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봄의 불확실성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언제 산지는 기억이 안나는데 침대 옆에 항상 놓여져 있고 표지에는 녹색 바탕에 앵무새가 그려져있다.
작가는 시그리드 누네즈라는 다소 생소한 이름인데, 우연한 계기로 한 유튜버의 책 소개를 통해 그녀가 수전 손택의 아들과 사귀었고 그 기간 동안 알게 된 손택에 대해 회고록을 쓴 작가임을 알게 됐다.
어제는 오전에 매우 불쾌한 경험을 했고 이 글에서 그 일을 기술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루종일 우울하고 불안했으며 화가 났다. 남편은 가치 없는 일은 웃어 넘기라고 했고 안타깝지만 나에게 그 기술은 없는 기술이다.
아침에 일어나 남편과 함께 핸드드립 커피를 마셨다. 마운자로 두번째 주사를 맞은지 3일차이고 드디어 몸무게 앞자리 수가 바뀌었다. 어제는 기분 탓인지 약효 탓인지 모르겠으나 소식을 한 편이었다.
우리 가정은 현재 극단적으로 위기 상태라 볼 수 있다. 나는 1월초 퇴사하여 집에서 영화, 책만 보고 있으며 언제 다시 경제활동을 시작하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태다. 게다가 3월부터는 다시 박사과정에 돌입해야 한다.
근래 1달 동안 고민을 했고 결국 휴학없이 3학기 강행을 결정하였다. 그게 바로 어제의 일이다.
나는 서재도, 내 방도 아닌 옷방 또는 남편의 방이라 불리는 곳에서 생활한지 꽤 됐다.
처음엔 내 방에서 나는 이웃집 TV 소리에 쫓기듯이 이 방으로 대피했던 기억이다. 그러나 이 곳에서 있다보니 이 방만의 안락함이 나에게 일종의 평온을 안겨준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이제는 책 몇 권과 함께 거의 항상 이 곳에 상주한다.
이사갈 날이 얼마 안남았다. 다음주면 2월이 종료되기에, 1달 반 정도 후엔 내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오늘은 아침에 마음 먹고 남편과 도서관에 갔다. 집에서 3분 거리도 안되는 곳에 도서관이 생겼는데 이상하게 혼자는 안 간다. 공을 들여 책을 골라왔고 그 중 하나는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이다.
이 책은 여러번 읽은 책인데 근래 갑자기 떠올랐고 읽고 싶어서 검색했는데 다행이 도서관에 있었다.
그 외의 2권도 골랐다. 하나는 카프카의 책이고 다른 하나는 존 멜빌이었나 처음 보는 작가의 책이다.
남편도 2권의 책을 대여했다.
어제는 극심한 우울함에 빠져들어 거침없이 하이킥을 틀어두었다. 한국 TV를 안본지 오래되었고 원체 그런 개그물을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일종의 생존을 위해 틀었던 것이다. 그다지 웃기진 않았으나 한국 시트콤 특유의 발연기와 중간 중간 이어지는 공허한 인공의 웃음이 나의 잡념은 조금은 잠재웠던 것 같다.
요새 내 삶은 구름 위의 생활과도 같다. 무슨 뜻이냐면, 나 혼자만 비현실의 세계를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랄까. 항상 혼자 있고 혼잣말처럼 간혹 녹음을 해서 유튜브 채널에 올리고 나에게 무한한 사랑을 안겨주는 강아지와 함께 산책도 혼자 나간다. 그렇게 사는 삶에 이미 익숙해져버렸고 이제는 산책길에 무의미한 유튜브를 듣기 보다는 아까 읽었던 책의 구절에 대해 회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눈을 뜨자마자 저 멀리 17년도 회사에서 있었던 일, 15년도에 있던 일 등 아주 예전의 불쾌한 경험이 트라우마처럼 뇌리에 스치는 경험을 한다. 그래서 나는 아침이 참 힘들다.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방문을 열고 등장하는 남편과 강아지가 있어서 내가 이 방을 박차고 밖에 나가서 공기를 들이쉴 수 있다는 점이다.
책을 좋아했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멀리하게 됐다. 지금은 언제 다시 사회생활을 하게 될지 모르는 채 책으로 다시 돌아가는 중이다.
무엇을 하여 돈을 벌 수 있을까. 회사를 다니지 않는 삶은 나에게 빈곤만을 남겨줄 것인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