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꾼의 성격이지 뭐.
바쁜 하루를 보낸다기보다는 요즘은 참 지루한 하루를 보낸다는 말이 맞겠다. 어쩌다 이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꽉꽉 들어찬 마음에 공기가 통하지 못하고 숨을 뱉을 수 없다. 지루한 하루를 보내면서 어떤 알림도 오지 않는 핸드폰이 가끔 울리면, 반가운 사람이 아닌 스팸전화가 대부분 인 것 같다. 차마 먼저 연락을 할 핑계를 찾지 못하고, 휴대전화 속 메신저에 뜬 상대의 바뀐 프사나 상태 메시지만 들여다본다. 반가운 마음에 연락을 하려고 해도 이야기를 이어나갈 자신은 없는 게지. 하루를 살아가는 동안 쓰이는 공기의 개수만큼만 이야기를 할 소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 괜한 걱정을 않고 당당하게 연락을 했을 텐데. 아쉽게도 내게는 그럴 용기도 없어서 오늘도 그저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기만 할 뿐이다. 어쩌다 한번 연락이 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별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닌데, 내게 연락을 준 이의 용기가 반가운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정말. 한시도 여유로운 적 없던 하루하루를 보내던 내게 꿀맛 같은 휴식이라 느끼는 시간은 아주 잠깐이었고, 그저 잊혀가는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 잡혀 불안에 떠는 것 같다. 역시, 모순이다. 내가 이야기를 써가는 동안 모순이란 단어를 참 많이 사용한 것 같다. 어떤 이야기에도 그 단어가 빠지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살아내는 동안 마주한 모든 것들이 모순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 또 다음 모순된 이야기를 찾는 거겠지. 그렇게 또 하루를 소비하고. 차라리 모순을 찾아가는 재미를 생각해볼까. 그건 조금 생각의 전환을 가져다주고, 무료한 일상에 새로운 반전이 찾아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지금 이문장을 시작할 때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주제도 없는 글을 쓰기 시작한 거다. 주제가 꼭 있어야 할까. 그냥 지금의 내 기분을 적어내려가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내 머릿속만큼이나 이야기가 이리 튀고, 저리 튀면 어떤가. 그것이야 말로 나를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지금이다. 온종일 그놈의 코인 거래소에 차트만 보다가 문득,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는 핸드폰을 보고 있자니 서글픈 마음이 들어 노트북 앞에 않아 손을 올렸다. 이것만으로도 이야깃거리가 될 것 같아서. 물론 또 핑퐁핑퐁 이리 튀고, 저리 튀는 생각에 주제 없이 널뛰기만 하고 있지만. 정형화된 글을 좋아하지 않는 내 모습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사실 나는 주제를 정해 놓고 글을 쓰는 것에 대해 상당히 불안을 느낀다. 어떤 주제를 정해놓고 벗어나지 않게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그것을 해내는 작가님들의 문장을 만날 때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하기 어렵고, 나는 숨이 막히는 일을 그들은 자연스럽게 해내는 것 같은 기분. 사실, 그것들을 쓰고 있는 여러 작가님들도 다 같은 마음이겠지? 주제를 정해놓고 그 틀 안에서 문장을 이어나간다는 것이 힘든 것은 마찬가지겠지만 나는 시도하지 않고, 그들은 시도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이미 찬사를 받을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역시 시도할 엄두 조차 나지 않는 것. 어쩌면 이런 나의 문장을 더 흥미롭게 봐줄 이가 있지 않을까. 그냥 길을 가다가 문득 생각난 문장들을 끄적이는 일을 그래서 멈추지 않고 있다. 언젠가는 그것들의 가치도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나름대로 열심히 남겨두고 있다. 어제는 엄마랑 오랜만에 4시간이 넘는 시간을 걸었던 것 같다. 근처라고 하기에는 조금 먼 하천으로 가 걸었는데, 걷다가 누군가 흔적을 남겨 만들어진 포장된 길이 아닌 샛길을 보고 생각나 끄적여 둔 문장이 있다.
다급한 마음이 만들어낸 다듬어지지 않은 길. 포장되지 않은 마음과 포장되지 않은 길. 그 끝에선 나와, 그런 나의 반대편에 선 너. 따라가려다 말고 망설이느라 멈춘 발걸음. 주춤하는 사이 저만치 멀어져 간 너. 용기가 없는 나는 너를 부르지 못하고 발만 구른다. 차마 뱉지 못한 이름에 아쉬운 마음을 삼키고, 젖은 걸음을 겨우 옮긴다.
핸드폰 속에 메모해 둔 문장들은 대부분 무엇을 하다 갑자기 스치고 간 것들이다. 이렇듯 불현듯 스친 단어나 문장을 대충 끄적여 놓고 선, 저녁에 수정을 해두곤 한다. 가장 감성적인 시간이니까. 하루 동안 나를 스친 문장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아주 가끔 마음에 드는 것들이 있다. 그런 것들을 보면 기특하기도 하다가, 또 다른 것들을 보고 있으면 이런 걸 왜 쓰고 앉았나 싶기도 하다. 누군가처럼 어떤 주제를 놓고 글을 쓰는 능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막상 하려고 앉으면 이렇게 잡다한 생각만 늘어난다. 결국엔 또 주제가 없이 문장이 이리 튀고, 저리 튄다. 이야기 꾼의 성격에 따라 이야기가 다 다른 거지 하고 마음을 달랜다. 그래도 언젠가는 나도 하나의 주제를 정해놓고 가만히 앉아서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러면 문장을 찾아 밖으로 나돌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미련한 생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