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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tOh Apr 07. 2016

비즈니스 코디네이터

기업의 첫째아들 역할을 하는, 보이지 않는 비운의 직무에 관하여

우리 일상에는 책임지기에 무겁고 지겨운 일들이 많이 발생합니다.


집에서 분리수거를 맡는다던가(아파트 단지 중에는 분리수거 시간을 특정일 새벽으로 지정하는 곳이 많죠.), 연일 야근이 끝나고 하루 휴가를 냈는데 아이가 학교를 쉰다거나 하는 일이죠. 물론 대안이야 낼 수 있겠으나, 그 방법이 까다롭거나 지극히 단기적인 대응일 경우가 대부분일 겁니다.


회사도 직장인에게는 일상인지라, 이러한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곤 합니다. 어느날 여러 부서가 모여 회의를 하다가, 이슈만 증가하는 가운데 회의가 끝날 기미를 안보일 때쯤, 한 팀장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이슈들을 다 해결을 해야 하는데, 해결책은 잘 안나오는 것 같네요. 소는 누가 키우나요?”, 한동안 회의실은 적막에 휩싸였습니다.


“소는 누가 키우나?”라는 문장은, 예전 개그맨 박영진님의 한 개그 코너로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표현입니다. 소의 등에 올라타 여유를 즐기고 꿈을 키우고 싶다면, 일단 소가 튼튼하도록 잘 키워야 한다는 의미죠.


비즈니스 전략도 마찬가지라, 모두가 전략과 비젼만 생각하고 있는 동안 하루하루의 실적과 과제들을 놓치기가 쉽습니다. 물론 전략의 영역과 일상업무는 구분되어있는 개념이지만, 요즘같은 불확실한 시대에 그런 것들을 각각 나눠서 생각하긴 어렵죠. 특히 현 시대의 전략이란 실행 불가능한 꿈그림같은 것보다는, 매우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수준의 비젼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실무 경험이 강한 현업 인력에게서 전략을 기대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최근 다수의 기업들이 도입하는 오픈이노베이션 워크샵이 그런 예이며, 거기에서는 일상으로부터 시작하는 전략 도출 노하우가 매우 강력하게 주입됩니다.


처음에는 현업 실무진들이 그런 접근법으로 전략을 수립하기 시작하면 굉장히 재미있어 합니다. 다만 그것들이 당장의 업무에 도움이 되면 다행인데,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전략/기획 부서에 근무한다면 몰라도, 영업처럼 데일리 루틴이 강한 부서에 있다면, 전략 관련 회의를 하는 동안 노트북에서 실적시스템에 접속하고, 당장 협업부서와 메신저로 대화하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하죠. 피곤한 삶은 집으로 이어지고, 먹고 자는 것 자체에 행복을 느끼니, 이불을 덮고 스마트폰을 드는 순간 전략이란 참으로 덧없고 4차원의 틈에 있는 또다른 세계로 느껴질 뿐입니다.


이런 한계로 인해, 결과적으로 현업과 전략은 동떨어져 있게 되고,  기업은 전략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KPI를 만듭니다.하지만 인간은 지능을 가진지라, 안타깝게도 기획부서가 제시한 KPI는 보통 조금만 비틀면 쉽게 달성할 수 있죠. 사실 평가시즌의 현업 근무자는 스탭보다 머리가 좋거든요(여러가지 의미로).


종합적으로 봤을 때 전략과 실행은 겉돌아가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현업에 갑자기 빅 픽쳐를 요구하면 뜬구름 잡는 얘기들이 많아지고, 해결책보다는 이슈만이 늘어나며, 그래서 “소 키우는” 얘기들이 나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전사 비즈니스 전략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중간에서 실행 과제들을 어레인지 하고 추진을 시켜주는 역량이 필요한데, 여태까지는 이런 기능을 수행하는 직원들은 스탭으로 분리되어왔었죠.  현업을 통해 실행을 시키되 본인의 책임이 아니기 때문에, 때로는 무책임하게 현업을 푸시하는 경찰 역할로 치부받곤 하지요. 하지만 이러한 기능을 하는 사람들의 최고의 역량은 “네트워크”와 “리소스 안배”를 통해서 비즈니스가 전략방향에 맞게 돌아가도록 기업의 연결고리가 되어주는 겁니다. 목표수립과 평가는 약 1년간의 간격이 있으며, 그 사이에 목표 달성에 가까워지도록 회사를 이끌어가는 보이지 않는 손인 거지요.


이들은 스탭과 현업 사이에서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갖기도 하지만, 개인의 기여도와 성과를 떠나 회사가 지속성장을 하는데 헌신을 하며, 늘 정확한 판단력과 타이밍을 요구받고, 반대를 무릅쓰고 관철시켜야만 하는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갑니다.

스탭과 현업 사이의 연결고리이자, 많은 것을 주장하기보다는 들어야만 하며, 누구보다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어야만 하는, 누구보다도 성과가 불명확한 상황에서 몸을 내던져야만 하는, 이들은 누구일까요?


바로 오늘의 주제인 “비즈니스 코디네이터”입니다.


원초적인 접근을 위해 구글링을 통해 이들의 정의를 찾아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A business coordinator is someone who is central to all the different business processes in the organization.


각기 다른 프로세스라 함은, Value Chain상의 각 기능들을 의미하며, 조직적으로 설명하자면 “각 사업부”를 의미합니다. 위치는 그렇다 치고, 역할은 뭘까요? 이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1. The primary function of this role is to manage the flow of information between the different areas or modules of the business.


2. The coordinator works to break down these information silos and encourage cooperation.


다시 설명하자면, 이들의 역할은 각자의 KPI로 인해 회사 내에서 불필요한 경쟁을 하고 단절되어 있는 조직간의 벽을 깨고, 회사의 목표를 위해 서로 협력할 수 있도록 하는, 가볍게 얘기한다면 윤활유, 진지하게 얘기한다면 한 집안의 첫째 형같은 역할을 한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모두의 얘기를 들어줘야 하고, 중요한 의사결정은 내려줘야(혹은 받아내야) 하고, 험한 일은 나서서 막고, 마찰은 중재하는 역할인 거죠.


최근 많은 온라인 기업들 중에는 PO(Product Owner)라는 직책으로 이러한 코디네이터 역할을 도입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사실 그들이 이해하는 것과 달리 PO는 좀 더 IT에 가까운 개념입니다. 프로세스와 시스템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비즈니스를 목표와 목적에 맞게 돌아가도록 하는 역할이죠. 하지만 일부 스타트업을 제외한 우리나라 대부분의 PO들은 초심자이거나 치기어린 젊은이들이 많고, 대한민국 기업들과 같이 수직적 조직에서 그들이 제대로 일을 해나가기는 꽤나 어렵습니다. 솔루션은 대부분 IT를 통해서 제시하게 되죠. 이러한 역할은 조직간의 유기적 협력을 전체적으로 조율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따라서 PO를 비즈니스 코디네이터의 역량으로 정의하기보다는, 전사 전략/기획 기능에서 좀 더 큰 판을 중재하고 추진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합니다.


비즈니스 코디네이터는 생산성이 중요했던 과거에는 빚좋은 개살구였으나, 불확실성이 커지고 애자일리티가 중요해지는 현 시대에서 빠른 비즈니스 전개와 기존 사업간의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즉 “소를 키우면서 꿈을 꿀 수 있도록” 하는 직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이 갖춰야할 역량이나 육성 방향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제시된 바가 없으나, 뛰어난 영업역량만으로도, 또는 두뇌만으로도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와 근성, 쉽게 흔들리지 않는 멘탈, 각 이해관계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능력 등 기술적으로 성장시키기 어려운, 아주 근본적인 성향에 달려있기 때문에, 이들의 채용이나 육성 과정에 있어서도 그 안목이 굉장히 뛰어나야 적합한 인재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기업 내에 그런 사람이 몇 명이나 필요할까요? 사실 이들은 많을 수록 좋은 건 아닙니다. 권한을 가질 자격이 있는 소수의 인원만으로도 충분히 조직을 움직이고 전략을 실행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업무효율이 굉장히 높고, 기업에 생기를 불어넣을 에너지를 가졌으며,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탁월한 비즈니스 코디네이터를 확보하는 것은 숨겨진 보배를 찾은 것과도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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