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하는 것들을 억지로 했다는 말도.
마음이 좁아서 담아둘 데가 없다는 말.
인스타그램으로 인친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한 시간이 4년 정도가 된 사람이 있다. 따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눈 일은 거의 없고, 서로의 피드가 새로 업로드가 되면 좋아요를 누르고 한 번씩 인사를 건네는 정도. 그런 그에게서 어젯밤, 갑자기 디엠이 왔다. 인스타그램 돋보기로 내 알고리즘을 탄 이야기들을 보다가 한 게시물의 아래 해시태그에 자살, 죽고 싶다가 있었고, 단순한 호기심으로 그게 검색이 될까 하는 생각에 인스타그램 검색창에 검색을 해봤다. 그리고 검색을 하니 자살방지를 위한 연결번호가 검색결과에 떴다. 그게 너무 신기해서 캡처를 했고,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공유했다. 다른 의미를 가지고 행동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는 그걸 보고 걱정이 되어 연락이 온 거였다.
- 무슨 일 있어요?
그가 건넨 걱정이 담긴 짧은 한마디. 그 한마디를 시작으로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가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살아오면서 자기가 부딪힌 부정적인 삶에 대한 극복을 한 이야기. 자신의 관점과 생각을 툭 하니 내게 가볍게 던져놨다. 사실 처음엔 크게 이렇다 할 공감을 하지는 못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마음이 딴 데 가있었다. 최근에 심하게 남자친구와 다툰 일, 남자친구의 연락이 없는 것, 온갖 이유와 살을 붙여 만들어진 서운함으로 대화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내 나이는 대화 초반에 알려줬는데, 그분의 나이를 모르는 것 같아 물어봤다.
- 혹시.. 연배가 어떻게 되세요?
내 나이가 많은 나이가 아니라고 했으니, 나와 비슷하거나 같거나, 그게 아니라면 조금 더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실례가 되지 않으려 나이라고 칭하기보단 연배라고 칭해 질문을 했다. 그리고 돌아온 그의 대답은 조금 나를 뻘쭘하게 했다.
- 스물여덟 , 범띠입니다.
- 아임 연배 오알 춘추.
그 두 마디가 괜히 민망하고 미안했다. 나쁜 뜻이나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이야길 듣기엔 기분이 좋지 않았을 법하여 사과를 전했다. 미안하다고, 나랑 비슷하거나 솔직히 더 많을 줄 알았다고. 그랬더니 그분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 저스트 조크조크! 농담!
- 마음이 좁아가 담아둘 곳이! 없어요..
마음이 좁아서 담아둘 곳이 없더라. 마음이 좁아서. 마음이. 너무 신선한 충격이었다. 마음이 좁아서 담아둘 곳이 없다는 말은 내가 기억하는 한 내가 살아온 동안 상당히 부정적인 언어로 알고 있었다. 마음이 좁아서 담아둘 데가 없다니. 근데 그 말이 그렇게 긍정적으로 들리다니. 나에게 기분이 좋지 않은 어떤 말을 내가 마음이 좁아서 담아 둘 곳이 없으니 괜찮다고 한다라.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문장이 이렇게나 긍정적인 문장이 될 수 있다니. 진짜 너무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이어 그의 사연과 경험들을 쭉 나열하는데 대강 이야기를 하자면, 삶의 끝에서 그가 극복해 온 방법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그것마저 보통의 생각과 달랐다. 순간 망치로 머리를 한대 꿍하고 맞은 것 같았다. 나에게 충격을 준 그의 생각이 무엇이었냐면, 그건 싫어하는 것들, 내가 하지 않았던 것들을 억지로 하는 것이었다. 듣지 않던 장르의 음악을 친구에게 추천받아 듣고, 내가 평소 하지 않던 일들을 하고, 내가 평소 가지 않던 곳들에 가고. 내가 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던 것들을 하나씩 하면서 그것들이 나와 가까워지고, 내가 차츰 변화하고, 그렇게 변화된 덕분에 자존감도 올라가고, 자존감이 올라가니 많은 사람들에 호감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내가 하지 않던, 내가 좋아하지 않던 것들을 일부러 골라하면서 그 싫어하고 좋아하지 않던 것들을 결국 내가 싫어하지 않게 되고, 좋아하게 되고. 당연히 좋아하고 싫어하지 않게 되었으니, 잘하고 행복한 일이 되었겠고, 그로 자존감이 올라가 사람들의 호감이 되었다라. 살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너무 충격이었다.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살아오는 동안,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과 내가 못하고 싫어하는 것들을 나누게 되고, 그 나눠진 것들 중 좋은 것은 두고 더 발전시키더라도 싫은 것들은 돌아보지 않고 버려두는 것. 적어도 나는 나이 들면서 그랬던 것 같은데. 억지로라도 일부러라도 그것들과 가까워지는 시간을 오래 가졌다는 그의 말이 너무 세게 나를 때렸다. 그리고 그는 내게 마지막으로 정말로 그렇게 해보면, 지금 무슨 말인지 모르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꼭 알게 될 거라고 했다.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로 채우기도 바쁜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들도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그의 생각이 그 관점이. 나로 하여금 나를 돌아보게 했다. 왠지 나도 그의 말을 따라 싫어하는 것들도, 잘 못하고 멀리한 일들도 억지로 하다 보면 그가 한 말이 무슨 말인지 더 또렷이 알게 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잔뜩 부정적인 생각으로 많은 것들을 놓고 그 어느 것에도 마음을 두지 않고, 어떤 호기심도 관심도 의욕도 사라지고 있는 지금 내게 어쩌면 가장 필요했던 말이 아닐까. 나도 그 싫어하고 내가 완전히 배제했던 부정적으로 남은 것들을 하다 보면 다시 회복이 될까. 다시 무언가를 할 용기가 생긴 것 같았다. 다시 시작해 보자란 생각이 들었다. 그게 어떤 것이든 결국 부딪혀야만 극복이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