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닿은 곳,
해가 뜨는 곳에 아버지가 있다. 언제나 그렇듯 아버지는 볕뉘 아래 공허한 눈빛으로 무심하게 거친 손을 만지작거리며 하늘을 응시하고 있다. 어릴 적 유독 하늘을 자주 봤던 건 초점 잃은 듯한 아버지 눈길이 하늘을 향해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막내야, 해바라기가 으째 저라고 하늘만 보고 있는중 안다냐?"
“아따, 모르것냐, 해를 보고 있응게 그라제”
“해바라기는 해가 없으면 죽어븐디, 저라고 해만 쫒아 다닝게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어서 뒤에 뭣이 있는지 모른당게, 너무 애쓰지 말어야, 사람이 삐뚤어 저브러"
시상을 그라고 살지 말어라, 아부지는 못 배웠응게 할 줄 아는것도 없응게 이라고 산디, 느그들은 이라고 살믄 못쓴디.”
낡은 담벼락 사이로 노랗게 물든 해바라기가 온 집안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을 때쯤, 아버지의 혼잣말은 늘 그렇게 귓가를 맴돌았다.
"시상을 그라고 살믄 안 되는디"
아버지 뜰에 해바라기는 어느 날은 따사롭고 어느 날은 차가웠고 어느 날은 어둠만 가득했다.
고등학교 2학년 새 학기 시작이 한참이던 4월 학업을 포기했다. 내 인생의 두 번째 포기였다.
첫 번째는 중학교 3학년, 꿈꾸기도 전에 포기했다. 중학교 졸업만 하면 일자리가 있다는 수군거림에
꿈조차 꾸지 못했다. 두 번째는 학생의 특권이었다. 나에게 학교는 어둠만 가득한 미래가 없는 동굴 같았다.
아버지가 해바라기를 보듯 부모님께 취업 사실을 통보하고 짊을 쌌다.
못난 딸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먹이고 싶은 엄마는 새벽부터 분주했다. 그 정성이 집안 가득 퍼지고 있을 때
질근질근 이를 갈며 밥상을 향해 매섭게 돌진하는 아버지.
밥은 왜 차렸냐며, 엄마에게 화를 내고, 금방이라도 밥상을 엎을 기세로 두 손을 번쩍 들며 밥상을 향해 몸을 일으켰다. 엄마는 번쩍 일어나 아버지 길을 막고 “오메 원수야, 그만 해라, 딸자식 객지 가는디 맘 편하게 밥 한 끼 먹여 보내야제” 아침 댓바람부터 불어 드는 서슬 퍼런 찬 바람이 거칠게 몰아쳤다.
들고 있던 숟가락은 반 한술 뜨지 못하고 내려놓아야 했다.
태연하게 짊을 챙기는 나를 엄마는 초조하게 바라봤다. 며칠 전 학교에서 별 기대 없이 봤던 기업체 면접에 합격했고, 그 사실을 엄마에게 알렸을 때, 깊은 침묵과 무거운 한숨에 작아지던 엄마, 딱히 어떤 말씀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던 엄마.
제대로 잠을 자지도 맘 편히 끼니를 해결하지도 못하는 집에 나를 붙들 명분이 엄마에게는 없었을지 모른다.
가슴에 큰 돌덩이 하나 묻고 사는 엄마보다, 이런저런 설명 없이 취업해서 서울 간다는 내가 미워 죽겠다는 아버지의 광기와 폭언은 고요한 아침을 산산조각 내고 있었다.
낯간지러운 배웅도 살뜰한 포옹도 원하지 않았다. 그저 가서 잘 지내라는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도망치고 싶었던 집이었지만, 혼자 남겨진 엄마가 걱정되어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는 엄마를 뒤로하고 나는 그렇게 집을 떠나 새로운 세상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아따 안 받은당게, 콱 전화기 뿌셔블기 전에 치우랑게”
여전히 화난 아버지 목소리는 그대로 가슴에 박혀 큰 생채기를 냈다. 서울 올라온 지 몇 달이 지났지만, 홀연히 떠나버린 딸에 대한 분노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은 아버지는 전화기에도 화풀이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속내가 어떻든 낯선 곳에서 의지할 수 있는 거라곤 전화기로 들려오는 엄마 목소리와 찢어질 듯 분노를 표출하는 아버지 목소리뿐이었다. '괜찮냐?' 그 말 한마디에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가슴을 부여잡고 있는데, 전화도 받기 싫다는 아버지 목소리에 받은 상처는 깊은 곳까지 슬픔을 몰고 갔다.
서러운 마음이 컸기에 아버지 감정까지 살필 겨를이 없었다. 사는 내내 외로웠을 아버지에게 유일한 말동무이자 친구였던 딸이 갑자기 떠나버린 빈자리에 아버지는 원망과 좌절을 채워 넣고 계셨는지 모른다.
“막내야, 밥은 잘 묵냐, 잠은 잘 자냐?”
“일은 고되지 않냐, 그 째간한 손으로 뭔 일을 한다냐”
“아부지 잘 있응게 니도 잘 지내야 쓴다.”
그 말이 그렇게 힘드셨을까, 아버지는 1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고서야 "째간한 손으로 뭔 일을 하냐며" 거친 손으로 내 손을 쓰다듬어 주셨다. 그러다가 또 어느 날은 썩 꺼지라고, 어서 가버리리고 분개하셨다.
이제야 알 것 같다. 나는 운이 좋았고, 복이 많은 아이였다.
정해진 굴레에서 벗어나 타지에서의 삶이 더 단단하고 옹골지게 세상에 맞짱 뜰 용기를 갖게 했다.
그때 집에서 벗어날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그때 취업하지 않았다면, 아버지를 지금처럼 그리워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미움보다 강한 애증이 그리움이 되고, 글이 되어 마음에 옹골지게 맺혀있던 고드름 같은 추억으로 아버지를 다시 찾을 용기도 내지 못했을지 모른다.
아버지는, 나를 성장 시켰고,
아버지는,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아버지는, 내 마음에 작은 해바라기를 남겨주셨다.
미워할 수 없는 존재 아버지, 당신은 참 이상한 사람이었습니다.
고난은 그대를 강하게 만든다. 그대가 극복할 수 없는 일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인생의 모든 고난들은 인생의 필수품이다.
출처 : <나를 아는 지혜> 발타자르 그라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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