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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thew Min 민연기 Jan 04. 2024

키티 건담과 일 년 전쟁

MAtt's Toy Workshop

같은 청바지라도 색깔부터 모양까지 미묘하게 같아 보여도 모두 다릅니다. 이 아는 사람만 아는 차이가 장난감에도 통용됩니다. 1979년에 방영된 만화영화 기동전사 건담입니다. 수많은 건담 이야기의 시작인 건담 RX-78은 그 긴 역사와 함께 어딘가 미묘하게 다른 수많은 오리지널 건담 RX-78이 탄생했습니다.  


건담 RX-78 역시 아무리 종류가 많아도 비싼 건담과 싼 건담으로 구분할 수 있지요. 그래도 저는 머리가 크고 팔다리가 짧은 SD 건담을 좋아합니다. 전쟁하는 로봇이 귀엽다는 모순에 끌리는 거 같아요. 그래서 지난겨울 일본에 어느 쇼핑몰에서 건담, 그것도 RX-78-2 옷을 입고 있는 헬로 키티를 발견하고는 지갑을 막아볼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쇼핑백에 담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얼마를 주고 산 건지도 모릅니다. 



어떤 장난감이 들어있을지 고민하기 전에 상자부터 너무 예쁘잖아요. 



파랗고 빨간 원색도 마음에 들지만 부품을 떼어내면 이렇게 헬로 키티 실루엣이 남습니다. 



러너 하나에 4가지 색을 넣는 방법은 반다이의 오랜 기술이라 놀랍지 않았지만 키티가 쓸 건담 헬멧은 평범한 플라스틱보다 표면이 매끄럽습니다. 아마 스팀을 이용해 금형 온도를 빠르게 바꿔 표면 광택을 더하는 스팀 사출 방법을 사용한 거 같아요. 



부품이 몇 개 되지 않아 금방 만들 수 있습니다. 표지 그림처럼 예쁘지만 만드는 걸 즐기기에는 너무 짧죠.  



이 모델은 건담 RX-78-2와 헬로 키티 이렇게 2개가 세트입니다. 머리를 바꿔 헬로 키티 건담을 만드는 거라



이렇게 남은 건담 머리를 헬로 키티 몸에 붙일 수 있습니다. 또 새로운 미묘하게 비슷한 건담이 탄생했습니다.



저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보다 만드는 시간을 더 좋아합니다. 플라스틱 색으로 기본 색상을 표현했지만 생략된 부분이 많아 좀 더 예쁘게 만들어 보려고 마음먹었어요. 이렇게 1월에 구매한 헬로 키티 건담과 1년간의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머리를 반으로 가르는 접합부에 접착제를 잔뜩 발라 굳히고 사포로 매끄럽게 다듬어 줍니다. 





기본이 되는 SD-EX 시리즈는 부품을 단순하게 디자인하다 보니 구멍이 숭숭 뚫린 부분이 많습니다. 앞에서 보면 그럴듯하지만 뒤로 보면 텅 비어있어 엎어놓은 바가지 같죠. 플라스틱 판과 퍼티로 모두 메워 주었습니다. 제 소중한 시간도 함께 메워졌습니다.  



구멍도 메우고 좀 있어 보이도록 플라스틱 판을 잘라 붙이도 했어요. 



그냥 메울 수 없는 곳은 충치 치료하듯 더 파주기도 하고요. 



이렇게 플라스틱 판으로 보강한 곳은 밋밋합니다.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해 작은 디테일 부품을 팔기도 합니다. 여기서 정신을 다잡지 않으면 또다시 지갑이 푸석푸석 메말라 버리지만 저에게는 궁극의 장난감 제조기가 있습니다. 하하하


내친김에 맘에 안 들었던 총도 새로 만들어 줍니다. 

https://brunch.co.kr/@matthewmin/293



정밀한 묘사가 장점인 RG 제품과 비교하면 여전히 심심하지만 그래도 훨씬 그럴듯합니다. 



다시 조립해 봅니다. 목표로 삼았던 RG 건담과 조금도 비슷하지 않고 어딜 고친 건지 처음과 하나도 달라보지 않네요. 



다시 한번 궁극의 장난감 제조기 3D 프린터로 관절 하나하나 움직이는 손을 만들어 줍니다. 



SD 건담에게는 과분해도 헬로 키티라면 이 정도 손은 있어야 합니다. 




심심한 면은 패널 라이너로 선을 넣어 줍니다. 중간중간 구멍을 넣어 주면 뭔가 저 구멍에서 나올 것 같은 상상에 더 즐겁죠. 



3D 프린터로 만들어 둔 작은 장식과 플라스틱 판을 군데군데 붙여줍니다. 소소한 부품을 붙이며 시간도 소소히 흐르다 여기까지 왔을 때 봄을 지나 여름의 한 가운데가 되었습니다. 



이제 상자랑 똑같이 색을 칠해주어야 합니다. 



이쑤시개로 고정하고 밑 색을 칠합니다. 표면을 확인하거나 페인트를 단단하게 고정하기 위해 프라이머를 쓰는데 저는 그냥 회색 락커 페인트로 칠해 버렸습니다. 락커는 플라스틱을 녹여서 정말 단단하게 칠해지거든요. 



원하는 곳에만 색을 칠하기 위해 마스킹 테이프를 붙입니다. 



괜히 회색으로 했나 봐요. 원하는 하얀색이 나올 때까지 몇 번이나 칠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가을이 되었습니다. 



다음 색을 칠하기 위해 그 위에 마스킹 테이프를 붙이고 칠해줍니다. 



붙이고 또 칠하고, 



붙이고 칠하고를 반복합니다. 이제 날씨도 가을을 넘어 쌀쌀해졌어요. 모형 만들기를 좋아하시는 분들 중에도 이 과정을 즐기는 분은 많지 않으실 거예요. 



그래도 이렇게 마스킹 테이프를 땔 때는 참 기분이 좋습니다. 붓으로 슥 그리는 게 더 빠를지 모르지만 마스킹 테이프를 떼어내고 나온 깔끔한 선은 붓으로는 따라가기 힘들죠. 자세히 보면 엉망입니다. 하지만 에어브러시로 아크릴 도료를 사용하는 게 그리 익숙하지 않았는데 이번에 어떤 농도가 적당한지 배우기도 했어요.  



물론 작은 부분은 붓으로 칠해줍니다. 



박스 표지 색깔이 완성되었습니다. 이제 겨울도 한가운데 접어들고 연말이 되었어요. 원래 기동전사 건담이 활약하는 전쟁이 '일 년 전쟁'이니 더 이상 느긋하게 만들기를 미룰 수 없습니다. 



패널 라인에 패널 라인 전용 도료를 칠합니다. 모세관 현상으로 움푹 파인 패널 라인을 따라 깨끗한 선이 그려집니다.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면봉에 시너를 묻혀 닦아주면 정말 건담 같아지죠. 



옛날에 만들고 남은 스티커도 살짝 붙여줍니다. 스티커가 거의 떨어져 가기 때문에 건프라를 좀 더 사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에어브러시로 명암을 넣었으면 좋겠지만 그럴 실력은 되지 않아 파스텔로 명암 넣어줍니다. 저는 이 작업을 참 좋아하는데 아주 작은 곳에도 명암 표현을 할 수 있거든요. 건담은 원래 커다란 로봇이니 사람이 바라보기에는 명암도 세밀하게 보이지 않을까 생각하거든요. 



에어브러시로 이렇게 작은 부품에 명암을 넣으려면 보통 일이 아닐 거예요. 파스텔은 노력에 비해 훨씬 그럴듯하게 보이죠. 



파스텔이 날아가지 않게 무광 투명 락카로 코팅을 했기 때문에 금속이나 유광은 나중에 칠합니다. 



이제 크리스마스가 되고 만든 부품을 조립했어요. 가장 즐거운 작업입니다. 



키티는 색을 더하거나 개조를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바라보아도 플라스틱이 그대로 드러난 지금보다 더 좋아지지는 않을 거 같아요. 지금 상태가 가장 키티스러우니까요. 



다이소에서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발견한 투명 상자에 넣어주었습니다.  



이렇게 헬로 키티 건담과 1년을 보냈습니다. 오랜만에 만든 플라모델이고 딱히 새로운 시도를 해보지도 못했지만 정말 즐거웠어요. 



원래 장난감보다 내가 얼마나 더 예쁘게 만들었는지 뿌듯해하면서요. 

https://youtu.be/IXFxiKKbIp8


1년에 한 번 정도 프라모델을 구입합니다. 하지만 좀처럼 시작하지 못해서 상자 그대로 쌓여 프라탑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다음에는 진지한 건프라를 만들고 싶은데 MENG 사에서 '듄' 시리즈를 출시했더라고요. 다시 프라탑이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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