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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스락 Oct 18. 2023

교통사고 _시간의 역습

생각 정리

멍하니 누워 시곗바늘만 바라본다.

그러기를 며칠 밥 먹는 시간을 빼면 아무것도 하는 게 없다.

몸을 조금만 움직이면 가슴이 찌릿 숨쉬기가 힘들어진다.

어제까지 하하 호호 자유분방했던 몽둥이가 조금만 움직이면

'악'소리 나게 고통을 호소한다.

일단 누워서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데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난다.

철컹 내려앉는 심장은 작은 바람에 흔들리는 문짝 소리에도 놀라 숨을 몰아쉰다.


옆에 누워 있는 남편을 보며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쉬어본다.



새벽 5시 20분 언제나처럼 남편과 새벽 수영을 나섰다.

평소와 달랐던 건 몸의 컨디션은 최상인데 마음이 자꾸 수영 가시 싫다를 외쳤다.

가기 싫은 마음을 스스로 채찍질하며 길을 나섰다.

여보, 어머니 생신이 언제지, 명절 지나고 일주일.....


그리고 기억이 없다.

눈을 떠보니 남편이 가슴을 움켜잡고 숨을 몰아쉬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왜 그래, 왜 그러는데"

숨이 안 쉬어진다는 남편을 지켜보면서 혼미한 정신을 깨워보려 안간힘을 썼다.

밖은 아수라장이었다.

남편은 숨이 안 쉬어진다며 계속 고통스러워했고 119.. 119... 을 외쳤다.

떨리는 손으로 119에 전화를 걸었고 위치를 설명해야 하는데,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 심장이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겨우 사고 현장과 남편의 상태를 119 구급대원에게

설명하고 남편 가슴에 손을 얹고 숨을 크게 쉬어 보라고 유도했다.


운전석 문과 창문이 열리지 않아, 도착한 구급대원들이 남편을 조수석으로 구조 후 구급차로 이동했다.

그렇게 남편은 근처 응급실로 이송되었고, 나는 사고 수습을 위해 현장에 남게 되었다.

사고가 어떻게 났는지, 어떤 상황인지 전혀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사고 수습 경찰과 보험사

직원들이 다가왔다.


어떤 상황이었는지 설명하라는데 손발이 떨릴 뿐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저 남편과 어머니 생신 얘기 중이었다는 사실 밖에는....


비가 내리던 새벽 삼중 추돌이 있던 사고 현장에 남겨진 나는 남편이 걱정되어 안절부절못했다.



두려움 


망할 블랙박스는 내용량이 너무 많아 사고 현장이 촬영되지 않았다.

보험사 직원이 도착했지만 사고 경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어리숙한 나는 당시 기억을 잃었기에 생각나는 게 없는 상태였으며, 1차선에 있어야 할

우리 차가 3차선으로 튕겨 나가 있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었다.

1시간가량이 지났을까 가해 차량의 블랙박스를 확인하고서야 마주 오던 택시가 우리 차와  뒤

차를 박고 180도 회전 후 옆 차선으로 돌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고 현장이 정리되고 근처 병원으로 남편을 찾아갔지만, 남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응급실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앞이 깜깜하고 현기증이 났다. 내가 서 있는지 앉아 있는지 사시나무처럼 온몸이 떨려왔다.


아이들... 우리 아이들... 절망의 순간 아이들이 생각났다.

새벽 수영 마치고 집에 도착할 시간이 지나 있었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최대한 차분하게 감정을 추스르고 전화를 걸었다.


아들, 아빠랑 엄마가 사고가 나서 조금 늦을 것 같은데..

"엄마, 뭐라고 많이 다쳤어. 지금 어딘데"

"심하게 다치지 않았는데 지금 집에 갈 수가 없어. 누나랑 씻고 학교 갈 수 있지"

"엄마, 괜찮은 거지? 괜찮지?"

울먹이는 아이들에게 괜찮다고 안심을 시킨 후 시골에 계신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사고 소식과

오후에 아이들을 보살펴 달라는 부탁을 드렸다.

내일부터 추석 연휴 일정이 있었지만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지막으로 회사에 전화를 걸어 사고 소식을 전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남편의 이름을 부르며 보호자를 찾는다.

"네네"

"검사 잘 끝났습니다. 오셨을 때보다 상태는 호전됐지만, 안정을 취해야 해서 입원 치료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다른 병원으로 가실 건가요?"

다른 병원이라니 이 상황에 어디로 가라는 거지

"여기서 입원이 가능하면 입원할게요"

"아, 추석 연휴라 입원이 힘들 것 같습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람. 환자가 있는데 연휴라서 입원이 불가하다니... 그럼 어쩌란 말이냐...

급격히 숨소리가 커지고 몸을 지탱하기 힘들어하는 나를 보고 간호사가 묻는다.

"혹시 사고 차량에 같이 타고 계셨어요?"

"네"

"검사받으셔야 할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괜찮아요, 혹시 연휴에 입원할 수 있는 병원이 있을까요?"

다행히 다른 병원을 소개받고 남편을 옮길 수 있었다. 남편의 입원 수속을 마치고 나니

온몸이 욱신거렸다. 검사를 받고서야 갈비뼈에 금이 간 걸 알 수 있었다.

척추압박골절과 가슴 통증으로 남편과 같이 입원하게 되었다.

남편은 나보다 더 심한 상태였다.




원망


사고 다음 날이 딸 13번째 생일이었다.

며칠 전부터 생일만 기다렸던 딸은 엄마 아빠가 없는 생일을 맞이하게 되었다.

사고 나던 날 아이들은 할머니를 따라 시골로 내려갔기 때문에 얼굴도 못 본 상태였다.

생일 당일 아침 일찍 전화를 걸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줬지만, 딸은 울먹이고 있었다.


그렇게 나와 남편은 연휴를 병원에서 보내야 했다.

그저 누워서 안정을... 옆으로 누울 수도, 엎드릴 수도 없는 그저 병원 천장만 쳐다보고 있었다.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왜 자꾸 우리에게 이런 일들이 생기는지 서럽고 화가 났다.

졸음운전에 과속으로 12대 중과실이라는데 왜 우리가 그 피해를 봐야 하는지 가해자가 원망스러웠다.

멀쩡했던 차는 폐차 지경이 되었고 수리비만 몇천만 원.. 한순간에 모든게 엉망이 되어버렸다.

몸의 통증보다 현실을 부인하고 싶은 마음의 상처가 더 컸던 것 같다.



분노


아침이 되면 어제보다 더 아파지는 몸뚱이를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모르겠다.

엄마를 언제 볼 수 있냐며 밤마다 영상통화를 하는 아들은 오늘 밤도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잠이 든다.

이렇게 오랜 시간 떨어져 있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아이의 두려움과 그리움은 생각보다 심했다.

결국 심한 고열로 몸살이 난 아들은 엄마 손을 잡을 수도 없고 엄마 냄새를 맡을 수도 없으니까

계속 아프다며 흐느낀다.

엄마가 빨리 와서 이마를 쓰다듬어 줬으면 좋겠다는 아들 말에 참았던 눈물이 터져버렸다.

아직 어린아이들이 몸이 아픈 우리 부부보다 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에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경찰서 연락을 받고 조서를 쓰고 다시 병원행

그렇게 2주가 지났지만 가해자 쪽에서는 연락 한 통 없었다.

아이들 때문이라도 나는 퇴원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괘씸한 가해자를 뒤로하고 보험사를 통해 퇴원 의사를 전달하기로 했다.


보험사 직원은 정해진 규정에 따라 회사 측 입장만 얘기하고 있었다.

휴업손해, 치료비, 사후 처리 등등 그래서 합의금은 요정도...

멀쩡한 차가 박살 났고 멀쩡한 사람이 아무 이유 없이 병원에 누워있는데 개떡 같은 현실은

그래서 너희가 받을 합의금은? 너희는 얼마를 원하니?

처음부터 까놓고 너희가 원하는 금액이 얼마냐? 우리가 줄 수 있는 돈은 여기까지다.

미치도록 화가 나서 대화가 하고 싶지 않았다.

잘못을 대변해 주는 사람과 회사를 통해 금전적인 것만 지불하면 되는 현실, 사람이 얼마나 다쳤는지

그날 구급차에 이송된 환자 상태는 어떤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조차도 알 의무가 없는 현실이다.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가 인색한 사회가 되어 버렸다.


잠시 잊고 있던 그날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감사


하루하루 같은 시간이 반복되는 일상이 지속될수록 생각도 감정도 정리되는 느낌이다.

사고 순간을 생각하면 끔찍하지만, 큰 사고에 비해 큰 외상은 없는 상태.

물론 여기저기 타박상과 작은 골절은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완치될 수 있는 안정을 해야 하는 상태.


만약 우리 차가 승용차였다면 지금 우리 부부가 다시 일상을 찾아가고 있을까?

튼튼하고 큰 차를 선호했던 남편 덕분이었을까...

사고를 목격한 사람들도 현장에 출동한 경찰들도 큰 사고였다고 큰 폭발음.. 널부러진 파편들에

비해 심한 부상자는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사고 순간 잠시 기억을 잃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과속으로 마주 오던 차량은 운전석 좌측을 밀고 들어왔기 때문에 에어백도 터지지 않았다.

남편은 운전대에 가슴을 박았기 때문에 심한 충격을 피할 수 없었다.


그렇게 그 순간들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다.

두려웠던 순간 남편 상태가 심하지 않다는 말에 안심했고, 병원에 누워 있는 며칠 동안 

원망과 분노로 내 감정이 흑화되었지만,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은

감사한 마음이 제일 크다.

사랑하는 아이들 옆에서 다시 웃을 수 있음을 감사한다.

온몸이 멍투성이고 앞으로 치료를 더 받아야 하지만, 그래도 남편과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우릴 대신해 만신창이가 된 차에 고맙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오늘을 감사하고 있다.


어제 고통의 시간이 오늘 감사의 시간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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