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fort food라는 말이 있다. Soul food와 혼용하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Comfort food가 좀 더 광범위하고 편한 느낌이라 좋아한다. 말 그대로 편안하게 해주는 음식이다. 마음의 안정을 찾고 육체의 갈증을 진정시키는 음식이다. 입맛 없고 느끼할 때 먹고 싶은 매운맛, 피곤할 때 찾게 되는 카페인, 몸이 허하다 싶을 때 필요한 보양식, 당 당길 때 저절로 손이 가는 설탕 덩어리 등 대부분 고칼로리 음식인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 한 가지 더, 어렸을 적 향수라든가 잊고 싶지 않은 추억이 담긴 음식도 포함된다.
나에겐 여러 가지 Comfort food가 있는데 그중 한 가지가 피넛 버터다. 빵, 당근, 셀러리, 오이, 월남쌈 가리지 않고 다 발라 먹을 수 있지만 그냥 퍼먹어도 좋다. 이 이야기를 하면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깜짝 놀라는데 미국인들 중에는 나 같은 사람이 의외로 많다. 영화 Meet Joe Black (조 블랙의 사랑)에서 브래드 핏이 처음 피넛 버터를 맛보던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조각같이 아름다운 브래드 핏의 얼굴만큼이나 피넛버터의 맛을 훌륭하게 표현한 표정 연기가 일품이었다. 영화 각본이었음에도 저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나랑 똑같은 입맛이구나 하며 기쁘기까지 했다.
나에게는 보리차처럼 연하게 탄 블랙커피를 하루에 열 잔 넘게, 마치 물처럼 온종일 마시는 버릇이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하루에 한잔 이하, 많아도 두 잔이 넘지 않도록 커피를 줄였고 일주일 넘게 아예 안 마신 적도 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이 됐든 간에 중독되는 걸 싫어한다. 내가 자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어떤 것에도 지배를 받고 싶지 않다. 내 몸과 정신의 주인은 온전히 내 것이어야만 한다. 그래서 진통제도 여간해서는 먹지 않는다. 커피를 물보다 많이 마시면서도 몇 년에 한 번쯤은 일부러 시험 삼아 몇 달씩 커피를 끊어보기도 했고 끊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이렇게 습관적으로 블랙커피를 마시지만 음료 분야에서 나의 Comfort food로 등극한 아이는 에스프레소도, 블랙커피도 아닌 믹스 커피다. 카페인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아 하루에 열 잔을 마셔도 잠 잘 자고 몇 달을 끊어도 금단 현상이 전혀 없는 건 아마 아빠를 닮아서일 것이다. 친가 쪽 식구들은 돌아가신 할머니를 포함해 모두 커피 애호가들이다. 할머니 산소에 가도 믹스 커피를 꼭 올린다. 심지어 믹스 커피만 올릴 때도 있다.
남편은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 쓴 커피를 마시는 나의 입맛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남편도 설탕과 프림이 환상적인 비율로 섞여 오묘하고 조화롭게 입과 정신을 충족시켜주는 이 완벽한 당 덩어리, 칼로리 덩어리는 가끔 찾을 때가 있다. 며칠 전에는 일부러 커플 머그잔을 꺼내 함께 앉아 다방 커피를 마셨다. 별말 없이 그것만으로도 이심전심 행복했다. 중독을 싫어하는 나도, 커피 자체를 싫어하는 그도, 믹스 커피만큼은 거부할 수 없는 Comfort food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평소 아들들에게 엄마표 집밥을 자주 못해주는 대신, 주말에라도 뭔가를 계속 만들어 먹이려고 하는데 그중 아들들이 잘 먹는 간식이 엄마표 버터쿠키와 누룽지 튀김이다.
사촌 올케가 알려준 이 제품은 작년부터 계속 애용하고 있다. 기름에 넣는 순간 확 퍼지면서 부피가 늘어나고 바삭바삭한 튀김이 된다. 따뜻할 때 설탕을 살짝 뿌려서 만들어 놓으면 주말 내내 아들들이 오며 가며 하나씩 집어 먹는다.
Comfort food에는 향수나 추억이 섞여 있는 경우가 많다. 내가 피넛 버터를 먹으며 영화의 한 장면을 생각하듯이, 믹스 커피를 마시며 아빠와 할머니를 생각하듯이, 아들들도 나중에 살아가며 마음의 안정이 필요할 때,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싶을 때, 피곤하고 당이 당길 때, 아주 가끔이라도 엄마가 예전에 만들어 준 간식 하나쯤을 Comfort food로 떠올려준다면 참 행복하겠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스스로를 일류 요리사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