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른이 보호구역은 없는 걸까. 요즈음 길을 걷다 보면 정말 많이 보이는 것이 바로 샛노란 어린이 보호구역이다. 조금 외진 곳으로 가면, 종종 어린이 보호구역이 아닌 노인 보호구역도 존재하긴 한다. 밖으로만 나가면 만나는 이 노란색으로 선명하게, 그냥은 지나칠 수 없는 이 어린이 보호구역이라는 표지판이 익숙하면서도 조금은 슬프게 느껴졌다. 어린이 보호구역은 있는데, 왜 어른이 보호구역은 없는 걸까. 뭐, 무슨 헛소리냐고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모두 아직은 어리고 약한 존재인 어린이를 보호해야 한다고 한다. 안다. 분명 그들은 지켜줘야 하는 존재라는 것. 그 변하지 않는 확실한 진실을 왜곡하자는 의미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분명히 그들과 같이 약하고 지켜줘야 하는 존재로 많은 시간을 보냈고, 그 시간을 지나 무사히 모두가 말하는 어른이 되었다. 아니, 사회가 말하는 어른이 되었다. 형식상의 어른. 서류 속의 어른. 사회에서 취급하는 어른이라는 이름의 사람. 나는 분명 어른이다. 하지만, 요즘 드는 생각은 정말로 내가 어른일까. 나는 정말로 모두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어른이 맞는 걸까. 마음속에 아직 자라지 못한 내가 존재하는데, 이것을 숨기고 가린다고 정말로 내가 어른이 될 수 있는 걸까. 서른이 지나고도 2년이라는 시간이 더 흘렀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서른셋이라는 나이로 30대 중반을 맞이하겠지. 하지만, 그 숫자로 단정 지어지는 그것 말고. 나는 정말 성장하고 있는 것이 맞는 걸까. 사실 나는 개인적인 생각이겠지만, 남들만큼은 빨리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아니, 또래에 비해 조금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그런 사회생활 말고, 나의 일을 가지고, 경제활동을 하는 그 사회생활. 누군가에겐 길고, 누군가에겐 상당히 짧았을 그 시간을 보내오면서도 나는 아직도 내가 성장하고 있는 게 맞는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어쩌면 그 고민을 하고 있는 자체로도 성장을 하고 있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아직도 그 고민을 하고 있는 어른이라는 껍데기 속에 감춰진 어린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여전히 내 속에는 어린아이가 산다. 약하고, 약해서 보호받아 마땅한. 껍데기가 어른이 되었다고, 마음도 함께 성장하는 것은 분명히 아니라고 생각을 한다. 그리고 사회가 강제한 많은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도 분명 나와 같은 이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나는 여전히 여리고, 어리다. 단단하고 거칠어진 겉모습에 감춰진 이 약한 마음을 보호받고 싶다. 나는 '어른'이 아니라 '어른이'다. 어른이에게도 보호받을 수 있는 어떤 안전장치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그 자체가 정말 철없어 보일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