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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맫차 Nov 16. 2020

가을 부산 하루_00.~27.

아트부산&디자인 2020 구경가기


00.

어떤 여행은 시작부터 온전히 이 여행만의 기분을 내고 싶은 그런 여행이 있다. 편리함이나 신속함, 평상시에 추구하는 것들을 뒤로 던져버리고 온전히 여행의 기분을 쟁취하는 자신만만함 같은 것.

굳이 공항까지 데려다 준다는 부모님의 말을 뒤로한 채 나의 조그마한 자동차를 이끌고 나섰다. 기름은 아침에 테니스를 다녀오면서 가득 채워놓은 상태.


01.

가을의 절정인가?

날이 너무 좋아서 에어콘을 약하게 틀어놓을 정도였다. 가을 햇살은 오래된 차의 선팅을 뚫기에 충분하다. 선셋 롤러코스터의 새 앨범을 연이어 들으며, 토요일 오후에 올림픽대로를 달렸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여행 기분이었다.


02.

공항은 붐비고, 국내선 주차장은 만차다. 비싼 주차비를 부담하면서 거리도 먼 국제선 주차장에 가까스로 차를 대고 출발 35분 전쯤 수속을 마쳤다. 국내선 비행기는 시간을 딱 맞춰 탈 때 묘한 짜릿함을 준다. 비행기를 버스나 기차 타듯이 하는 재미랄까.


03.

1년 정도만의 오랜만의 비행기 여행이다. 그 사이 세상은 많이 바뀌었고, 마스크를 쓰고 비행하는 내내 앉아 있다. 이 제 더 이상 부산과 제주도를 가면서 얹어 마시던 오렌지 주스의 행복은 없다고 생각하니 비행기 티켓 가격이 더 속 쓰리게 비싸다고 생각 되었다. 그깟 주스 한잔에


04.

김해 공항에 내리자마자 자켓을 벗었다. 여긴 동남아인가. 새로운 말이 들린다.

부산은 어릴 때부터 익숙한 곳이지만, 익숙한 만큼이나 나에겐 어색한 도시기도 하다.

반갑지만 막상 인사하고 싶지 않은 고등학교 동창생 같다.


05.

사람들과 더 부대끼고 싶어서 지하철을 탔다. 공항에서 같이 걸어나가고 지하철을 한번 갈아타고, 해운대역으로 가는 내내 이어폰을 꼽지 않았다. 여행을 할 땐 난 그냥 주위의 말소리나 소음이 음악보다 더 흥미롭다. 한시간 가량 이동하는 동안에 부산과 조금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하지만 김해공항은 부산 도심과 좀 너무 멀다)


06.

해운대역에 내려서 호텔에 체크인하러 가는 길에 늦은 점심을 먹었다. 메뉴는 밀면, 시간이 애매해서 혼자 먹기 불편하지 않았다. 알바생이 거의 완벽한 서울 표준말을 구사해서 부산에서의 첫 끼 식사치곤 조금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뭔가 부산 느낌 팍팍 내고 싶었나보다.


07.

호텔 체크인, 절묘하게 해운대가 보이지만, 완벽하게 저렴한 호텔이다. 시설은 뭐 말할 것도 없고 공간도 아주 작았는데 지난 히로시마 여행이 떠올랐다. 일본의 비지니스 호텔같은 작은 방. 혼자 온 여행이란 기분이 들어서 일본을 간 건 아니지만 그 만큼 신이 났다. 어찌되었건 오션뷰라고.


08.

카카오 택시를 불렀다.

그리고 매우 현란한 택시 기사 아저씨의 운전 실력을 보며, 이곳이 부산이라는 사실이 확실히 체감되었다.

나는 운전을 정말 얌전하게 하는 편이였구나..


09.

벡스코는 뭐 벡스코다.

설레는 마음으로 아트 부산 전시장에 입장했다. 조금 늦게가서 그런지 구경하기 딱 좋은 공간과 사람의 밀도.

초대해준 선큐님을 만났고, 하나하나  AI처럼 여러 갤러리와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 해주는 걸 보면서 이런 걸 어떻게 암기하는 것일까 생각했지만, 그런 사이사이에도 이렇게 시간을 내주고 소개해주는 모습에 큰 감사함을 느꼈다.

(나는 더이상 올해 콜렉팅 예산이 남아있지 않다)

 VIP 티켓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정말 VIP가 된 기분이로군 하면서 팔짱을 하고, 때론 뒷짐을 지고 따라다녔다.


참고로 그 날 RM이 왔다갔다고 한다.


10.

국제 갤러리엔 애정하는 줄리언 오피가 있었고(그것도 주황색 한가득의), 전시장 여기저기에 옥승철, 타다시 가와마타, 마이클 크레이그-마틴, 이우환, 박서보, 유영국, 카우스, 하태임, 찰스 리치 그리고 유재연 작가의 작품도 있었다. 동선이 넓직넓직해서 구경하기 정말 좋은 환경. 알렉스 카츠의 에디션 작품을 발견했을때, 와- 카드 무이자 할부 찬스를 가동할뻔 했지만 다행히 그 작품은 이미 팔려 있었다.  프리뷰때 방문했다면, 아마도 질렀을 것이다.(나는 더이상 올해 콜렉팅 예산이 남아있지 않다2)

알렉스 카츠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 작품만은 크기와 색감의 느낌 모두 너무 마음에 들었다.


11.

지난번 KIAF 구본창 작가의 작품을 구매하게 되면서 알게 된 국제 갤러리의 담당자분도 운좋게 만나뵐 수 있었다. 친절하게도 국제 갤러리 부스 내 작품들을 하나하나 소개시켜주셨다. 구본창 작가의 더 큰 백자 시리즈 사진도 볼 수 있었는데, 핑크색이 감도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가격을 또 물어보고 말았고, "생각보다 안 비싸네요." 정신 회로가 작동하기 시작했지만 (나는 더이상 올해 콜렉팅 예산이 남아있지 않다3)


12.

재밌는 건 국제 갤러리 담당자분의 얼굴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마스크를 쓴 얼굴을 서로 안다고나 할까. 그래서 처음 구경할때 눈 인사와 함께 헷갈려서 지나치기도 했다. 코로나 시대 이후에 만난 사람은, 그리고 앞으로 이 상황이 계속 된다면 영영 마스크를 쓴 얼굴만을 알고 지내는 사람들도 생겨나는 건가라는 아트페어에서 어울리지 않는 생각을 한동안 했다. 작품을 구경가서도, 구매하고 나서 설치할 때도, 그리고 이번 아트부산에서도, 둘 다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이거 원..


13.

아트페어를 구경하는 두시간 반 가량이 금방 가버렸다.

아트페어에서 그림을 산다면 무엇보다 빠른 의사결정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건 마치, Art-pumped)


14.

저녁을 먹고 해운대를 한바퀴 산책한 후 호텔로 들어오는 길,

호텔 앞에서 올드패션드와 헨드릭스 진토닉 한잔을 마시고 들어왔다.

이렇게 혼자 바에서 술을 마시니 정말 일본 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이랄까.

혼자하는 여행에서 바 호핑만큼 즐거운 건 없다.


15.

체크아웃하고, 일본 라멘을 먹으러 해운대 역을 지나

해리단길이라고 불리는 우스운 이름의 길로 갔다.

원래 동네 이름은 우동이라는데, 우동이 훨씬 더 좋은 이름 같은데 말이다.

이제는 기차가 다니지 않는 해운대역을 중심으로 위쪽은 부산 현지의 젊은 사람들이 아래 해운대 쪽은 관광객이 가득하다. 라면 맛은 그저그랬지만, 웨이팅도 20분 가량 한 맛집이라고 한다.


16.

라면을 먹고 내려오는 길에 마침 동네서점이 있어 책 몇권을 샀다. 정말 작은 서점이였는데, 그 서점을 만드신 분의 독립서점을 만드는 과정의 이야기가 담긴 책도 팔고 있었다. 몇 번 뒤적이긴 했지만, 뭔가 카운터에 앉아 계신 분이 저자라고 생각하니 민망해서 사진 않았고 여느 때처럼 제본이 재밌거나 커버의 질감이 좋은 책을 집어 들었다. 로컬 서점에 들리는 건 나만의 여행 루틴 중 하나인데, 이번에는 일정이 워낙 짧았던 터라 미처 서점의 위치를 알아가지 못했다. 애매했던 일본 라멘집 덕분에 지나치게 된 행운이다.


17.

다시 총총 걸음으로 해운대 역을 넘어와 바닷가로 갔다. 최근에 오픈한 그랜드조선 호텔을 구경갔는데, 위치는 정말 좋았지만 드랍존이 좀 아쉬웠다.(힐튼 기장과 비교하면 더더욱) 오래된 건물을 리노베이션해서 그런지 층고가 낮은 점은 좀 아쉬웠고, 부산의 부자들이 이곳에 가득 모여 있는 것 같았다.


가나 아트와 서울 옥션의 공간엔 호텔 속 다른 공간과 비교해 텅- 비어있었는데 여기서도 박서보와 이우환 그리고 하태임의 큰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음 이 공간은 좋다. 지하의 오르페오와 스틸북스 구성은 서울 사람에겐 아무런 흥미와 호기심을 자아내지 못했다.


18.

부산엔 택시가 잘 안잡힌다. 특히 해운대 근처에는..

카카오 택시 잘 안되는 것 같다.(어제의 느낌에서 정정)

십여분을 헤매다가 벡스코라고 써진 버스가 지나가길래 냉큼 탔다. 시간이 널널하진 않았는데

버스를 타는 사치를 부렸다.

놀라웠다 택시만큼이나 버스 아저씨의 운전실력은 날카롭고 거침이 없었고,

부산의 일반 운전자들은 버스를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19.

어제 놓쳤던 몇몇 작품들 때문에 아트부산 전시장을 한번 더 둘러본 뒤(어제부터 계속 마음 속에 남아 있던 알렉스 카츠 작품에 대해선, 갤러리에 다시 구하게 되면 연락을 달라고 명함을 남겼다)


옆에 있는 시립미술관으로 향했다.


이우환 공간이 있는 곳이다.

하지만 나는 빌 비올라를 보러 갔다. 시립미술관의 건물 자체는 형편없지만, 빌 비올라 전시장의 큼직큼직한 동선만큼은 마음에 들었고, 빌 비올라 아저씨의 작품들은 그 분의 잘생김만큼이나 멋졌다. 멋지다라는 표현은 정말 부족하지만, 넋 놓고 보다보면 멋지다 이외에 별 생각 안든다.


20.

이우환의 작품 또한 큰 스케일로 압도하는 맛이 있었다. 하지만 공간은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공간의 설계나 물성에서부터 좀 더 특별했으면 어땠을까. (그렇다 나오시마처럼)


그런 공간에서 이우환의 작품은 강력한 에너지를 발휘한다고 느낀다. 아트페어나 이 정도의 공간에선

많이 아쉽다.


21.

시간이 얼마 없다. 오늘은 칸디나 호퍼의 전시 마지막 날이라고 속으로 외치며.

택시를 잡아타고 국제 갤러리 부산점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어제 부스에서 전해들은 대로 의외로 작은 사이즈의 작품들도 있어 눈길이 갔다.

하지만 생각보다 공간이 너무 작아서..


옆에 있는 복순도가에서 막걸리 두병을 샀다.

세잔을 시음하자마자 어서 집에 가고 싶기도..


22.

혼자 여행을 오면 무척 많이 걷는다. 상대적으로 시간도 많지만,

걸으면서 보는 풍경들이 함께 여행할 때는 쉽사리 포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트부산 건물을 지나 수영역까지 걷기로 했다.


마침 그 사이에는 많은 골목길과 재래시장이 있다.

서점과 미술관을 가는 것처럼 시장을 가는 것도 내 여행의 루틴 중 하나다.

자켓에 백팩을 메고, 복순도가 막걸리를 손에 들고 나섰다.


끝나가는 여행인데, 다시 시작되는 것처럼 설렜다. 사이사이 많은 풍경과 사람들을 보았고

저녁으로 넘어가는 시간대에 오밀조밀한 부산의 골목길은 새로웠다.


23.

마지막 식사로 돼지국밥을 먹었다.

후추향이 조금 있었지만, 깔끔한 육수 국물이 한그릇 뚝딱.

택시를 불러서 공항으로 향하려고 했으나, 시간이 조금 남아 뒷골목에 카페에 들렀다.

뭔가 이 골목은 망원동 같은 느낌이다.

카페 사장님은 손님이 한명도 없는데, 카페 이용시 주의사항을 잘 읽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편하게 나가도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묘한 까칠함에 "여기 충전기 꽂을 코드는 있죠?"라는 생뚱맞은 질문으로 맞대응한 뒤, 헤이즐럿 라떼를 마셨다.

재즈를 틀어놨는데,

다른거 다 차치하고 스피커가 매우 훌륭하군. 카카오 택시를 불렀다.(이번엔 성공)


24.

하루종일 걸어서 그런지 공항으로 가는 길, 마지막 부산의 모습을 눈으로 담고자 하는 결심은 어디로 간데없이

꾸벅꾸벅 졸다가 김해 공항에 도착했다.

아 되게 꿈 같은 여행이네하며,

눈 비비며 택시에서 내렸다.


25.

비행기는 연착이다.

옆자리에는 외국인이 탔다.


26.

공항에 내려서 다시 국제선 주차장으로 가는 길은 멀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울은 춥다.

귀가 시렵다. 진짜 서울과 부산은 다르네.


27.

거의 다 비어있는 국제선 주차장에 덩그러니 있는 차에 시동을 걸고,

부산의 택시처럼 운전하며 돌아오고 싶었으나

일요일 밤에 올림픽대로는 공사중이다.


서울이다.


켜면 달달거리는 히터를 틀었다.

겨울이다.





02.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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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0. 유재연



10. 알렉스 카츠



10. 줄리언 오피



10. 구본창



10. 유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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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찰스 리치



19. 마이클 크레이그-마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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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미지는 모바일보단 PC버전에서 깨지지 않고 잘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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