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학교에서 장래 희망을 그림으로 그리라는 과제가 있었다. 나는 주저 없이 우주비행사를 선택했지만, 헬멧을 그리다 실수한 탓에 급히 고친 그림은 우주복이 아닌 농부의 모습이 되었다. 결국 장래 희망을 농부로 바꾸었고, 뜻밖에도 그 그림은 우수작으로 뽑혀 교실 뒤에 전시되었다. 참관수업 날, 부모님이 그것을 보고 지었던 쓴웃음은 아직도 선명하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언제나 어긋날 수 있다는 사실을. 우주비행사를 꿈꾸었으나 농부가 되어버린 그림처럼, 바람은 대체로 빗나가고 왜곡된다고 믿게 되었다. 그래서 내게 바람은 오랫동안 부정적인 말이었다. 절실히 바라면 멀어지고, 간절히 원하면 반드시 흩어져 버리는 것. 나는 애써 바라지 않으려 했고, 그렇게 눌러둔 마음은 오히려 조금은 이루어지는 듯 보였다. 내게 바람은 늘 스쳐 가는 바람(風)과 같았다. 손에 잡히지 않고 흩날려 사라지는 허망한 기류,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그림자였다.
그러나 그 습관은 아내를 만나며 무너졌다. 바라지 않으려 해도 바람은 나를 덮쳐왔다. 외면할 수 없는 절실함은 결국 결혼으로 이어졌고, 아들과 딸을 품에 안았을 때도 같은 감정을 느꼈다. 이제 내게 바람은 더 이상 흩날리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붙잡아야 할, 삶을 뜨겁게 데우는 숨결이 되었다.
나는 뒤늦게 깨닫는다. 바람은 허망한 환상이 아니라, 삶을 앞으로 밀어내는 힘이라는 것을. 간절한 바람은 나를 움직이고, 흔들리는 날들을 버티게 한다. 내 삶은 늘 바람에 의해 바뀌어 왔고, 지금도 그 절실함 속에서 길을 이어가고 있다. 바람은 내 안에서 불어오는 계절이며, 내 걸음을 지탱하는 가장 깊은 숨이다. 그리고 언젠가 마지막에 다다를 때, 나는 또 다른 바람을 품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끝을 넘어 새로운 시간을 열어젖히는 조용한 힘, 어쩌면 내 생의 마지막까지 나를 일으켜 세울 마지막 바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