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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by 윤근태 Nov 25. 2016

사진이라는 예술, 대중이라는 희망

'비비안 마이어'와 '슈가맨'은 어떻게 예술가가 되었는가.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와 책 '비비안 마이어:나는 카메라다'는 죽은 뒤에 작품이 공개되어 천재예술로 평가받는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과 일생을 얘기한다. 그녀의 삶과 예술을 통해 대중에게 사랑받는 '예술이 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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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라는 직업을 가진 여자. 그리고 그 여자가 간직한 10만통의 필름. 누구에게 공개한 적 없은 사진을 남긴 천재 사진작가 '비비안 마이어'. 책과 다큐멘터리를 통해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또 하나의 다큐멘터리가 떠올랐다. '서칭 포 슈가맨'. 그 내용을 짧게 요약하면 미국에서 조용히 두 장의 앨범을 낸 뒤 사라진 '로드리게즈' 라는 무명의 가수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아공에서 20년 넘게 최고의 가수로 기억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어떻게 그의 앨범이 남아공으로 전해졌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사람들 사이에 소문만으로 복제와 해적판을 거쳐 그는 예술가가 되었다.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특정 다수에게 열광적 지지를 얻어다는 점이다. '비비안 마이어' 는 사후에 우연히 공개된 사진을 통해 미국 대중들의 지지를 얻었고, '로드리게즈' 는 우연히 건너간 앨범을 통해 남아공의 국민적 가수가 되었다. 둘 사이의 차이라면 '비비안 마이어' 는 자신의 사진을 세상에 공개하지 않았지만, '로드리게즈' 는 자신이 최종적으로 창작한 음반을 발표했다는 점이다. 아마도 '비비안 마이어'와 '서칭 포 슈가맨' 이 주는 감동, 그리고 '비비안 마이어' 를 다룬 책과 다큐멘터리가 주는 불편함의 원인은 여기에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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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에서의 한 장면. 영화의 중반쯤, 제작자인 '존 말루프' 는 그녀가 프랑스에 살았던 시절과 프랑스의 이웃에게 보낸 편지에 관한 이야기한다. 편지에서 비비안 마이어는 필름을 다루는 옛 이웃에게 자신의 필름을 프린트해줄 것을 청한다. 이 편지를 근거로 '존 말루프' 는 흥분된 목소리로 비비안 미어어 역시 자신의 사진이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를 원했다고 말한다. 다음 장면에서 그는 기존 예술계를 비판하며, 그녀가 직접 프린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비안마이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말한다. 그는 이미 자신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를 견지하고 있으며, 자신을 방어하기에 주저함이 없다. 또한 기존 예술 체계에 대한 비판의 의견도 서슴없이 말한다. 우리는 '비비안 마이어' 의 일생 중 일부 흔적만을 볼 뿐이다. 때문에 그녀를 잘 알 수 없다. 하지만 비비안의 수수께끼와 같은 삶 사이에서도, 그는 이 순간 확신에 가득 차있다. 그의 시선에는 사진예술에 대한 질문이나 개인적 삶에 대한 존중 따윈 없으며, 오로지 그녀의 개인사와 사진 작품을 연관시킨 호기심만이 가득하다. 때문에 이 영화는 그녀의 일생이라기보단 그녀의 사적 기록을 이용한 존 말루프의 마케팅 도구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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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영리했던 것일까. 혹은 모든 것은 우연이었을까. 존 말루프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녀의 사진은 블로그를 통해 대중에게 노출되었고, 대중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통해 전문가들로부터도 인정받는 사진작가가 되었다. 불특정 다수의 지지가 있고, 그 뒤에 전문가들이 첨언을 붙인다. 사실 그녀의 사진이 대중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데에 전문가들의 의견은 필요하지 않았다. 또는 전문가들의 인터뷰는 그녀에 대한 대중의 지지 현상에 대해서 어떠한 설명도 하지 못한다. 블로그와 영화로 이어지는 그의 방식은 정확히 대중들을 향한 것이었다. 대중들은 이에 응답하여 '비비안 마이어' 를 예술가의 자리에 올려놓았고, '존 말루프' 를 (아마도) 돈방석에 올려놓았다. 모든 것은 대중들의 힘이었다. 그렇다면 그 힘을 가진 대중은 어떤 존재일까? 물론 나한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있을 리 없다. 다만 처음에 말한 두 다큐멘터리가 준 감동에서 하나의 가능성을 가져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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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이 죽은 '비비안 마이어'와 소리 없이 사라진 '로드리게즈' 를 예술가로 만든 건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보낸 열광적인 지지였다. 마케터라면 혹은 사회학자라면 이런 현상에 대해서 논리적 이유와 발상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그것은 쉽게 설명되지 않는, 다소 상투적인 표현을 빌려 '기적'처럼 보인다. 고통받는 한 사람을 온 세상이 위로해주기도 하고,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는 한 사람이 마지막으로 쥐어짜낸 용기를 알아채 다시 시작할 힘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때때로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기적이 벌어진다. 다를 것 없이 반복되는 누군가의 평범한 일상도 그의 다름을 발견해 줄 불특정의 누군가들이 있다면 우리의 인생은 좀 더 특별해질 수 있다. 물론 때로는 집단적 광기로 이해할 수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평범한 존재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기적 역시 그들의 능력이다. 그런 허황된 희망이 나쁘지만은 않다. 나에게 '비비안 마이어'는 그런 희망의 예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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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맘대로 안되는 세상, 겁먹지 않고 살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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