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잠에서 깨어나 아침에 눈을 뜨면 다시 눈을 감곤 한다.
아침 일찍 일어날 일이 없는 월요일이 시작된다.
11시 경이면 회사에서 점심을 먹는 남자친구에게 연락이 오기마련인데 11시를 훌쩍 넘겨서도 아무 말이 없다.
오늘 예정되었던 학원 수업이 취소되었지만 나는 집을 나선다.
학원 강의실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집에서 게으르게 있을 바에야 미리 나가 있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1호선 지하철을 타고 가는 중에 어떤 아주머니들이 언성을 높이며 싸웠다.
서로 시끄럽다며 난리인데 그 사이에 껴서 앉아 있는 한 여자가 불쌍해보였다.
구로역에 대기해 있는 지점에서 자연스레 싸움은 잠잠해졌고 나는 곧 신도림에서 2호선으로 갈아탔다.
날씨는 점점 따뜻해졌고 나는 1월 이후로 처음으로 오늘 친구를 만난다.
정확히 말하면 학교 선배이자 알고 지낸지 6년째 되어가는 남자 사람이다.
그는 소개팅으로 만난 여자친구와 잘 지내고 있으며 국내 유수 대기업을 다니고 있고 위로 누나가 2명이다.
알고 지내는 동안 그는 총 3번 나에게 만나자고 했지만 우리는 현재 친구 사이이다.
학원에 돌아와서 입사 지원서를 한군데 작성했다. 첨부파일로 올려야할 주민등록초본이 없는 터라 등기 우편 발송 신청을 했다.
기분이 점점 무기력해진다. 친구를 만나기로 한 시간은 7시반이지만 어제 통화에 따르면 오늘 업무 상황에 따라 만나는 시간은 변동 가능성이 크다.
남자친구는 평소와 달리 오후 3시가 다 외어가지만 아무 말이 없다.
주말보다 평일엔 사람이 적은 걸로 알고 있고 사람이 많다 하더라도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답이 없는 경우는 잘 없는터라 솔직히 신경이 쓰인다.
어쩌면 그도 이 무료한 일상에 지쳤을 수 있고 어쩌면 그는 지금 내가 3월에 느꼈던 관계에 대한 권태감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의 속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니깐.
외로움이 점점 커졌으며 불안감이 엄습했다.
지난주는 총 3일동안 3군데의 필기 시험을 봤다. 3월과는 달리 월초부터 꽤 바빴던 셈이다.
실적이 좋을지 나쁠지는 월말까지 기다려봐야겠지만 월초가 바쁘게 흐른게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약속도 약속이지만 오늘은 평소에 입는 운동복이 아닌 원피스와 트렌치코트를 입고 구두를 신었다.
봄이기도 하고 아침에 받았던 안 좋은 소식 때문에 더더욱 잘 꾸미기라도 해야 기분이 덜 나빠질 것 같았다.
말이 없는 남자친구에게 왜 말이 없는지 묻고 싶지만 그가 퇴근하는 5시는 나의 생각보다 더 빨리 될 것이기에 나는 다른 연락을 하지 않기로 한다.
4월도 내일 모레면 10일을 넘긴다. 시간은 너무나도 빨리 흘러간다.
시간의 속도에 숨이 턱턱 막히는 것을 아침마다 느낀다. 어쩌면 잠을 자고 있는 꿈 속에서도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나는 아직도 내가 무얼 하고 싶은지, 무엇을 가장 욕망하는지 잘 모르겠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 흘러, 지금 만나고 있는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게 될지,
아니면 또 다른 곳에 입사하여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현재의 남자친구와 자연스레 멀어지게 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요새는 자주 생각한다. 첫 회사를 퇴사하고선 나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지금처럼 만나고 있는 사람과 일주일에 못해도 1~2번 외출하는 일도 없었고 친구를 정기적으로 만나는 일도 없었다.
게다가 낮밤도 바뀌었었고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5개월간 생활을 유지했는지 모를 일이다.
지금은 그 때에 비해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소정의 수입이 있고 연애를 한다고해서, 불안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불안은 내가 눈을 뜨는 순간부터 다시 잠드는 그 순간까지 내가 언제고 인지할 수 있는 거리에 존재한다.
무시해보려고 노력해도, 그 까짓것에 흔들리지 않는 척 노력해도 나는 결국 불안의 손아귀에 있다.
불안의 입김이 어느때고 나의 살결에 와닿을때면 나는 공포감에 휩싸인다.
그리고 때로는 나는 왜 이 무거운 노트북을 손에 쥐고 왜 이 시끄럽고 청결하지 못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여 결국엔 이곳에 도달해서 원치 않는 곳에 입사 지원서를 작성하는 것인지.
만나고 싶거나 보고싶어서가 아니라 나의 시간을 채워줄 누군가가 필요해서 사람들과 만날 약속을 잡는 건지.
왜 나는 나이가 들어 더 이상 20대 초, 24살에 인턴 생활을 했던 나이가 아닌데도 여전히 사람들과의 집단 생활이 끔찍하게 혐오스럽고 다시금 회사생활을 해야만 삶을 영위할 수 있단 사실을 덤덤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운지 알 길이 없는 것이다.
요즘은 책을 읽지 않는다. 중학교 시절부터 좋아하던 아멜리 노통브의 신작을 사놓은지가 어언 1년이 다 되어가지만 나는 아직도 그 책을 끝마치지 못했다.
대신에 프랑스 작가의 책을 때때로 펼쳐보고 책의 초입부문을 다시금 읽곤 한다.
그렇지만 이내 그 책을 덮어버리고 값어치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유튜브의 영상 홍수 속으로 빠져든다.
그 편이, 그 선택이 나에게 조금이나마 여유를 건네준다.
쉬지않고 떠들어대는 유튜버들의 그 수준 낮은 컨텐츠를 들여다보며 삶이 내게 주는 끊임없는 고통과 시련을 잊어보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왜 끊임 없이 외로움을 느끼는 것일까. 나는 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매일 마주하며 살아나가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