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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로하스 Polohath Dec 06. 2020

나눔의 재능

지난 둘째의 생일에 처음으로 첫째가 자기 용돈에서 동생 선물을 사주었다. 그동안은 어른들로부터 선물만 받다가 이제부터는 각자 용돈으로 서로에게 선물을 해주라고 하자 짠돌이 첫째는 처음에는 놀라는 표정이더니 이내 동생이 원하는 장난감 두 가지를 모두 자기가 사주겠다고 해서 엄마랑 하나씩 나눠 사자고 설득해야 했다. 동생을 아끼는 마음이 예뻤다.


저녁 메뉴를 골라보라는데 입이 짧은 둘째는 역시나 먹고 싶은 게 생각이 안 난다고 하더니 첫째가 회전초밥 먹고 싶다고 중얼거리자마자 오늘 저녁은 회전초밥이라고 결정해 주었다. 형아를 생각하는 마음도 예뻤다.


아들들 생일 선물은 해가 갈수록 단출해진다. 아기일 때는 생일 맞은 아이만 선물을 받는다는 구조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무조건 둘 다 뭔가를 사주는 날이었고 선물은 대부분 장난감이었으며 부피도 큰 것들이었는데 클수록 원하는 물건들도 적어지고 좋아하는 장난감도 없다. 올해 둘째가 원한 선물은 벅스봇이었지만 이런 장난감 선물도 아마 올해가 마지막이 아닐까. 내년부터는 초등학교 2학년이라 장난감 따위는 귀여운 후배들이나 가지고 노는 거라고 말할 수 있는 형님이 될 테니 말이다.


둘째의 생일은 어린이날 2주 전이라 항상 어린이날 선물은 뭘 원하느냐고 미리 물어봐서 선물을 배분하 하는데 두 아들 이번 어린이날 선물은 고민만 할 뿐 특별히 갖고 싶은 것이 없다. 결핍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다행스럽고 행복한 일이지만 또한 걱정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물건 귀하고 돈 귀한 것을 가르쳐야 한다는 마음에 생일 선물을 각자의 용돈으로 서로 사주라고 한 것처럼 요즘은 간식으로 과자 한 봉지를 사주더라도 용돈에서 돈을 받아낼 때가 있다. 경제 교육은 일찍 시작해서 습관이 될수록 좋다는 것이 엄마어설픈 지론이다.






년 전부터 지인이 후원하고 있는 보육원 아이들에게 생일, 어린이날, 크리스마스에 선물 보내는 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지인의 말에 의하면 보육원 같은 시설도 부익부 빈익빈의 원리가 그대로 적용될 때가 있는데 이 원은 가장 기본적인 지원 외에는 후원 거의 없는 곳이라고 한다. 제3세계처럼 심각한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지 않게 대한민국의 수준은 올라섰지만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어찌 기본적인 의식주뿐일까. 필요한 것보다 원하는 것이 더 많아세대가 요즘이거늘.


원에 들어오는 단체 후원 물품보다는 아이들이 생일, 어린이 날, 크리스마스처럼 특별한 날 각자 갖고 싶어 하는 선물을 받는 기쁨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복지사님께서 아이들이 원하는 선물의 리스트를 만들어서 우리가 만든 밴드에 올리면 선물을 보내주고 싶은 아이들을 하나씩 지목해 원으로 택배가 가도록 온라인에서 구매를 했다.


처음 리스트를 받았을 때 가슴 아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다섯 살짜리 남자 아이이가 원하는 크리스마스 선물이 겨울 바지였다. 슬리퍼가 필요하다는 중학생도 있었다. 그 목록을 보며 우리 모두는 뭐라 표현할 수 없지만 무슨 마음인지 서로 안다는 듯한 표정을 동시에 지었었다. 해가 흐르면서 아이들의 선물 목록이 더 아이다워지는 것이 묘한 기쁨을 주었다. 이제는 대부분 장난감과 전자 제품, 화장품 같은 물건들이 목록에 자리하고 있다.


이번에도 선물을 보내기 위해 지인이 수십 명 아이들의 이름, 학년, 성별, 그리고 가지고 싶어 하는 선물의 가격과 온라인 쇼핑몰의 품목 번호를 정리해서 게시글로 올렸는데 한편으로는 마음이 복잡했나 보다. 코로나 때문에 가계가 어려운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많은 고민 끝에 선물 목록을 올리기로 한 심정을 그대로 올렸다.





글을 보자마자 이럴 때일수록 매번 어려운 일 하는 지인에게 힘이 되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절대로 아이들을 실망시켜서는 안 되겠다는 결심이 생겼다.


그동안은 대부분 한 사람이 한 아이에게 선물을 보내왔는데 이번에는 참여가 저조할까 봐 두 아이에게 보내기로 했다. 다른 분들도 비슷한 마음이었는지 두 명, 세 명씩 맡아줘서 평소보다 더 빠르게 명단의 이름들이 지워지기 시작했다. 이틀 만에 아이들의 명단이 거의 다 채워졌고 마지막으로 남은 두 아이도 내가 선물을 보내기로 해서 이번에는 총 4명의 아이에게 선물을 보내게 되었다.







뜻밖의 결과는 이 일을 진행한 지인에게도, 동참하는 멤버들에게도 큰 기쁨과 감동을 주었다. 주면 줄수록 내가 더 기뻐지는 선물이라니, 이런 기쁨을 경험할 수 있는 우리들은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들인지.


"You may have the gift of giving (어쩌면 당신에게는 나눔의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

- Charles Stanley (찰스 스탠리)


특별히 부족한 물건이 없어 무슨 선물을 받아야 할지 고민하는 내 아들들과 나만의 맞춤형 선물을 받기 위해 1년 내내 어린이날만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다. 내가 아들들에게 선물하고 가르쳐야 하는 것은 단순히 결핍을 통한 경제관념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습관화해서 절약한 물질을 어떻게 사용하여 더 큰 선물로 만들 것인가가 사실은 가장 중요한 교육이며 행복의 조건이다.


몇 주 전에도 아이들의 크리스마스 선물 목록이 올라왔다. 나보다 재능이 뛰어난 회원님들이 어찌나 빠르게 목록을 채워들 가시는지 나도 겨우겨우 네 명의 아이에게 선물을 보낼 수 있었다.


어려울 때 오히려 더 나누는 지인과 후원 멤버들이 있어 기쁘다. 나눔의 재능이 넘치는 이들과 함께 하고 있음에 무한한 영광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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