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에 산다.

문득

by 바스락

방 한가운데 산산조각 난 사진, 술 취한 아버지가 안방에 걸려 있던 사진을 패대기쳤다. 깨진 액자를 보며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보고 아버지는 "저것이 자꾸 나를 보고 웃냐" 니도 내가 우습냐, 라며 엉뚱한 말씀을 하셨다.


“저것이 나를 닮았냐?"

"하나도 안 닮았어야 청년회에서 영정사진 찍자고 해서 찍었제, 뭣이 좋다고”

“확 뿌서 분 게 속이 다 시원하다”


“이참에는 웃지 말고 근엄하고 진중하게 이라고 표정 짓고 찍으면 되제”

“아따, 가스나가 뭔 표정을 그리고 이상하게 짓는데"

“아버지 사진은 이라고 웃고 찍어야제, 나볼라고 찍는가, 자식들 보라고 찍제”

“아버지 찡그린 얼굴 누가 좋아 한답디요, 사진이라도 웃고 있어야제 그래야 나중에 손주들도 좋아하제”

“이라고 웃을 끄나”

“잉, 다음에 사진은 꼭 그리고 찍어, 딱 아버지 얼굴이네”


아버지는 조용히 빗자루를 들고 안방으로 향했다.


세월의 풍파였을까

떠나고자 하는 마음이었을까

대 놓고 속풀이 할 대상이 필요했던 걸까

찢긴 사진 속 아버지 그림자는 어디로 떠나고 싶었던 걸까


아버지, 살다 보니 웃기 싫어도 웃어야 하고

미소 짓기 싫어도 입꼬리를 최대한 끌어올려야 하는 날이 있어요.

그날 애써 짓던 아버지 억지웃음이 오늘은 종일 저를 따라다녀요.


기억은 과거를 현재로 불러와 어제 일처럼 가까이에 머무는가 봅니다.



구멍 난 하얀 스타킹을 신고 배가 뽈록 나온 못난이 사진, 그 사진을 보고 아버지는 흐뭇해하셨는데,

나는 꼬질꼬질한 모습이 싫었다.


첫 월급 타서 가장 먼저 샀던 게 카메라였다.

아버지는 '찰칵' 소리에 매번 "오메, 찍지 마라, 나쁘닷(얼굴) 뭐 볼 거 있다고 그리고 찍냐" 그러시면서 매번 나를 향해 손가락 브이 대신 손바닥을 펴 보이셨다.


토방에 걸터앉은 아버지 모습, 엉거주춤 싫다고 카메라를 피해 손사래 치던 홍조 띤 엄마 모습까지 가득 담았는데, 몇 번의 이사로 그 많은 사진을 잃어버렸다.


당신 사진 한 장 손에 쥐고 유심히 들여다보시던 아버지,

아버지와 나란히 토방에 걸터앉아 찍었던 사진, '김치' 하며 웃던 그날처럼 눈 부신 햇살 아래,



'흔적'은 부재의 현존이다. <모리스 불랑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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