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by Minnesota

10시반이 조금 넘어서 일요일 아침이 시작됐다.



유튜브로 고양이 영상을 보다가 화장실도 가야하고 커피도 마셔야겠다 싶어서 11시반이 되어서야 일어났다.




역시 몸은 영 개운치 않다. 어제 애드빌을 하나 먹고 자긴 했지만.




우연히 보게 된 미국 대학생활을 하는 사람의 브이로그를 요즘 보다보니,




얼음을 한 가득 담고 에스프레소 샷을 넣은 상태에서 물 대신 우유를 넣고 싶었다.




에스프레소 샷 사이로 우유가 스며드는 것을 보고 싶었고 그냥 아이스 라떼도 괜찮을 것 같았다.




미국에서 참 커피를 많이 마셨다.




지금도 커피를 달고 살지만, 미네소타에 도착해서 한참을 자고 일어나 호텔 맞은편에 있는 까페에서 새벽 5시경에 먹었던 스콘과 커피가 아직도 생각난다.




그렇게 시작된 미국에서의 내 커피사랑은 미네소타뿐만 아니라 여행다녔던 라스베가스에서도, 올란도에서도, 보스턴, 워싱턴, 뉴욕, 그리고 시카고, 엘에이까지 내내 이어졌다.




미국을 다녀오고서 나는 참 많이 울었던 것 같다.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이 그리워서 울고 그곳에서의 생활이 그리워서 울고 그곳에서 만났던 친구들이 그리워서 울고, 아마도 다시는 그런 생활을 할 기회가 없다는 것을 알아서 그게 서글퍼서 울었다.




그때부터 원망스러웠던 것 같다. 누가 들으면 웃을만한 원망.




왜 나는, 미국에서 대학생활을 할만큼 부자집에서 못 태어났을까.




왜 우리 아버지는 대기업에 다니면서도 석사를 하려면 니 돈으로 하라고 딱 잘라 말했을까.




이 두가지 때문에 나는 원치 않은 길로 방향을 틀었고 꾸역꾸역 공부를 했다. 울면서 공부했다.




그렇게 소중한 봄을 잃었고 그렇게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갔던 것 같다.




다시 돌아간 학교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미국을 지워내려고 했고 지워낼 수 없었다. 아직도 너무 그리웠고 나한텐 이데아 같은 그 곳에 언제 다시 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비행기표를 끊고 언젠가는 갈 수 있겠지만 교환학생이란 신분으로 그 땅에 다시 돌아갈 일은 영영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다시 돌아간 나의 대학교에서 나는 가을 학기를 보냈고 부전공을 경영학을 해서 바빴고 더욱 공허했다.




인문대와 비교하면 한없이 으리으리한 경영대를 자주 갔었고 타과생으로서 나는 항상 마이너한 위치에서 강의를 들었다.




경영학 과목 중에 어떤 과목은 점수를 잘 받았고 또 어떤 과목은 그저 그랬봄다. 어떤 과목은 아예 그냥 버렸던 것 같다.




그래도 나는 학점을 왠만큼 유지했다. 23살의 가을 학기는, 파란만장했던 것 같다.




잃어버린 그 해 봄에 대한 보상심리도 있었고 다시 조정한 내 커리어에 대한 거짓된 신념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 3학년이었지만 대학 학보사 기자가 되었고 국문기자로 지원했는데 면접관이었던 교수님의 권유로 영문기자가 되었다.


단체 활동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매주 금요일 아이템 회의를 하고 회식을 했다.


내 생일에는 이태원 어느 클럽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렸고 다음 날 핸드폰을 잃어버린 상태로 학보사 엠티를 갔다.


재미가 없었고 무료했고 슬펐고 우울했다.


그럼에도 학교에서 주최한 대회에 참가하고자 면접을 보았고 합격했고 그래서 벨기에로 떠났다.


힘들었다. 꾸역꾸역 해나갔고 그 사이에 수도없이 많은 남자를 만났다.


바람 피웠다라고 표현하기에 대상은 너무나도 여러명이었고 오는 남자 막지 않고 가는 남자 붙잡지 않았다.


그냥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충동적이었고 어린 아이 같았고 그러면 그럴수록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기분 이었다.


그렇게 23살의 가을, 겨울을 보냈고 나는 24살 1월에 언론사 인턴이 된다.


첫 사회생활이었고 미성숙했던 나는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힘든 사회생활을 당시에 했던 것 같다.


6개월이란 인턴 기간을 간신히 끝냈고 도망치든 나와 기자는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학교로 복귀했고 나는 이제 어떤 것을 목표로 두고 살아야할지 모르겠다고 되뇌였다.


중도 앞 벤치에 앉아 이미 깜깜해진 하늘을 보며 과 동기에게 나는 이제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말했었다.


나는 이미 삶의 목표를 여러번 잃었고 내가 생각했던 그림은 현실이 아닌 환상이란 것을 알게되니 이제는 다른 목표를 갖기에 너무 두려웠다.


25살 봄, 부모님의 핀잔을 들으며 마지막 학기를 다녔다.


나는 여전히 뭘 해야할지 몰랐고 끊임없이 불안했으며 밤낮이 바뀐 상태로 두 과목을 꾸역꾸역 들었다.


그러다 과 동기가 알려준 공기업 까페를 가입했고 거기서 어떤 공고를 발견했다.


준공공기관에 필기는 영어 논술 및 작문이었고 그 다음단계가 면접이었다.


나는 4월에 그 곳에 합격한다. 첫 지원이었는데 그렇게 합격을 했고 타지로 옮겨 갔다.


그렇게 내 공식적인 첫 회사에서의 생활이 시작된다.


그 당시즈음 내가 브런치를 가입했을 것이다.


지금, 나는 서른이 되었고 그 사이 나는 여러명의 남자를 더 만났고 그들과는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났다.


그 사이 나는 한 회사에서 2년 조금 넘게 경력을 쌓았고 29살 끝자락에 내가 원하는 분야의 회사에 들어왔고 이 곳에서도 입사한지 3개월이 지났다.


나의 이십대는 이런 식이었다. 조금 더 잘 될 수 있었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때마다 서둘러 그 생각을 회피한다.


그런 생각을 해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고 선택에 대한 후회는 없으며 되돌릴 수도 없기에.


고작 아이스 라떼 한 잔 만들고선 글이 여기까지 왔구나.


그냥 그 미국 대학생의 브이로그를 보면서 미네소타가 떠올랐다. 그리고 내 20대가 떠올랐다.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은데 오늘은 부모님도 일찌감치 나가셨고


나는 방 안에서 음악을 들으며 이 글을 쓴다.


20대는....사실 많이 힘들었던 시기다. 누군가는 20대가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기라고 하지만


나는 내 30대가 더 낫길 바랄뿐이다. 조금 더 안정적이길 간절히 바란다.


20대에는 매해, 매월, 매순간마다 내가 원하던 게 진정으로 원했던 게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되는 시기였고 그 때마다 씁쓸한 감정을 느꼈다.


20대에는 곧잘 누군가와 쉽게 연애를 시작했고 쉽게 시작한만큼 쉽게 놓아버렸다.


그쪽에서 놓던 내가 놓던 결론은 두 사람 다 별다른 여파없이 다시 또 살아나갔다.


그런데 요새는 그 지나간 인연들이 생각이 난다. 그리운 감정은 아니다.


그냥 그랬던 때가 있는데, 그랬던 사람이 있는데, 하는 것들.


나는 그런 수많은 전적을 뒤로 하고 이제 한 사람과 결혼이라는 것을 하려 한다.


그래서 자꾸 돌아보게 되는 것이리라.


언제나 내 옆에 누군가가 있었다. 잠깐 잠깐 연애를 쉬는 시간이 있었지만 비자발적이었으며 쉬는 동시에 누군가를 찾는 과정이었다.


항상 찾아 해메었다. 누군가를 또 만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헤어지지만 어김없이 새로운 사람이 나타났다.


그 모든 레파토리가 지겹다고 했지만 막상 결혼을 준비하고 내 선택에 대해 후회하지 않을까 두려울때마다 더 이상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지 못한다는게 정말 좋은 것일까란 생각이 든다.


누구나 자신이 상상한 미래가 있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다행이도 나는 커리어적인 부분에선 내가 그려온 모습에 매우 근접하다.


그런데 연애와 결혼, 이 부분은 잘 모르겠다.


상상했던대로라면 나는 28살에는 결혼을 했어야 했고, 지금의 사람보다 더 나은 조건의 남자와 했어야 한다.


내가 그렸던 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과 내가 생각했던 시기에서 2년이나 흐른 이 시점에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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