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마음을 채운 것

by maudie


속이 없는 사랑한다는 말에 깊이 베어본 적이 있다. 그의 마음에 빈 소리가 요란한 것을 이미 알면서도 오래 사랑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의 마음에 언젠가부터 사랑이 채워지기 시작했고, 그동안 나의 마음에 찼던 사랑이 언젠가부터 비워져 가기 시작했다. 목마른 샘은 결국 가뭄이 일었고, 그의 사랑이 꽉 채워져 속있는 말이 되었을 즈음에 나는 소리만 요란한 마음의 사람이 되었다. 그때부터 나의 사랑 고백은 텅 비었다. 의미 없는 화려한 포장, 그뿐이었다.


우리는 오래 서로를 알았고, 시간의 흐름에 내가 원하는 이야기의 결말은 그렇다에서 아니다로 바뀌기 시작했다. 반대로 그가 원하는 이야기의 결말은 아직 아니다에서 그렇다로 바뀌었다. 서로의 결말이 바뀌어간다는 것을 인지할 때쯤 우리는 삐걱대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피했고, 그는 나를 찾았다. 나는 결국 비혼 주의가 되어갔고, 그는 그렇게 변해가는 나를 붙잡아 결혼이라는 제도로 묶어두려 했다. 물론 지금의 나는 비혼 주의가 아니지만. 어쨌든 자신의 모자란 마음에 사랑을 가득 채워뒀으니, 이전보다 내가 자신을 더 사랑할 것이라 그는 아마도 확신을 했던 것 같다.


당신의 마음이 비워져 있었던 동안 내게 가득 차 있던 마음을 덜어내 당신에게 채우고 있었다는 것을 그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늦게서야 내게 많은 것을 미안해했다. 앞으로는 자신이 다 채워줄 것이라 이야기했다. 그런 그를 보는 나는 점점 시들어갔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함께한 시간을 우리는 눈물로 얼룩진 냅킨에 담아 가득한 미련을 쥐고 버려야 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우리였던 날, 그는 세상에 다시없을 따뜻함으로 나를 덮었지만, 나는 그럼에도 추웠다. 참으로 추운 겨울이었다. 나란히 걷던 위태롭던 그 길 위의 나는 평소 신지 않던 높은 구두를 신었다. 높은 구두 위에서 혹시나 넘어질까 노심초사했던 마음이 처음 그를 사랑할 때의 모습과 닮아있었다. 그래서 신지 않던 높은 구두를 그날 신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조마조마했던 예전의 나를 높은 구두굽으로 우습다는 듯 밟아나갔다. 내 마음은 돌아서지 않을 거라는 확실을 주기에 그것으로 충분했다.


오랜 시간 그는 내게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끝끝내 마지막 포옹을 하면서도 우리의 오랜 사랑을 말했다. 구구절절. 그의 목소리에 묻은 진심에 옅은 눈물이 차올랐다. 동정이라도 바란다는 듯한 매우 간절하고 슬픈 눈으로 나를 봤다. 종종 그날이 생각난다. 차가운 광화문과 청계천 그리고 나의 취향쯤은 가뿐하게 알고 주문해준 따뜻한 커피와 서로의 등을 보지 않으려 꽉 안았던 차가운 잿빛의 밤 서울역.


추억은 그런 것 같다. 그때는 짠했고, 지금은 예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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