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모를 허기에 미친 듯이 먹었다.
나에게는 10대 때부터, 20대를 거쳐, 30대까지 함께 하고 있는 친구들이 있다. 내내 내게 무슨 일이 있으면 당장에 달려와주던 그런 친구들. 살아오면서 남들이 쉽게 겪지 못할 일들을 겪어온 내게 늘 큰 버팀목이 되어준 고마운 친구들. 위기가 있을 때마다 힘내라고 하기보단 그냥 말없이 옆에 있어주는. 시국도 시국이고, 나와 K라는 친구는 각자 자취생활을 접고, 본가로 돌아왔고, S라는 친구는 결혼을 해 예쁜 딸아이가 있었다. 서로의 물리적 거리가 멀어짐에 따라 만나지 못하고 내내 랜선 수다만 떨다가 아주 오랜만에 딸아이의 엄마가 된 친구가 신랑의 도움으로 휴가를 얻어 날짜를 정했고, 혹시 나를 위해 한 달 전부터 그 시간을 비워두기로 했다. 그렇게 한 달이라는 기다림 끝에 우리는 만났다. 각자의 시간을 지나 조금 달라진 모습으로.
별것 하지 않아도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굴만 봐도 재밌다. 참 신기하게도, 진짜 이 친구들은 얼굴만 봐도 재밌다.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아무 말이나 해도, 아니 심지어 아무 말도 안 해도 재밌다. 어린아이처럼 장난을 치고 유치해져도 전혀 부끄럽지 않다. 그냥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되는 것 같은.
우리는 오랜만에 케이크에 커피, 차를 마시고, 곱창에 소주, 맥주를 한잔씩 했다. 살아오면서 하는 얘기들을 쏟아내면서 잔뜩 유치해졌다. 그랬지, 그랬지. 그랬었지의 연속이었다. 그냥 그랬지 하나만으로 여고생 때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한참을 깔깔거리고, 그랬지로 자지러지다가 급히 멀리 고향에서 온 친구가 먼저 기차를 타기 위해 떠나야 했다. 보내기 아쉬운 마음에 이리 질척 저리 질척 하다가 어쩔 수 없이 체념하고 먼저 전철을 태워 보냈다. 둘이 남았다.
친구와 나는 너무 배가 불러 소화제를 한 병씩 나눠마시고, 조금 걷기로 했다. 다리가 조금 약한 내가 내내 걱정된 친구는 걷는 내내 나를 살폈고,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걸었다. 우리는 경의선 숲길을 걸으며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눴다. 다시 시작된 그랬지, 그랬지, 그랬었지의 연속. 깔깔거리기도 하고 울컥하기도 하고, 정말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해도. 그저 그런 얘기를 나눌 수 있음에 감사했던 시간. 우리는 해가지고, 쌀쌀해질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내내 해가지지 않을 줄 알았는데, 벌써 캄캄해져 있었다.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기 위해 우리는 기약 없는 다음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한동안 다이어트를 핑계로, 트라우마를 핑계로. 잘 먹지 않았다. 그러다가 아주 오랜만에 정말 기분 좋게, 맛있게 식사도 하고 술도 한잔 했는데, 분명 집에 올 때까지 소화가 되지 않아 토할 것 같았는데. 집에 돌아와 씻고 오니 배가 고파졌다. 이상했다. 술을 먹어서 그런가 싶어 참으려다 너무 배가 고픈 것 같아 컵라면을 끓여다 먹었다. 참 이상하지. 며칠 전에 컵라면을 먹을 땐 두 젓가락만에 거북해져서 차마 더 이상 먹지 못하고 다 버렸는데, 너무 맛있게 한 사발 뚝딱 했다. 분명 배가 불러야 하는데, 더 배가 고파졌다. 그 후로 집에 있는 케이크이란 케이크는 종류별로 꺼내서 한 조각씩 정신없이 먹었나 보다. 며칠 전 아빠 정년 퇴임이어서 여기저기서 준비한 케이크로 종류가 상당했는데, 그걸 종류별로 다 먹었나 보다. 토할 것 같았다. 진심으로 토할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다 먹고 없었다. 그러곤 꾸역꾸역 올라오는 걸 참아내고 있었다.
정말로 나는 배가 고팠던 걸까. 하도 안 먹어서 조금만 먹어도 속이 불편하고, 심지어 음식을 먹은 게 불쾌하기까지 했었는데 친구들을 만나면서 한 끼 제대로 먹고 하루 종일 배가 불러있었는데. 모자란 것 없이 배불렀는데. 왜, 도대체 왜. 나는 왜 그렇게 배가 고팠을까. 배가 고픈 게 맞았을까. 마음이 고픈 것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