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도시를 기억하는 나만의 방법
여행 때는 사진을 잘 안 찍을 때도 있고 사진을 많이 찍을 때도 있다. 물론 때때로 다르지만, 여행 이후 중요한 건데 못 찍었네 사진이 없어서 아쉽다.라는 감정을 느낄 때가 종종 있어 마치 프로 사진작가가 된 것처럼 이것저것 사진을 찍어둔다. 하지만 이런 사진보다 내 기억 속에 더 많이 자리 잡고 어떤 물건을 보면 그 도시가 자연스럽게 연상되면서 다시 내가 그 도시를 가게 된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나의 경우는 음식, 혹은 특정한 상품이다.
대만을 여행 하기 이전에도 나는 밀크티를 마셔 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달달한 음료를 좋아하는 내가 커피 대신 마시는 단 음료 일뿐, 굳이 찾아가서 마시는 품목은 아니었다. 같이 여행 간 언니들이 대만은 ‘화장품 밀크티’가 맛있다고 그것을 유심히 찾아보길래 따라 마셨던 것이 밀크티와 사랑에 빠지게 된 순간 이였다. 대만 여행 내내 그것만 보이면 바로 구매해서 마시고, 비행기 티켓을 찾기 전 공항에 있는 편의점에서 남은 돈을 탈탈 털어 4병 이상 쟁여왔다.
처음 마셨을 때는 윽 되게 진하네, 이거 진짜 맛있어서 먹는 거야?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느새 한 병을 다 비우고 다음 병을 구매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GS편의점에서 ‘화장품 밀크티’ 병을 봤을 때는 환호성을 지르고 싶은걸 꾹 눌러 참고 한 병을 구매하고선, 실실 웃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료! 야호! 밀크티를 한국에서 마시면 ‘화장품 밀크티’ 맛이 나지 않아 아쉬웠던 나에게 정말 단비 같은 판매였다.
나는 일본어를 모른다. 물론 고1 때 제 2 외국어로 일본어를 배웠지만, 내가 아는 것은 하지메 마시떼, 와타시와 마트료 데스. 정도? 아! 코노방구 미와~(맞..나?) 정도는 안다.
내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는 10월로 한창 일본의 모든 곳의 분위기가 핼러윈- 일 때였다. 놀이공원에서 하는 퍼레이드는 단순한 것이 없었다. 해골 분장을 한 캐릭터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녔고, 메인 캐릭터인 미키와 미니가 공연을 했다. 메인 공연은 나름 스토리가 있었는데, 일본어라 알아들을 수는 없고, 핼러윈에 해골이 된 캐릭터들이 어찌어찌해서 다시 원래의 모습을 되찾는다는 내용인 듯했다.
곳곳에 해골 캐릭터들이 돌아다녔는데, 행동하는 것 하나하나가 정말 사진을 찍지 않고서는 못 배겼다. 자신이 맡은 역할에 맞는 행동만 했으며, 그것에 맞춰 팬서비스를 했다. 유령 개를 산책시키는 해골 부인의 개는 사람들을 향해 ‘멍멍’하고 짖었다. 신문을 들고 뛰어다니는 해골은 사람을 보면, 모자를 벗고 멋있게 인사한다.
디즈니 씨를 방문하고 나서 롯데월드의 핼러윈 나이트 파티에서 퍼레이드를 봤는데, 콘텐츠가 풍부하다는 것, 이야기가 확실해서 캐릭터의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비교해서 느낄 수 있었다. 놀이기구로 따지자면 롯데월드의 놀이기구는 나를 어린아이로 만들지만 의미 없는 퍼레이드는 안 하는 게 흥미도 면이나 공간 활용도 면에서 더 높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두 도시는 내가 한꺼번에 여행 한 곳이니 같은 카테고리 안에 든다.
원래 나는 커피를 마시지 못한다. 어린애 입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정확하다. 믹스커피도 회사라는 곳에서 마실 것은 그것 뿐이라 마시는 것으로 즐기는 음료는 아니었다. 타는 듯한 더위 속에서 프랑스어 하나 모르는 나는 한국과 일본, 대만에서 흔하게 봤던 슈퍼나 편의점을 찾지 못해서 마셨던 카페의 커피.
나중에 파리에서 만난 친구의 말로는 프랑스는 커피나 음료에 물이나 얼음을 넣어서 마시지 않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다면 스타벅스에 가야 하 해 라고 말해줬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이 흔하게 찾는다는 스타벅스를 파리와 뮌헨에서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결국 마실 수 있는 것은 에스프레소. 그게 에스프레소가 맞긴 한 걸까? 룽고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을 듯하다. 하루 종일 걸어서 다리는 아프고, 햇빛 때문에 덥고, 앉아서 쉬고 싶을 때 주문해서 마셨던 커피.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을 것 같은 때에 마시는 커피. 어떻게 잊을 수 있을 까. 그 이후로 나는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회사 언니들이 그거 유럽병이야 유럽병.이라고 말하지만 그때의 커피를 마셔보지 않았다면 그럼 나는 그 사람들한테 유럽병 걸린 사람이 되고 말래.
옹 플레흐에서 마셨던 커피와 디저트. 커피와 같이 나온 머랭은 정말 가볍고 포 삭거 린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게 해주었다. 라즈베리 마카롱은 라뒤레의 마카롱이 맛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맛있었다.
일 년에 10번 술 마시면 정말 많이 마신 거야 라고 말하는 내가 뮌헨에 있는 2일 동안 술을 마시지 않은 날은 한 번도 없었다. 허풍 조금 보태서 1L는 돼 보이는 무거운 유리 맥주병을 윈헨 사람들은 공원에서 마셔댄다. 그리고 그 옆에서 나는 같은 숙소에 있었던 사람들이랑 1L의 에일 맥주를 맛있다고 마셨다. 학센, 프레첼과 함께. 학센은 정말 맛있다. 누가 학센 먹으러 독일 갈래? 한다면, 언제 갈까?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있을 정도다.
정말 맥주만큼은 뮌헨의 그 영국 공원에서 중국풍 건물 아래서 비 맞으며 마셨던 맥주가 내 인생에서 제일 맛있었던 맥주인데, 요새 프랑스 옆동네 맥주가 그렇게 맛있다더라 라는 소문이 있어, 궁금하다.
나중에 패키지여행이 얼마나 이상했고, 장점이 있긴 한 건지에 대해 정말 크게 남기고 싶다.
패키지여행의 좋은 점은 가이드가 있다는 것이고, 나쁜 점은 가이드가 있다는 것이다.
패키지여행의 좋은 점은 이동 시 버스로 편하게 간다는 것이고, 나쁜 점은 버스로 이동하는 것이다.
패키지여행의 좋은 점은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나온다는 것이고, 나쁜 점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패키지여행의 좋은 점은 내가 가격 흥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고, 나쁜 점은 내가 가격 흥정을 할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패키지여행은 정말 이상하다. 여행의 좋은 점과 편리한 점을 모두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그것 때문에 여행이 정말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
내가 그 나라의 모든 역사와 생활상을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중요 관광지의 정보를 가이드가 알려주는 것은 좋지만, 꼼꼼하게 보고 싶은 것들을 모두 바라볼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버스나 지하철, 택시 등 내가 지역의 교통수단을 어렵게 찾아 헤매지 않아도 다리 아프지 않게 버스로 중요 관광지를 가지만, 내가 그 중요 관광지까지 찾아가는 즐거움이나 도시를 걸으면서 그 도시의 공기를 분위기를 읽지 못한 다는 것은 여행을 하지 않은 것과 같게 만들어 준다.
여행을 할 때 가장 무서운 것은 그 나라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인가 인데, 현지 음식을 먹을 기회가 차단되어 있어서, 애초에 그 나라의 가장 중요한 의식주에서 의와 주는 못하더라도 식이라도 한 번은 경험해 봐야 하는데 막혀있다.
툭툭 이를 타기 위해 가격을 흥정하고, 물건을 사기 위해 내가 직접 돈을 쓰는 것은 그 나라에서만 해 볼 수 있는 것이지만, 기회가 주어진다고는 해도 내가 사고 싶지 않은 것, 궁금하지 않은 것에서만 기회가 주어진다.
나는 정리를 꽤나 못하는 편이다. 그래서 지금도 책상 위에 내 손이 닿는 곳은 온통 내가 자주 쓰는 물건들이 뒤죽박죽으로 가득 차 있다. 언제나 새 제품으로 대체가 가능한 이런 제품들 이외에 나는 소중한 여행에 관련된 추억은 따로 보관하고 있다.
첫 여행이었던 대만을 제외하고는 여행사에서 주었던 비닐백에 보관 중이다. 여행에 대해서 숙련자가 아닌 나는 보통 비행기+호텔을 묶어서 판매하는 상품을 주로 이용하는데, 여행 비용을 결제하고 나면 여행사에서는 나에게 비행기 e-티켓을 인쇄한 종이, 호텔 바우처, 여행사에서 만든 듯 한 쓸모없는 책자, 한 번도 사용해본 적 없는 네임텍 등등을 보내준다.
그럼 나는 그 비닐백을 여행 내내 중요서류를 담아두는 용도로 사용하고, 여행 후에는 크게 여행 간 날짜와 함께 국가 혹은 도시 이름을 적어 둔다.
그리고 그 안에 여행기간 내내 내가 사용했던 영수증이나 기념이 될만한 물품들 중 종이로 된 것들을 담아둔다.
그리고 가끔 그것들을 꺼내 보는 것은 여행을 기억하게 되는 쏠쏠한 재미인데, 그것 외에 이렇게 가끔 생활 속에서 여행의 기억을 꺼내 보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들과 그 도시를 기억하기 위해 여행 이후 남기는 특별한 기억 속의 기념품은 내가 항상 여행하는 기분으로 살아가게 만들어주는 좋은 장치가 된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위해 사진을 정리하다 메인 표지 사진을 찾았다.
사진을 꺼내 드는 순간 전해지는 그때의 감정들. 그때의 그 두근거림과 함께 끝을 알 수 없는 무거운 슬픔이 나를 덮쳐왔다. 여행은 같지 않다. 항상 새로운 설렘과 두려움,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그런 여행이 피부로 와 닿는 물건들을 정리하는 것은 기분이 좋다. 내가 그 순간순간 느꼈던 감정들을 꺼내보는 것은 너무나 즐겁다.
이전의 글과는 다른 카데고리여서 번호를 붙이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