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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udie Oct 16. 2023

나의 작은 배경화면

내게 유치한 행복을 주는 사람

핸드폰 배경화면이 그 사람이었다.


사실 이 사람을 만나기 전까진, 줄곧 내 배경화면은 늘 새까만, 정말 아무것도 없는 그런 화면이었다. 시계를 더 편하게 볼 수 있는, 캘린더가 조금은 더 상세히 보이는, 듣고 있던 노래가, 재생버튼이 조금 더 찾기 쉬운, 그런 화면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사람을 만나 마음이 온통 그로 가득 찬 후로는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하고, 보다 더 자주, 보다 더 선명하게 이 사람이 매시간, 매초마다 보고 싶어 배경화면에 뒀다.


아침에 일어나 간단히 요기를 하고, 아주 오랜만에 새벽 내내 고민한 끝에 겨우 예약해 두었던 미용실을 갔다. 갑자기 불현듯 찾아온 단발병에 바짝 잘라버렸던 머리가 어느새 길어나면서 절벽인 뒤통수와 넙데데한 얼굴 주위를 납작하게 들러붙은, 가늘고 약해 볼륨감이라고는 그 어디도 찾아볼 수 없는,  짧지도 길지도 않은 머리가 거슬려 참다못해 잘라버리려다, 풍성한 볼륨감을 가진, 상당히 긴 머리였던 때가 그리워 꾸역꾸역 다시 기어오르는 단발병을 억지로 삼키고, 거지존을 피해, 어떻게든 길이를 유지하기 위해, 머리에 볼륨을 넣으러 미용실을 간 것이었다.


지루한 시간이, 안 그래도 평소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나를 자꾸 간질였다. 틈틈이 오는 그의 연락에 그나마 짧은 시간 발을 동동 구르며 신나 하다가, 목구멍 안쪽까지 훤히 보이게 하품을 서너 번 연속해서 하며 지루함을 겨우 떨쳐 보이다가, 한 번씩 이상한 사진을 찍어 친구와 장난을 치다가. 그렇게 겨우겨우 시간을 보내다 핸드폰을 내려놓을 때마다 배경화면에 있던 그의 사진이 디자이너분께 보였나 보다. 선생님은 내 머리를 말아주다 갑자기 화면 속 사진을 보더니 "남자친구예요? 잘생겼다! 오오 잘생겼네!"라고 했다. 쑥스러운 마음에 에이 뭘 잘생겼냐며, 아주 아주 못생겼다고. 괜히 기분 좋아 씰룩이는 입꼬리를 참지 못하고 발을 더 세게 구르며 삐죽였다. 쑥스럽고, 부끄럽고. 그가 잘생겼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속으론 그렇지 않냐고, 내 눈엔 너무너무 예쁘고 잘생긴 사람인데, 역시 다른 사람의 눈에도 그런 사람일 것 같았다고, 이 사람 내 사람이라고. 차마 수줍어 뱉지 못하고 신나는 마음을 숨겼다. 바보. 그래 나는 완전 바보였다. 그 사람뿐인 바보 말이다.


그 뒤로 머리를 하는 남은 시간 동안은 그 말을 곱씹느라 혼자 신나서는, 하나도 졸리지 않았다. 온통 머릿속에, 입꼬리에 그 사람만 그리고 있었다. 역시 나는 행복한 사람인가 하고. 그리고 역시 배경화면에 그를 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 세상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이 사람, 아주 잘생긴 이 사람이, 내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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