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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로하스 Polohath Dec 05. 2020

경복궁

운전하다가 경복궁 앞에서 신호등에 걸렸다. 우리나라 건축 문화재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 경복궁이라 여러 번 가봤지만 계절과 날씨와 시간과 상황에 따라 매번 느낌이 다르다. 도심 한복판에 이렇게 자랑스럽고 눈이 즐겁고 뿌듯한 유산이 있다는 것은 큰 복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유흥준 선생의 글 중 비 오는 날의 경복궁을 극찬한 부분이 있었다. 그 글을 읽은 뒤로 비가 많이 오는 날 꼭 한번 경복궁에 가보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는데 아직 기회가 없었다. 대신 경복궁 야간 개장을 기다린다.


예약제로 한정 인원만 입장할 수 있어서 선착순으로 표를 구하기가 만만치 않지만 올해는 코로나 때문인지 신청자가 적은가 보다. 올 가을에도 야간 개장을 하려나 반신반의하며 체크했다가 바로 다음날인데도 표가 남아있기에 바로 예약했다.




왜 경복궁이 특별히 더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느낌이다. 다른 궁이나 건축물과는 다르다. 해외 업무가 많았던 시절에는 일정에 없더라도 일부러 근처로 식사 장소를 잡은 뒤 외국 손님들과 경복궁에 들르곤 했다. 시간이 없을 땐 정문 안쪽으로만 잠깐 들어갔다가 나와도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면 저절로 어깨가 으쓱거리고 가슴이 펴졌다.

같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유산이지만 중국과 일본의 궁이나 성은 감흥이 전혀 다르다. 내가 국인이라서 그런가 했는데 북경의 자금성에 가 본 뒤 제대로 깨달았다. 우리 선조들의 예술적 감성과 섬세함이 얼마나 뛰어난 것인지를. 경복궁이 고급 백화점 명품관이라면 자금성은 어마어마한 크기의 창고형 할인 매장이다. 격조와 품격에서 경복궁과 감히 비교할 수가 없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수정전에서 공연도 있었고 깜짝 게스트로 유진박도 출연했었지만 이번에는 코로나 시국이라 유튜브용 영상 촬영만 진행 중이었다. 촬영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박수도 치지 말아 달라는 안내가 있었고 객석도 없었다.

비가 막 그쳤던 밤, 바로 이 장소에서 아름다운 국악과 비운의 천재 유진박의 라이브 연주를 감상하며 따뜻한 커피를 마셨던 날이 생각나 마음이 조금 쓸쓸해졌다.

경복궁은 여전히 아름답고 서울은 점점 더 아름다워지고 인생은 항상 아름답지만 그래도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지라 빨리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와 예전처럼 너와 나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예술과 관객의 거리도 가까워지고 우리 문화재를 외국인들에게 자랑하는 기쁨도 즐길 수 있는 날이 빨리 돌아오기만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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