT를 보던 행위에 지친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은 본성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중학교 때 난 학교 도서관뿐만 아니라 구립 도서관에 주말마다 가서 3시간 넘게 앉아 소설을 읽었다.
중학교 땐 주로 폴 오스터, 루이스 세풀베다, 아멜리 노통브의 책을 탐독했다.
언젠간 나도, 이런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책 한 권을 더 사서 읽기 시작했다.
요새는 대학 때 읽었던 토마스 만의 <마의 산>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스위스 산 꼭대기의 요양원에서 펼쳐지던 이야기의 세부 내용은 전혀 기억이 안나는데 왜 자꾸 그 작품이 떠오르는 지 모르겠다.
간혹 꽂히는 책은 금방 읽지만 대부분 사두고 안읽는 책이 쌓여간다.
나만 그런거 같진 않다. 하여간 지난주 후반부부터 문학으로의 회귀, 침잠 중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아직 문학으로 회귀할 힘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한동안은 활자를 읽지 못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한번 꽂히면 다시 읽게 된다.
자기계발 책은 싫어하고 읽지 않는다. 오로지 문학만 읽는다.
독서라는 행위는 사실 주식과 코인을 하듯이 뚜렷한 실적을 기록할 수 없다.
무형의 이야기를 좇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활자를 읽으면서 일종의 회복을 하는게 느껴진다.
드라마와 영화를 보는 것은 일시적 회복, 회복이라는 착각을 안겨준다.
왜냐, 이따금 내 온 정신을 주목하게 하는 스토리와 대사가 있으나 휘발성이 크기 때문이다.
책은 그렇진 않다. 휘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토마스 만의 마의 산처럼 언제든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기 마련이다.
나는 언제까지 책을 읽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