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찬바람 불기 시작하면 분주했던 아버지 모습이 생각난다.
손재주가 좋았던 아버지는 조용히 겨울 준비를 하셨다.
매일 술과 사투하는 아버지 모습이 기억의 전부라 생각했는데,
어렴풋이 다른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봄이 되면 물조리에 물을 가득 채워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마당을 가로질러 모판에 물을 주셨고,
여름이면 툇마루에 모기장을 설치했고, 가을이면 헛간을 손봐서 토끼집을 만드셨다.
겨울이면 이방 저 방 누렇게 변한 창호지를 바르느라 해가 저무는 것도 모르셨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남아 있는 건, 평소 아버지를 지탱해 준 지팡이뿐이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아 지워버리면,
기억은 다 잊히는 걸까,
술 취한 아버지 모습이 선명했는데,
검은 때가 잔뜩 뭏어 있는 문틈 벽지와 반들거리는 문고리에서 발견한 아버지 흔적
아버지 모습은 늘 깨진 유리 조각 같았다. 맞추려 하면 더 부서져 버릴 것 같은,
아버지가 힘겹게 일어나 문고리를 잡는다.
중심을 잃고 한 번 휘청거리지만, 다시금 허리를 꼿꼿이 새우며, 헛기침하신다.
지워지지 않은 것은 기억이 아니라, 함께 보낸 시간이었다.
#아버지#문고리#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