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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로하스 Polohath Dec 03. 2020

MBTI

내 멋대로 분석하기

MBTI (Myers-Briggs Type Indicator)는 그 역사와 명성만큼이나 현재까지도 가장 보편적이고 신뢰도 높은 성격유형 검사일 것이다.
나는 심리테스트 같은 것들을 믿어본 적도 없고 혈액형별 성격 유형을 믿는 사람들은 약간 한심하다고까지 느낄 정도이지만 MBTI는 꽤 흥미롭고 참조할만한 연구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20대 때 교회 청년부에서 특강을 들으며 처음으로 MBTI를 해보았다. 특강시간이 짧아 전체 테스트를 모두 하지는 못하고 기본형만 해보았는데 나는 가장 강한 성향으로 다혈질이 나왔고 2차 성향은 아주 근소한 차이로 우울질이 나왔다. 그 테스트를 할 당시의 나는 아마도 아주 활기차고 감정적이면서도 금방 우울해지는, 어쩌면 전형적인 20대의 혈기왕성한 젊은이였나 보다.


첫째를 낳고 나서 부부 사이가 나빠졌던 때가 있었다. 부부 상담을 받던 첫날 MBTI 테스트부터 하게 됐다. 결과지를 본 상담사가 놀랐다.

아주 간단하게 분류하자면 대부분의 남편들은 이성 지수가 높게 나오고 아내들에게서는 감성 지수가 높게 나온단다. 남편의 결과는 가장 흔한 한국 남자의 형태라고 했다. 나는 여자로서는 드물게 감성보다 이성 지수가 더 높게 나왔는데 그냥 높은 정도가 아니라 여태까지 상담하면서 본 아내들 중 이런 점수는 본 적이 없었으며 남자들 중에서도 이 정도로 높은 수준의 이성 지수가 나오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 했다.

어쩐지 내가 비정상이라 부부 사이가 엉망이 됐다는 말 같아 불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 둘 중 더 논리적인 사람이 나라는 말 같아 우쭐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MBTI 결과와는 상관없이 우리 부부는 위기를 잘 극복했다. 1년 뒤 둘째가 태어났을 때 또 한바탕 전쟁이 일어나긴 했지만.


얼마 전 온라인 MBTI 테스트라는 것을 보았다. MBTI가 5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질문 몇십 개를 풀고 바로 성격유형이 결정되는 단순한 것이 아니어서 완벽히 신뢰할 수는 없었지만 재미로 해봤다.


결과는 ENTJ 지도자형이었다.


MBTI도 다른 여러 가지 심리 테스트와 마찬가지로 테스트를 할 당시 응답자의 환경과 기분에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질문이 애매모호할 때도 많다. 한국어 번역이 약간 헷갈리게 된 경우도 있다. 특히 부정형 질문들.

테스트 결과에 100% 수긍하지 못하는 것은 바넘 효과에 말려들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단속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테스트 결과를 읽다 보면 이런 말은 나도 하겠다 싶은 당연한 것들이 꽤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 결과만 보더라도 "가끔 엉뚱할 때가 있다"라는 말이 나온다. 세상에 안 그런 사람이 있던가?


심리 테스트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더라도 결과를 보고 기분이 좋아지는 부분이 분명 있으며 내 단점을 다시 상기시켜 반성하거나 더 노력하게 하는 부분도 있다.

내 결과표에 나온 분석 중 눈에 띄는 것들이다.

1. 상상을 많이 한다.
이건 내 특기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2. 혼자 있는 것을 싫어한다.
정반대다. 혼밥, 혼커, 혼여, 혼영, 혼 쇼핑 모두 사랑한다.

3. 항상 계획을 하고 실행한다.
반반이다. 계획을 세우고 실행은 잠깐만 한다. 작심삼일이 습관이다.

4. 권위적이지 않다.
진짜라면 가장 기분 좋은 칭찬이다. 나이를 먹고 직급이 올라가도 권위적이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예의를 갖추며 살자는 것은 나의 생활 모토인데 실제로 상대방도 그렇게 받아들여 줄지 내 입장에서는 파악할 수 없는 일이라 늘 궁금한 부분이다.

5. 직설적인 말을 삼가야 할 필요가 있다.
나 스스로도 인지하고 늘 조심하려고 노력하는 부분이다. 말투나 발음, 목소리 톤까지 좋게 말하면 단정하고 나쁘게 말하면 차갑다고 한다. 직업이 아나운서냐는 질문도 많이 받는다. 

그래서 직장에서도 모든 직원에게 존댓말을 쓴다. 10대 아르바이트생에게도 예외 없다. 말을 편하게 하는 순간 내 말이 더 강하게 표현되어 행여나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까 두렵기 때문이다. 회사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는 최대한 논쟁하지 않고 웬만하면 상대방이 맞다고 수긍해주는 편이다. 이렇게 하는데도 나를 어려워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난감할 뿐.






​ENTJ형이 전체 인구의 4% 밖에 안된다는 걸 보니 역시 난 정상이 아닐 수도 있겠다만 그건 상관없다. 한번 사는 인생인데 이왕이면 뭔가 다른 게 좋다.


사회적 거리두기 하느라 오랫동안 잊고 묻어두었던 퍼즐, 색칠공부, 블럭, 뜨개질까지 다 나온 요즘이다.
MBTI로 시간이 휙 갔으니 이제 다시 백 투 뜨개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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