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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thew Min 민연기 Oct 24. 2022

세상을 연결하는 현관 개조 이야기

MAtt's Toy Workshop

우주선에는 ’에어록(airlock)‘이라는 방이 있습니다. 진공의 우주와 공기가 있는 우주선 사이에 경계입니다. 우주로 나서기 전에 우주선의 공기를 모두 빼지 않고 에어록의 공기만 우주와 동일하게 만들어 줍니다. 우주에서 돌아올 때는 반대입니다. 그래서 우주 괴물들은 이곳에서 싸우기를 좋아하는데 에어록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반증이 되기도 합니다.


https://www.reddit.com/r/theydidthemath/comments/ex14nf/request_from_aliens_1986_towards_the_end_of_


현관 인테리어는 그래서 중요합니다. 집안과 집 밖의 중간에 있으면서 집의 첫인상이 되기도 하고 집 밖의 세상을 만나기 전 인상이기도 하니까요.


https://m.blog.naver.com/smoke2000/220728498598


처음에는 모처럼 구매한 조명과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현관을 화사하게 하얀색으로 칠했지만



정작 전실은 이렇게 어두침침했지요. 뭐 바깥세상과 스위트 홈을 나누는 경계에서 어떤 싸움이 벌어질지 모르니 그대로 두어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빛바랜 베이지색과 체리색은 아무리 상상력에 채찍질을 해도 에일리언과 레이저 총이 아니라 전래동화 도깨비와 몽둥이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뭔가 장엄하면서 상상을 뛰어넘는 처절한 우주 생명체와의 결투라면 특별한 색깔이 필요했습니다. 진한 청록색은 그렇게 선택되었습니다.



우주전쟁을 기대하고 있었으니 자전거도 그냥 두어서는 안되었지요.



당장 거친 바깥세상에 출격할 수 있도록 자전거도 대기하고 있어야 합니다. 언제든 발사될 수 있도록 줄지어서요.


https://youtu.be/fLdY-_BCoKU


그렇게 전실을 꾸미고는 드라마도 보고, 만화책도 읽고, 커피도 마시고, 게임도 실컷 한 다음 문과 창문의 체리 색도 스페이스 오페라의 한 장면처럼 진한 갈색으로 바꿨습니다.


하지만 이 긴 수리는 처음부터 잘못된 전재로 시작되었습니다. 바깥세상은 생존을 위한 치열한 전쟁터, 특히 우주전쟁과는 거리가 멀고 집에 돌아올 때도 비장해질 필요는 없습니다.


그 사실을 아내는 굳이 설득하지 않고 내 손에 페인트 통을 쥐여주는 걸로 설명했습니다. 그 사이 아내의 손에는 이미 두 번째 하얀색 페인트 통이 들려있습니다.



칠해라!!!!


그리고 이케아에 하얀 벽과 어울릴 장을 사러 갔습니다.



바깥세상은 내 생각처럼 무섭거나 비장한 곳이 아니라 예쁜 신발을 신고 나서는 곳이어야 한다고 그래서 신발을 보관하는 곳이 있어야 하는 거라고 말이죠.



바닥도 빛바랜 타일이면 안 됩니다. 무거운 색은 발걸음만 무겁게 만들 뿐입니다. 이미 붙이기만 하면 되는 밝은 색 접착 타일이 장바구니에서 대기 중이었지요.



이제 험악한 세상을 나서기 전에 만나는 풍경은 이렇게 변했습니다. 너무 하얀 공간에 속이 시커먼 내가 함부로 바깥에 나서도 좋을까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고 싶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이런 풍경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속이 시커먼 내가 거친 세상에 더 시커멓게 되어버렸는데 저 하얀 공간에 들어가도 되나 주춤하게 되었습니다.


그나저나 귀찮아서 칠하지 않은 저 배수관이 신경 쓰입니다. 시껌시껌했던 전에 인테리어와는 그대로 잘 어울렸는데요. 에일리언의 반짝이는 검은색이 아니라 라푼젤의 긴 금발 색으로 칠하면 어떻까 고민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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