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going back to 505.
나는 한동안 매년 여름엔 음악 페스티벌을 갔다.
2006년에 나는 재수 학원을 다니고 있었고,
이미 대학에 입학한 고등학교 때 친구 2명을 꼬셨다.
멀고 먼 인천까지 버스를 타고, 스트록스와 프란츠 퍼디난드 그리고 플라시보를 보기 위해 진흙뻘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이야기는 매번 비슷하다.
여름이 되면, 음악 페스티벌에 관심이 크게 관심이 없는 친구라도
세상에서 음악 페스티벌이, 정확히 말하자면 락 페스티벌이 얼마나 재밌는 곳인지 설파하고
3일권 티켓을 구매하게 한 다음.
음악 페스티벌에 가서
음악을 듣다가
술을 마신다.
그리고 다시 음악을 듣고,
또 술을 마신다.
이튿날에도 그렇게 한다.
비가 종종 온다.
술을 마신다.
삼일째엔 반기절 상태로 마지막 헤드라이너의 공연을 본 다음, 셔틀이나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물론 중간중간 김치말이 국수도 먹고, 텐트 안에서 기타도 치고)
그러한 의식이 나에겐 가장 무더운 8월의 여름을 잘 마무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20대 내내 믿고 행하여 왔다.
물론 락 페스티벌만 간 건 아니었고,
적당히 말랑말랑한 근처의 음악 페스티벌도 꼭 한두 개씩은 참석했다.
이제 와서 고백하자면,
티켓값을 감당하기 위해 대학생 기자를 해야겠다는 불순한 마음을 먹었고, 실제로 행동에 옮겼다.
2012년인가
지산 락페스티벌에서 라디오헤드 공연을 볼 때
한 젊은 부부가 조그만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헤드셋도 같이) 무대 멀찍이 서서 공연을 보는 모습을 보았는데, 내가 언젠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게 되면 이런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지금은 2022년이다.
코로나 덕분에 지난 3년 간 음악 페스티벌 따윈 없었고, 올여름엔 꽤 많은 페스티벌이 열렸다.
그런데 가고 싶지가 않았다.
(물론 뱀파이어 위크앤드 정도는 보고 싶었지만)
지난 15년가량 나에게 음악 페스티벌은 어떤 존재였는지 생각하면서
인스타그램 속 페스티벌들을 구경했다.
하고 싶은 것과 가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과 같이 있고 싶은 것.
여러 가지 것들을 생각만 하고.
올여름엔 음악 페스티벌에 가지 않았다.
내가 경험한 마지막 음악 페스티벌은 2019년에 열린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선셋 롤러코스터를 너무 좋아했던 나는
여름밤 그들의 라이브를 듣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오랜만에 그런 설렘을 느낀 나머지 기록도 남겨 놓았으니까.
루틴을 찾았는 줄만 알았지, 붕괴될지도 모르고-
아래처럼 내내 즐겁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