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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tOh Apr 17. 2016

레고, 어떻게 무너졌는가

Book Review : [레고, 어떻게 무너진 블록을 다시 쌓았나]

8살 먹어 초등학교 들어간 딸이 있는 저희 집에는 레고 상자들이 한 켠에 가득 쌓여있습니다.


아이가 공주님인 만큼 프렌즈도, 디즈니 프린세스도 있지만, 한 편에는 미니쿠퍼, 스타워즈, 아키텍쳐, 아이디어 월e와 같이 키덜트족이면 쉽게 알 만한 것들도 있죠. 물론 저는 키덜트 수준의 전문성을 갖고 있진 않지만, 바쁜 삶에 몇 안되는 안식처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좀 사그라들었지만 레고방도 아파트 단지마다 잘 형성되어 있는데다 요즘은 아울렛 매장의 대부분에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어 접근하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누구든 한 번은 가지고 놀았을 법한, 사탕가게 모형캔디로도 나오는 그 네모란 블록은 어떠한 흥망성쇠를 지나왔을까. 아니, 지금의 폭발적인 성장과 팬덤이 형성되기까지 어떤 위기가 있었던 것일까.


'16년 한글판으로 출간된 [레고-어떻게 무너진 블록을 다시 쌓았나]에서는 지금과 같이 급변하는 시장에서 많은 기업들이 경험하는 실패 원인과 타개책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실 요즘 나오는 혁신 관련 책에서는 대부분 공통적인 성공사례들이 있는데다, 이 책에서도 성공 사례에 있어서는 그 맥락을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실패에 조금 더 촛점을 두고 이 책을 살펴봤습니다. 실패사례와 성공사례 중에는 역시 실패사례가 재미있거든요. 불구경은 강건너쪽이 재미있고, 가장 재미있는 구경은 싸움구경이며, 사례는 실폐사례가 백미라는 진실은 다들 알고계실 거라 생각합니다(물론 저에게 이런식의 재미가 일어나지 않길 간절히 바라고 살아갑니다만). :D


LEGO는 1934년 만들어진 브랜드로, 덴마크어 "Leg godt(Play well)"로부터 유래된 단어입니다. 창업은 1932년이니 약 2년만에 본격적으로 브랜드를 걸고 사업을 이어갔다고 봐야겠죠. 즉 BI 자체가 슬로건인 직관성과 통찰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play well의 주체가 사용자, 즉 고객이라는 관점 또한 시대적 상황을 감안했을 때 꽤 세련되고 진보적인 브랜드인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 1978년까지 46년이 지나서야 연간 10억 크로네($1억 8,000만) 매출을 올립니다. 달러는 당시 환율입니다. 글로벌 기업으로서 46년동안 성장의 결과가 그정도라면 미미한 수준으로 봐야겠죠. 하지만 1979년을 기점으로, 가파른 성장을 거쳐 15년이 지난 1993년에는 70억 크로네 수준으로 7배 이상의 성장에 성공합니다.


성공 요인이야 설명하자면 길지만, 뒷얘기를 위해 주요 키워드만 뽑아내면 다음과 같습니다 : 듀플로, 디자인 라이센스(디즈니), 테마화(캐슬, 스페이스 등), 미니피규어, 레고랜드.


지금도 들어보면 알 만한 시리즈들이죠. 특히 미니피규어는 16탄을 거쳐 지금 곧 디즈니 버전을 앞두고 있습니다. 5월에 아주 난리겠네요. ㅎㅎ


이런 레고가, 90년대 중반 들어 심각하게 상반되는 지표를 바라보게 됩니다.

아래 책에 나오는 차트를 보면 한 눈에 그 원인이 확 들어옵니다.

신규 장난감수는 늘어나는데 수익이 감소. 다시 풀어 설명하자면


1. 신규 장난감 확대에 따른 개발비용 증가, 라인업 확대에 따른 생산비 증가

2. 매출 정체

3. 비용 증가에도 매출이 둔화되며 이익 급감

4. 이에 대한 타개책으로 "더 공격적인" 신상품 확대, 역시 매출은 정체상태로 이익은 (-)로 전환


이 중에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2번(매출 정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94년, 뭐가 문제였을까요? 이 때 우린 추억의 한 소절을 꺼내어 볼 수 있습니다. 아래 위키피디아 정의를 한 번 보시죠.



물론 슈퍼패미콤이나 IQ2000같은 게임기도 많이 봤지만, 본격 콘솔게임의 대표주자인 플스가 출시된 시점과 맞물립니다. 게임기가 문제가 아니라, 이런 게임기들이 활성화되면서 "아이들이 노는 방식"이 바뀌었다는게 화근이죠. 시장을 제대로 바라봤다면 몰라도, 아마도 레고는 이 당시 굉장히 보수적인 집단이었고, 바깥의 게임기보다는 그저 장인정신을 동반한 블럭 개발에 집중하고 매달려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책에 나오는 한 기사를 인용하죠. 영국 인디펜던트 2000년 기사입니다.

"즉각적인 만족을 구하는 오늘날의 아이들은 등만 쓰다듬으면 가상 애완동물이 살아나는 환경에서 플라스틱 블록 수백 개를 쌓는 수고를 원치 않는다."


아이들의 생활 방식에 생긴 획기적인 변화들을 무시한 채로 레고는 1999년 전반기 최대 규모인 1,000여 명의 직원이 해고 대상으로 올라갑니다. 전설적인 아이들의 놀이 플랫폼에서 장난감 가게 계륵으로의 추락, 레고에게는 절대 절명의 시기를 눈앞에 두게 됩니다.


그 이후 일곱가지 전략을 중심으로 레고의 혁신이 일어납니다. 주요 골자는 아래와 같습니다.


1. 다양하고 창의적인 사람을 고용하라

2. 블루오션 시장으로 향하라

3. 고객 중심으로 운영하라

4. 파괴적 혁신을 실행하라

5. 대중의 지혜를 활용하고 열린 혁신을 촉진하라

6. 혁신의 전 영역을 탐험하라

7. 혁신 문화를 구축하라


어떤가요? 요즘 기업들이 외치고 있는 주요 전략 트렌드와 매우 유사하죠?

처음 제가 실패 원인에 촛점을 둔다고 한 것은, 그 이후의 타개책이 최근 이슈화 되고 있는 기업전략과 거의 일맥상통하기 때문입니다. 위 전략에 대해서는, 저보다도 훨씬 전문성 있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골자만 올려드립니다.


그 이후로 긴 정체기를 지나 다시 성장가도를 달리던 레고는 2004년 다시 한 번 위기를 맞게 됩니다. 과거 환경적 요인과는 달리 이 때의 실패 원인은 좀 더 내부에 있었는데요,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1. 매출 증대와 함께 조직이 커지면서, 조직 관리에 이슈가 생깁니다. 책에서는 디자인 컨셉을 고안하는 밀라노팀(=창의성)과 개발/출시를 준비하는 빌룬(덴마크 지명)팀(=레거시, 정책)간의 의견 충돌이 심했던 것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코디네이터가 없는 상황에서 의사결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디렉션도 없이 배가 산으로 가는 상황이었던 거죠. 현대 기업들의 코디네이터 개념에 대해서는 본 링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 조급함이 무리한 라인업 확대를 불러옵니다. 무비메이커 라인을 출시하고 빨리 키우기 위해 컬렉션을 추가한 지 1년만에 가라앉는 실패를 겪게 되죠. 당시 약 23개 버전을 만들었다고 하니 지금도 상상하기 어려운 케이스입니다.


3. 게임기 고객인 아이들을 쫓기 위해 새 캐릭터를 만들다가 실패합니다. 기존 미니피규어와 사이즈가 다른 새 피규어와 캐릭터(잭 스톤)를 출시했으나, 아이들을 잡지도, 기존의 레고매니아를 열광시키지도 못하고 실패합니다.


4. DIY 사이트의 실패(LEGO Design by Me) : 전환율이 낮아(최대 0.5%) 실제 구매로의 연결이 안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서비스 비용이 부과(설명서+맞춤상자=$10)되었던 것이 원인으로 나옵니다.


그 외 리스크 관리나 전략 오류 정도의 실패요인이 더 나옵니다만, 핵심적인 실패 요인은 위 4가지 만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되는 부분이라 생략합니다.


이후 몇 핵심 인력과 전략 수정을 통하여 레고는 다시 일어서고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는  내용이 책의 절반 정도 됩니다. 고객 중심, Openness, 혁신 등 위에서 설명한 내용의 반복이며 케이스를 동반하는데요, 중요한 내용입니다만 기업전략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금방 이해하실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



사실, 기업의 흥망성쇠를 읽다 보면 공통적으로 나오는 내용이 "새로운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입니다. 과거의 영광에 취하여 새로운 국면에 대비하지 않으면, 지금의 빠른 시장에서 도태되는건 당연한 얘기겠지요.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국면에 대비할 때 과거의 어떤 부분을 핵심 Legacy로 가져갈 것인지, 그것이 나의 브랜드와 고객에 어떤 sustainable한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 확실히 정해둘 필요는 있다는 겁니다. 역사와 과거의 영광이란, 미래의 먹거리를 보장해주진 못해도 그 뿌리를 만들어 주며, 뿌리가 튼튼하면 가지도 잘 뻗어나가는 법이니까요. 전략은 누군가의 소설책에서 영감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명백한 증거로부터 시작하여 미래를 예측하고 대응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새삼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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