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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udie Jan 29. 2021

잊혀지지 마

잊어버리지 마

우리가 이제는 우리가 아닌 남이 되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 지도 벌써 시간이 조금 많이 흘렀어. 이제는 조금씩 우리가 함께였던 시간이 거짓말처럼 흐릿해져 가. 사실 난 글렀다고 생각했어. 네가 만들어준 추억들을 잊는 일 따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 줄 알았어. 우리가 어떻게 만났는지는 기억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헤어졌는지는 기억이 안 나. 시간이 오래된 부분부터 사라지는 게 아니라, 미워했던 부분부터 흐릿해져 가. 그래서 우리가 함께한 좋았던 시간만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오히려 더 마음이 아파. 차라리 오래된 부분부터 좋았던 기억부터 흐릿해졌다면 조금은 마음이 편했을까. 그랬을까. 그럴 수 있었을까.


이렇게 흐릿해져 가면서도 아플 거였다면, 조금 더 오래 머물렀어야지. 잊히지 말았어야지. 조금 더 시간이 지나 아무렇지도 않을 날이 오게 되면, 그때가 오면. 아니 그때가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는 아냐. 좋았던 기억만 남기고, 미운 기억부터 사라지는 건 잔인하잖아. 이럴 거면, 이렇게 남을 거면. 잊히지 마. 제발. 조금 더 머물러줘. 좋았던 기억을 먼저 지울 수 있게. 그래도 넌 잊어버리지 말고 오래 기억해줘. 우리 좋았던 기억은. 내가 아닌 너에게 온전히 기억되었으면 해. 필사적으로 잊어버리려 애썼던 시간을 뒤로하고 좋았던 기억만 더 선명하게 하는 일 따위. 나보다 너에게 일어났어야지. 그래야 공평하지. 잊혀지지 마. 잊어버리지도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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