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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udie Oct 16. 2023

약속의 흔적

마음의 흔적

'우리 꼭 이렇게 하자. 앞으로도, 그 후에도 언젠가까지도. 우리 함께 하자.'라는 약속을 누군가가 볼 수 있는 곳에 남긴다는 것. 내가 지금의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기록해 두는 것. 후에 누군가가 보았을 때, 누군가의 눈에 띄었을 때에. 그곳에 기록된 사람들은 여전히 같은 마음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있을까. 여전히 함께일까.


오래된 식당이나 아주 오래된 변하지 않은 어떤 공간에 언젠가쯤 누군가가 써 놓은 마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누구♡누구'와 같은 것. 누구와 누구가 만나 사랑을 하고 있음을, 이곳에 함께 머물다 갔음을 흔적으로 남겨준 것을. 돌아보면 여지껏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살아오면서도 흔적을 남겨온 적이 없었다. 한 밤에 아주 조용히 녹아 사라지고야 말 새하얀 눈 위, 내 일기장, 내 노트, 내 핸드폰, 작은 편지지 같은 곳을 제외하고서 말이다. 그런데 지금 이 사람. 나를 온 세상 곳곳에 흔적을 남기고 싶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함께 찍은 사진으로는 부족해서 흔적을 남길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남기려 하고 있다. 물론 그러기 위해 마련된 아주 합법적인 공간에.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나 지금 당신과 함께 여기 머물렀다고. 다른 어떤 말도 필요치 않다. 우리 두 사람의 이름. 그것으로 충분했다.


당신이 곁에 있고, 당신도 나를 사랑한다는 것. 어쩌면 나란히 쓰인 우리 두 사람의 이름에 모두 담겨있지 않은가 하고 생각한다. 그런 이름들을 보면서 여태껏 나는 '과연, 저 나란히 하트를 그린 두 사람은, 아니 사람들은. 여전히 사랑을 하고 있을까 하고, 홀로 가만히 물음을 던지곤 했다. 눈처럼 단숨에 지워지지 않고, 모두가 볼 수 있는, 누구든 볼 수 있는 공개적인 공간에. 두 사람의 이름을 나란히 쓴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얼마나 귀하고 무거운 마음인지 알고 쓴 걸까. 그저 순간의 행복을 기록한 건 아닐까, 그저 풋내가 나는 그런 마음은 아니었을까. 지우고 싶지만 차마 지우지 못하고 외면하는 중은 아닐까. 무례한 상상을 하곤 했다. 그리고 지금 그의 이름과 나의 이름을 곁에 나란히 쓰는 나는 과연 어떤 마음일까 하고 스스로에게도 물음을 던질 기회가 생겼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물음을 던짐과 동시에 행복해졌다. 괜히 나란히 쓴 이름 덕분에 지금이, 당신이, 곁에 영원할 것 같아졌다. 나란히 이름을 쓴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그것마저 완전한 사랑이었다.


모두들 같은 마음이었겠지 생각하니 무례한 상상도 끝났다. 모두가 영원하길 바라는 마음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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