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참 재밌는 것이 없었다.
코로나를 핑계대면서 평소에도 일-집을 반복하는 루틴을 좀 더 강화했다.
2-3주 전까지만 해도 회사 상사와 술자리도 하고 그랬지만 지난주 금요일을 마지막으로
사람을 만나서 회사 외의 시간을 갖는 것도 끝났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도, 무언가를 먹고싶지도, 술을 마시고 싶지도 않은 상태였다.
항상 돌아오는 그 시간이 돌아온 것이다.
이럴 때 나는 대개 무료함으로 시작해서 헛헛함, 공허함, 부질없음을 느낀다.
그것은 남자친구의 애정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고 무언가에 '몰두'하는 시간 외에는 나를 잠식한다.
갉아먹는다는 표현이 좀 더 옳은 말인 듯 하다.
이번주는 게다가 격일로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심리상태가 이런 데 집에서 근무를 하자니 월요일에는 정말 감옥같은 기분이었다.
화, 수는 사무실 출근을 했고 그런대로 괜찮았다.
중간중간 밀물처럼 찾아오는 감정들을 뒤로하고 내 눈 앞에 놓여진 일을 처리하다보면 어느새 7시.
어제는 남자친구가 집에 데려다 주었고 집에서 밥을 먹고 통화를 하다 잠들었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10시 십분 전.
일어나고 싶지 않았지만 업무 계획 보고를 해야했기에 일어났다.
아이스 커피를 만들고 블루베리 스무디를 만들고 한약을 데웠다.
평소의 아침 루틴 그대로.
계획을 작성하여 이메일로 보고하고 무심코 넷플릭스를 켰고 영화 레이디 멕베스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내가 좋아하는 유튜버가 브이로그에서 이 영화를 보던 게 기억이 났고
썸네일이라고 해야할까, 이 영화를 나타내는 첫 이미지가 인상깊었다.
요새는 아무것에도 오래 집중을 못한다.
그러나 이 영화만큼은 중간에 한 번 화장실을 다녀 온 것 빼고는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충분히 공감간다. 그녀의 감정이.
자신에게 매몰차게 대하는 남편과 시아버지를 뒤로 하고, 누가 보아도 정력이 넘쳐 흐르는 하인과의 불륜.
굳이 영국까지 안 가더라도 조선시대에도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 평범한 레파토리.
그런데도 이상하게 집중이 잘 되었다.
불륜의 과정에서 피해자는 속출한다.
그녀의 불륜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여자 하인은 결국 벙어리가 된다.(그녀의 감정도 이해가 충분히 된다.)
주인공만큼은 계속해서 처리해야 할 '방해 요인'을 침착하게 처리해 나간다.
갑자기 나타난 본인이 살해한 남편의 아들과 잠깐 동안이나마 감정을 공유하고 진심으로 소통하는 듯 하지만,
그 마저도 자신이 함께하고자 하는 남자를 위해 죽여버린다.
한 명, 한 명, 방해요인들을 죽음으로 내몰아가는 과정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는 옆에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살해'하는 사람은 그가 아니라 그녀였다.
그리고 방해요인이 완전히 '처리'가 되면, 그 때마다 그녀는 애타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지만
그는 그럴때마다 눈빛을 피하거나 그녀의 손길을 외면한다.
그렇게 그 남자는 그녀와 그녀의 행동에서 구역질을 느끼게 되고 자신이 느낀 감정은 그녀와는 다른 감정이었음을 깨닫는다.
마지막 방해요인이었던 죽은 남편의 아들마저 죽이고나서, 그제서야 그 남자는 자신과 주인공 여자의 죄를 털어놓지만 그녀는 그렇게 쉽게 자신의 삶을 놓아버리지 않는다. 그녀는 그런 사람이 아니기에.
결국 벙어리 여자 하녀와 함께 그토록 사랑했던 그 남자마저 '처리'한다.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라는 철학자의 말을 참 좋아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삶에서 계속해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3명의 남자를 죽였고 결국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고싶다는 고백을 하자마자, 그 남자도 영원히 처리해버린다.
나는 그녀가 십분 이해가 된다.
이 영화를 보는 시간만큼은 내 현실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다른 사람의 고민이나 감정에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나이건만, 그녀만큼은 누구보다도 잘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권태로움을 잊을 수 있었다.
영화는 잘 만들어진 영화다. 내 기준에서는 그렇다.
그녀는 벙어리 여자 하인과 자신이 사랑하던 남자와 자신을 속박하던 남편, 시아버지가 없이 혼자 살아갈 것이다. 그렇지만 걱정은 되지 않는다.
옳은 방식이든 그른 방식이든 간에, 그녀는 삶에서 마주하는 문제에 대해 차분히 대처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기에.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나가지 않을까.
솔직하게 말하면 주인공과 같은 여자가 되고 싶다.
동요하지 않고 침착하게 내 눈 앞에 놓인 문제를 마주하고 해결하는 용기를 지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