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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udie Nov 16. 2023

긴 꿈, 끝에 남은 그리움

꿈에 네가 나왔다. 무슨 꿈을 꾸어도 얼굴만큼은 흐릿하고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그런 꿈만 꾸었던 것 같은데, 너무 완벽하게 눈코입 다 너였다. 부정할 수 없이 너였다. 그리고 참 슬프게도, 감정이 흐려져 볼품없는 표정으로 일관되게 나를 보던 너. 꿈속의 너와 나는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마음을 확인하는 중이었고, 너는 내게 점점 쌀쌀맞게 대했다. 부족한 애정에 말라가는 마음을 겨우 붙들고 있던 나는 놓아버리기로 했고, 너는 그런 나를 슬픈 얼굴로 꽤나 오래 멀리서 보다 피하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자 손을 잡고 끄는 나를 기다렸다는 듯 따라왔다. 우리는 멀리. 사람들을 피하지만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저 아는 얼굴들을 피함이었다. 그리고 큰 키를 감추기 위해 바닥에 누워 이야기를 건넸다. 혹시 내가 뭘 잘못한 게 있느냐며, 성실히 사랑하지 않을 거라면, 앞으로도 멀리서 저 멀리서 네 마음이 멀어지는 걸 보고만 있어야 하는 것이라면 이쯤 하면 된 것 같다고. 너덜너덜해지는 마음을 내 안에 두는 것만큼 미련하기 짝이 없는 일은 없는 것 같다고. 너는 조금 더 깊고 짙어진 눈동자를 한 얼굴로 나를 가만히 보며 얘기했다. 그런 게 아니라고. 같은 생각을 가진 줄은 몰랐다. 사랑이 깊었다. 깊었던 사랑만큼이나 서로를 보는 불안이 깊었다. 우리가 하는 사랑이라는 것은 딱 사람들을 피해 사람들 사이로 숨을 만큼이었다.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서 사랑해야만 한다는 것이 어떻게 사랑일 수 있을까 했다. 꿈이지만 선명했다. 다시없을 장면이겠지만 슬펐다. 아주 긴 꿈이었다. 로또나 되게 돼지가 쏟아지는 꿈이나 꿀 것이지. 독감주사로 어지럽고 울렁거리고 코로나 백신을 맞았을 때보다 더 센 두통에 진통제를 먹고도 겨우 잠이 들었는데, 이렇게 짠하고 슬픈 꿈을 꾸다니. 괜히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너무 보고 싶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야만 하는 사랑에 짙어진 마음과 불안이 삼키려고 하는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혼자가 아닌 둘이 했으니 가능했지 않을까. 다시 마음을 확인하고 깬 꿈은 다시 이어 꾸고 싶었다가, 네 얼굴이 너무 선명해서 다시는 꾸고 싶지 않았다가 했다. 그럼에도 한 번은 더 네가 보고 싶었다. 모쪼록 현생에선 언제나 나를 보는 너의 얼굴이 부족함 없이 애정으로 꽉꽉 들어차 불안이라곤 느낄 수 없을 만큼 완벽히 환하게 웃는 얼굴이었으면,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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