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설 날의 나

의식의 흐름. 나는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걸까.

by maudie

명절아침, 어디도 가지 않고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는, 너무 외로운 아침이었다. 일을 할 때에는 직종의 특성상 명절을 쉬어본 적이 없었기에 딱히 명절을 누군가와 함께 보낸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으로서, 크게 외롭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오늘 아침은 너무나도 외로운 게 아닌가. 일을 쉬고 있는 지금, 나는 최선을 다해 사람도 쉬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그런가 밖순이가 집순이 인척하는 게 힘든 중에 명절이 왔고, 핸드폰 마저 조용한 명절이 너무 외롭고 쓸쓸하고, 가뜩이나 추운데 더 추워졌다. 다들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고 하고,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쉬움, 쓸쓸함. 집에 가려니 눈이 많이 온 문경을 버스를 타고 이동할 자신도 없고,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문경 왔다 갔다 하는데 체력소모가 너무 커 귀찮은 마음에 가지 않았다. 그래도 사실은 버스 타고 40-50분쯤 가면 외갓집엔 갈 수 있었는데, 오늘은 왠지 외갓집도 가고 싶지 않았다. 정말 쉴 틈 없이, 어떤 이유를 가지고도 아니고 종종도 아니고 자주, 그렇게 뻔질나게 드나드는 외갓집인데 괜히 오늘은 가고 싶지 않았다. 괜히 그런 거 있지 않나. 명절엔 친척들 보기가 불편해지는 나이. 이것마저 핑계라고 하면 핑계지만. 씻지도 않고 아침 7시에 배고파 고추참치에 밥을 대충 비벼먹고 멍하니 방 안에 홀로. 가만히 핸드폰을 보다가 동갑내기 베프인 외사촌에게서 연락이 왔다.


- 오늘은 뭐 해?

- 아무것도

- 나갈 거야?

- 나가고는 싶은데

- 떡국 먹으러 올래?

- 나 사실 떡국 지난번에 주셔서 먹긴 했는데, 물에 빠진 떡 안 먹어.. 떡볶이에 떡도 안 먹는걸 ㅎㅎ

- 그럼 비빔밥. 비빔밥 재료도 있어.

- 아니.. 나는 갠짜나.. 조용히 책 읽고 싶어서 카페 가까 생각 중

- ㅋㅋㅋㅋ 나도 갈까?


그렇게 갑자기 후다닥 짐을 챙겨 집에서 도보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카페를 가기로 했다. 책 한 권, 메모장과 노트 한 권씩, 펜과 노트북을 가방에 대충 욱여넣고 집을 나섰다.


분명 해가 떠 있는데, 눈이 날렸다. 나리는 눈이 송이가 꽤나 큰 것이 내 감성을 괜히 자극했다. 명절을 지내러 간 남자친구가 너무 보고 싶어 졌다. 찬 바람이 코를 찡하게 만들고,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서두르자, 서두르자. 너무 추워서 정신이 나간 게 분명하다. 그렇게 카페에 도착해 우선 자리를 맡아두기 위해 짐을 다 던져두고, 음료와 간단히 점심을 해결할 빵을 두 개 사서 올라왔다. 자리에 앉아 빵을 자르고 있는데 남자친구가 어떻게 내 마음을 읽었는지 갑자기 전화가 왔다. 영상통화. 핸드폰 카메라 너머로 보이는 남자친구. 오늘따라 왜 이리 잘생겼담. 못 보는 것도 서러운데 못 보니까 괜히 더 예쁜 것 같은 느낌에 퉁명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 안녕

- 카페에는 잘 도착했어? 뭐 하고 있어? 점심은?

- ㅎㅎ 도착했어. 커피 한잔, 그리고 빵. 배고파 배고파 피자빵! 빵! 오! 빵!

- ㅎㅎ 맛있게 먹어 ~ 안녕~

- 아 왜. 아 왜. 아 왜.

- 큰엄마 오셔 큰엄마 봐드려야 해.

- 나는? 나는? 나는? 나는? 왜 나는?

- 너 뭐. 너 멀리 있잖아. ㅎㅎ 정신 차려 (팍팍 팍팍 카메라 싸대기 팍팍 팍팍.)

- 왜 나는 안 에뻐해 줘. 왜 나는 때려. 왜. 왜. 왜. 왜 나는 아 예뻐 아니고 왜 때려!

- 정신 차려 (팟팟팟팟팟)

- 왜 나한텐 포옹력쩍이야!

- 챱챱챱챱챱. 나 이제 가볼게 ~

- 아 왜. 알겠어어-

- chu


짧은 통화로 내 마음에 배터리를 가득 충전했다. 기다렸던 전화, 기다린 얼굴. 당장 보고 싶은 마음이 미친 듯이 솟구쳤지만, 일단 배고프니 빵을 우걱우걱 먹기 시작했고, 사촌이 도착했다. 노트북을 꺼내고, 책을 꺼내고. 식후 졸음이 몰려오는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갑자기 정말 말도 안 되게 갑자기 노트북을 켜자마자 사랑에도 형태라는 게 존재한다면, 사랑은 어떤 모양을 가지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의식의 흐름일까. 어떤 이야기가 하고 싶었을까 나는. 그냥 갑자기 머리에 던져진 그 문장 하나를 가지고 지금 살을 붙여 문장을 뱉기 시작했다. 왜였을까. 저 문장은 왜 갑자기 내게 나타난 걸까. 근데 막상 저 문장 하나로 이야기를 하려고 하니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서 전후 상황을 쓰고 있다. 그리고 할 말을 잃었다. 신나게 남자친구 생각이 다시 난다. 고장 난 머리. 쓸모가 없는 것 같다. 우걱우걱 먹은 빵에 졸음이 몰려온다. 과연 나는 오늘 책은 읽을 수 있을까. 근데 도대체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에 노트북을 열어 브런치를 켰던 걸까. 어이없어 피식 - 웃음이 난다. 정신 차릴 겸 커피나 마저 들이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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