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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udie Nov 28. 2020

12월 24일

화이트 크리스마스이브

아주 따뜻한 밤이 지났다. 설레기도 했고, 긴장되기도 했다.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그 사람은 내가 너무 좋다고 했고, 나도 그런 그 사람이 좋았다. 사실 5년의 시간을 만난 그 사람에게는 이런 따뜻함을 느낄 수가 없었다. 돌아보고 나면 벽보고 연애를 했나 싶을 정도로. 물론, 그 사람도 그 사람 나름대로 나를 아꼈던 모습도 있었다. 아예 기억에 없지는 않다. 하지만 내게 이런 따뜻함을 주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니 당연히 그런 관심이 소중할 수밖에. 


우리는 카페를 나와 잠깐 합정동을 걷기로 했다. 해가 지고 날이 제법 쌀쌀해졌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높은 구두를 신은 탓에 조금 걷기 불편한 것 역시 손을 잡고, 어깨를 내어준 그가 있어 참을만했다. 합정동을 걷다가 간단히 밥을 먹고, 미리 예약해 뒀던 호텔로 자리를 옮겼다. 해가 빨리 지는 바람에 오래 함께 걷지는 못했지만, 바로 헤어지지 않을 거라 그것 역시도 크게 상관없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봐도 첫 만남에 호텔이라니. 진짜 겁도 없다.


한 달 내내 쉬지 않고 연락을 했던 터라, 조금 어색하긴 했지만 불편하지 않은 밤이 지났다. 그렇게 크리스마스이브의 아침이 밝았다. 밤새 신경 쓰느라 뒤척이던 나를 가만히 안아줬다. 따뜻한 밤을 보내서였는지, 크리스마스이브날 출근을 안 해서였는지 모르게 그저 기분이 좋았다. 눈을 떠 옆에 있는 사람을 가만히 보니 괜히 더 설렜다. 우리는 대충 짐을 한쪽에 두고 나왔다. 하루 더 머무를 예정이었기에 짐을 들고 나서지 않아도 돼서 어제보다 가볍게 나왔다. 늘 다니던 길들이 괜히 예뻐 보였다.


"누나 잠은 좀 잤어요? 괜찮아?"

'응응, 괜찮아요. 히 너무너무 좋아, 기분. 재영 씨는?'

"응, 난 잘 잤어요. 근데 언제까지 재영 씨라고 할 거예요? 말 편하게 하면 좋겠어요."

'어? 난 편하게 하고 있는데, 혹시 불편해요? 재영 씨 말 편히 해요 ㅎ'

"응, 알겠어, 정민아~ㅎ"

'에????????? 뭐요? ㅎ'

"왜? 정민아? 왜? 문제있어어??"

'아? 아니, 어 아니에요 ㅎ'

" 이름 부르는 거 불편해? 근데 그래도 누나라고 하긴 싫은데? 내 누나 아니잖아. 여자 친구잖아."

'어? 어어 펴... 편할 대로 해요, 응 난 상관없어.ㅎ'

"그럼, 으음 아기라고 부를래."

'어???????????????? 어????????? 뭐라고????? 아니 아니 이름 불러요, 이름!'

"왜? 내 맘이지? 그렇지 애기야~ 애기야 배고프지 우리 밥 먹으러 갈까, 애기야?"


그 사람은 한 번에 호칭 정리를 해버렸다. 누나라고 부르기는 싫다는 사람. 나도 누나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그의 나이 스물넷, 내 나이 스물여덟. 4살이나 어린 사람이지만 이 사람에게만큼은 누나 소리가 듣고 싶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예의 없다고 했을 텐데 왠지 이 사람이 불러주는 내 이름은 예쁘게 들렸다. 근데 애기는 좀! 에엠. 뭐 그 썩 듣기 싫은 건 아니었지만, 남들 보기 남사시러워서 원. 


우리는 그렇게 근처에 있는 라멘집을 가기로 했다. 팀장님이나, 같이 일하는 오빠랑 한 번씩 갔던 라멘집. 가게가 넓은 편이 아니어서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라멘 맛만큼은 정말 잊을 수 없는 집. 음식점의 웨이팅을 굉장히 싫어하는 나지만, 이곳의 라멘은 기다려서라도 꼭 먹곤 했었다. 그 사람은 뭐든 좋다고 해서 우리는 라멘집으로 갔다. 상수역 근처 골목 사이에 위치한 작은 라멘집. '라멘 트럭' 1층이라고 하기도 좀 애매하고 반지층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위치에 있는 라멘집. 겨울에 밖에서 따뜻한 라멘에 김이 서린 창을 보고 있으면 왠지 따뜻한 국물이 유독 맛있을 것 같은 분위기다. 맑은 국물에 토핑이 끝내주는 집.


'여기, 우리 팀장님이랑 자주 오는 덴데, 라멘 진짜 괜찮았어요. 라멘 나쁘지 않죠?'

"애기랑 먹는데, 나쁜 게 어딨어요,ㅎㅎ"

'내가 웨이팅 잘 안 하는데, 여긴 웨이팅 하고 먹어도 맛있었어요. 재영 씨 입에도 맞았으면 좋겠다.'

"맛있겠지, 애기가 맛있다고 하면 맛있는 거지."

'ㅎㅎㅎ 애기............ 마이갓!'

"왜? 애기~? 무슨 일이야?"

'쉿! 조용 즈응흐흐르그으! '


"이정민 고객님!"

'네!'

"두 분 맞으세요? 메뉴는 어떻게 해드릴까요?"

'라멘 어떻게 할까요? 보통이랑, 면추가 있고 토핑은 우리 하나씩 추가할까요?'

"응응, 나는 면도 추가할래요."

'그러면 저희요, 라멘 다 추가한 거 하나랑 차슈랑 계란 추가한 거 하나랑 할게요.'

"네 알겠습니다, 라멘 둘에 면, 차슈, 계란 추가 하나랑 차슈, 계란 추가 하나 맞으시죠?"

'네, 네! 맞아요.'

" 금방 준비해드릴게요, 자리는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가요, 재영 씨'

"응응, 애기가 안에 앉아요."

'아, 응!'


좁은 가게 안을 들어가니 바깥 온도와 차이가 많이 날만큼 후끈후끈했다. 라멘은 들어가 자리에 앉고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준비되었다. 차슈랑 계란장이 유독 맛있는 집이라, 토핑을 추가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역시 추가하길 잘했어. 청양 고추를 잘게 썬 걸 준비해주는데 그걸 넣으면 국물이 더 깔끔해졌다. 라멘을 반 정도 먹고, 고추를 추가해서 먹었다. 진짜 국물이! 우리는 이날 이후 자주, 생각이 날 때마다 가서 라멘을 먹었다.


"애기~ 맛있어요! 여기 맛있네!"

'쉿, 쉿! 목소리 좀 낮춰요. 우어......'

"애기! 내가 쪽팔려요?"

'어? 어???? 아니 그게 아니라, 쉿 쉿. 으흠! 라멘은 입에 맞아요?

"응응! 애기! 맛있어요! 진짜 맛있네 애깅~?"

'어? 어어.ㅎㅎ 마... 맛있어서 다행이네요,ㅎ'

"응, 애기 다 먹었으면 갈까?"

'어? 어어. 나 다 먹었어요, 갈까요?'


좁은 식당 안에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데, 애기라니! 애. 기. 라. 니.!.! 진짜 민망했다.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굉장히 불편했다. 스물여덟 평생 내가 애기소리를 듣고 있네.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호칭을 바꿔야 할까, 바꿔달라고 하면 불편해하지 않을까. 누나 소리 말고 애기 소리 말고 괜찮은 게 없나, 나는 뭐라고 불러야 하는 거지. 진짜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애기만 아니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이 나이에 그런 소릴 듣는 게, 어유! 생각보다도 훨씬 손발이 오그라 들었다. 시간이 지나도 적응되지 않을 것 같았다.


"애기! 무슨 생각해?"

'어? 어어 아니에요, 아무것도. 우리 이제 뭐할까요?'

"애기, 커피 좋아하잖아. 추운데 커피 마시러 갈까?"

'어? 그를까요? 히. 괜찮아요? 배부르지 않아?'

"에이~ 커피배는 따로 있지. 커피는 마실 수 있어! 애기야, 가자!"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그 노무 애기. 듣기 썩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한지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아니 몇 시간이라니 진짜 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이렇게나 민망하네. 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민망했다. 주위에서 쳐다보는 게 너무 불편했다. 얼굴이 쌔빨게졌다. 근데, 민망해 죽겠는데, 불편해 죽겠는데. 왜 설렌단 말이야! 도대체 왜! 이정민 미쳤어?! 속 시끄러웠다. 아무래도 괜찮았다. 이 사람 너무 스위트 했다. 


우리는 카페까지 조금 걷기로 했다. 크리스마스이브여서 그런지 역시 사람이 넘쳐났다. 커플들 천국이었다. 옆에 손잡고 걷는 사람이 너무 좋아서 내내 설렜지만, 왠지 팀장님한테 너무 미안했다. 이렇게 바쁜 날 혼자 쉰다는 게 너무. 카페로 가는 길에 재영이가 내가 일하는 매장이 궁금하다고 해서 매장을 지나가는데 어찌나 바쁘던지. 멀리서 슬쩍 보고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카페 안이 다 북적북적해서 자리를 찾아 한참을 걸었던 것 같다. 


홍대의 크리스마스이브는 화려했다.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이 다 모여있었다. 사람 많은 곳을 지나다 보니 조금 걱정돼서, 온 신경이 발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발목을 다친 적이 있어서 사실 굽이 있는 신을 신고 걷는 게 남들보다 힘들었다. 그때마다 넘어지려고 하는 날 보고 손을 더 단단히 잡아주었고, 어깨를 내어주었다. 거의 기댄 상태로 걸어 다녔다. 겨울 추위쯤은 느낄 새도 없었다. 그에게서 살짝 나는 섬유유연제 향이 기분 좋았다. 우리는 동네를 돌고 돌다가, 겨우 빈자리가 있는 카페를 찾아 들어갔다. 그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따뜻한 라테를 주문했다.


"애기는 추우니까 따뜻한 거 마실 거지? 따뜻한 라테 맞지?"

'아, 응 따뜻한 라테요. 고마워요 ㅎ'

"애기가 밥 사줬는데, 커피는 당연히 사야지. 앉아있어요, 주문하고 올게"

'응응, 알았어요.'

"케이크도 먹을 거야?"

'응? 아니 아니, 나는 괜찮아요. 재영 씨 먹고 싶으면 먹어요 ㅎ'

"응, 그럼 커피만 마시자"


한참을 걸었더니 다리가 뻐근했고, 추운 줄 몰랐지만 몸은 추웠는지 따뜻한 카페에 들어오니 노곤해졌다. 그가 커피를 주문하러 간사이 나는 자리에 앉아 시린 무릎을 데웠다. 날이 생각보다 추웠나 보다, 다리가 너무 시려서 입고 있던 코트를 벗어 무릎에 덮었다.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그는 오자마자 손을 잡았다.


"많이 추웠지, 사람이 너무 많아가지고. 우리 아기 다리는 안 아파?"

'응, 괜찮아요.ㅎ 이 정도는 뭐 아무것도 아니지, 일하는 것도 아닌데 ㅎ'

"맞아, 아까 애기 매장 엄청 바쁘던데. 평소에도 그렇게 바빠?"

'으응, 주말에는 그 정도로 바쁘고, 평일에는 점심때만 조금 바빠요.'

"애기~ 많이 힘들겠다. 내일 크리스마슨데 진짜 바쁘겠다. 내일도 쉬면 안 돼?"

'아, 응 안돼요.. 내일은 훨씬 바쁘겠지..? 아냐, 원래 이브가 조금 더 바빠. 내일은 아마 저녁엔 한가롭지 않을까? 아, 생각 안 할래.'

"애기, 내일 크리스마슨데 진짜 출근할 거야? 그럼 나는?"

'어? 내일 출근해야죠.. 아쉽지만, 그래도.. 돈 벌어야죠. 재영 씨 맛있는 거 사주려면.'

" 내일, 그러면 애기 일 끝날 때까지 기다리까?"

'내일요? 내일 나 밤 열시나 돼야 퇴근인데.'

"그렇지만 내일은 크리스마슨데? 나 그럼 집에 가? 나 크리스마슨데 혼자 있어?"

'어? 아니 너무 오래 기다리니까, 그렇죠. 내가 너무 미안하잖아.'

"근데, 어차피 내일 일하면 월요일에 하루 더 쉬는 거 아냐? 나랑 같이 있기 시러어?"

'어? 아니 아니 내일 하루 일하면 하루 더 쉬는 건 맞는데.. 진짜 괜찮아요?'

"나는 애기랑 같이 있고 싶어. 크리스마스잖아."

'음, 근데 호텔 체크아웃이 너무 이른데.. 열두 시부터 어디 있으려고? 나 바빠서 신경 못써주는데.'

"그러면 내가 애기 출근할 때 같이 나와서, 나는 안양 집에 갔다가 올게. 나도 어차피 애기랑 크리스마스 보내고 대구 내려가야 해. 가서 공부해야지, 또"

'아, 그렇지.. 내려가야지..'

"응, 그러니까 내가 집에 가서 대구 갈 준비 해서 다시 애기 퇴근시간에 맞춰서 여기로 올게."

'정말, 괜찮겠어요? 안 피곤 하겠어?'

"애기. 일하러 가는 애기도 있는데, 내가 뭐가 피곤해. 나는 하나도 안 피곤 해. 그리고 애기 만나는 거잖아."

'나는 고맙지. 나는 너무너무 고맙지. 나도 같이 있고 싶어요. 우리 첫 크리스마스니까.'

"그러면, 내일 나 집에 갔다가, 애기 퇴근시간에 맞춰서 데리러 올게."

'알았어요, ㅎ 그래도 괜찮겠어요, 근데? 아버님이랑 할머님 서운해하시지 않을까?'

"아빠는 뭐 어차피 여자 친구 만나러 갈 거고, 할머니는 신경 안 써, 괜찮아. 어차피 내려가야 하는데 뭐,ㅎ애기만 괜찮으면 나는 괜찮아. 내가 괜히 애기 피곤하게 하는 거 아니지?"

'응응, 아냐 나는 좋아요. 어차피 나는 하루 더 쉬니까. 그리고 재영 씨랑 있는데 뭐가 피곤해.ㅎㅎ'

" 그럼 내일은 뭐할까?"

' 우리, 그럼 내일은 영등포로 갈까요? 재영 씨 내려가려면 기차도 타야 하고, 그럼 영등포가 좋지 않을까?'

"애기, 괜찮겠어요? 애기 너무 멀지 않아?"

'응, 난 괜찮아요. 재영 씨 기차 타고 가는 거 보구 올래.'

"그래, 그럼 그렇게 할까, 애기가? "

'ㅎㅎㅎㅎ, 뭐예요. 증맬.'


크리스마스에 만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아쉬웠는데, 같은 마음이었을까? 대구에 살던 그는 크리스마스 다음날 대구로 내려가기로 되어있었는데, 기차 시간을 조금 늦추고 하루 더 함께 있기로 했다. 어차피 나도 크리스마스 다음날 휴무를 잡아뒀던 터라, 무리가 없었다. 크리스마스날은 도저히 휴무를 쓸 수 없을 만큼 바쁠걸 알기에, 다음날로 휴무를 잡았다. 그래서 헤어지기 너무 아쉬웠는데, 그가 먼저 함께 있고 싶다고 말했다. 너무 기뻤다. 다음날 일하는 것 따위 아무래도 좋았다. 크리스마스에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일이 내게는 거의 기적이었다. 5년을 연애를 하는 동안 크리스마스날 함께 해본 일이 없었다. 나는 항상 바빴고, 그때 만나던 사람은 항상 부모님과 시간을 함께 보냈다. 


크리스마스는 내게 그저 노동절이었다. 케이크를 만드는 일을 할 때는 쉬긴 했지만, 몸살이 날 정도로 일이 많았다. 시즌이 오면 항상 바쁜 게 제과 관련 회사들이라 어쩔 수 없었다. 나는 5년의 연애를 하는 동안 아이스크림 회사와 케이크 회사를 다녔는데, 두 군데 다 크리스마스는 가장 큰 연례행사이자, 가장 바쁜 시즌이었다. 케이크 회사에선 3개월 전부터 재고량을 만들기 위해 미리 준비를 차곡차곡하며 미리 다른 재고들을 해치우고, 크리스마스를 준비했다. 아이스크림 회사는 12월 한 달이 통째로 시즌이었다. 그래서 길면 하루에 15시간은 기본으로 일을 했고, 어떤 날은 새벽 5시에 출근해서 새벽 3시 반이나 돼야 퇴근을 해야 할 정도로 바빴다. 그냥 노동절이었다. 그래서 항상 크리스마스는 즐겁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크리스마스는 달랐다. 일을 하는 날이긴 했지만, 이 사람과 함께 저녁을 보낼 생각을 하니 너무 설렜다. 일을 하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 사람을 볼 수 있다는 게 모든 걸 용서하게 했다. 크리스마스이브가 훨씬 바쁜 날인데, 이렇게 함께 있다는 것도 기적인데. 나를 위해 와 준 것도, 나와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다는 것도 너무 좋았다. 기적이었다. 우리는 커피를 다 마시고 일어났다, 사람이 많은 홍대 거리를 조금 더 걷기로 했다. 그냥, 늘 일하러만 다녔던 그 거리를 그와 함께 더 걷고 싶었다.


나는 평소 버스킹 공연을 좋아했다. 홍대는 버스킹 천국이었다. 언제나 거리는 공연을 하는 사람과 공연을 즐기는 사람들이 넘쳤다. 저녁이 되면 거리는 공연장이 되었다. 그 길을 한 번씩 혼자 돌아다니며 공연을 보곤 했는데, 이 사람과 함께 보고 싶어 졌다. 그래서 그와 버스킹을 보러 가기로 했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넘쳤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였다. 다리가 온전치 못했던 나를 이미 만나기 전에 알고 있던 그는 내내 걱정이 되었는지 거의 나를 안은 채로 걸었다. 내내 신경 써줬다. 혹시나 불편하진 않은지, 춥진 않은지. 그 마음이 너무 예뻤다. 그래서 다리가 불편한지도 모르고 신나게 걸었다. 공연을 보며 눈을 반짝이니, 그가 걸음을 멈췄다. 그는 자연스럽게 내 뒤에 서서 나를 안았다.


"애기가, 노래 잘한다 그렇지. 오오, 잘생겼다. 애기! 잘생겨서 보는 건 아니지?"

'어? 아, 뭐래. 노관심, 노관심이에요. 목소리 좋다, 그렇지.'

"어, 잘생겨서 보는 거 맞는 거 같은데?"

'노우. 노우. 내 눈에 잘생긴 사람 여기 있잖아.'

"애기, 눈 그렇게 반짝이면서. 말은 잘하네.ㅎㅎㅎ"

'아유, 말은 잘하다뇨. 전 거짓말 못해요.'

-쪽


그는 뒤에서 가만히 나를 안고, 내내 질투 난다는 얘기를 하다가 돌아서서 내 앞으로 오더니 이마에 쪽 하고 뽀뽀를 했다. 너무 설렜다. 그렇게 공연을 보고 기분 좋게 거리를 걷다, 추위에 코가 얼기 시작하니 그는 내가 걱정이 되었는지 호텔로 조금 일찍 돌아가자고 했다. 우리는 조금 더 공연을 보다 간식거리를 사들고, 호텔로 돌아왔다. 따뜻한 물에 씻고, 따뜻한 침대에 내내 꽁냥 대는 밤을 보냈다. 모든 게 완벽했다.


자꾸 5년 만난 그 사람과 비교가 됐다. 애초에 비교라는 걸 자꾸 하면 안 되는데, 정말 너무 비교가 되었다. 세상 예쁨 받는다는 기분이 뭔지 알게 해 줬다. 따뜻하고 설레는 크리스마스이브는 그렇게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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