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을 파는 일

무례함과 무식함 그 사이 어디쯤

by maudie
이 글을 시작하기 전에, 혹시나 이 글을 읽고 찔리는 손놈이 있다면, 손놈이 아니라 손님이 되어주었으면 합니다. 부탁합니다. 당신은 나 하나쯤이야 라고 생각하겠지만, 상대에겐 그 마음들이 모여 하루를 이룹니다. 그걸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글이 무례하다거나 과장되었다고 생각하실 수 있겠습니다만, 내가 이 일을 하면서 겪은 무례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겪은 미미한 일들을 부풀 릴대로 부풀려, 과장되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팩트만을 이야기합니다. 어쩌면 과장의 반대로 미미한 일부분만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그건 그럴 수 있겠습니다. 내 경험만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니 다른 분들에 비해 미미 할 수는 있습니다. 다시 부탁드립니다. 내가 싫어하는 건 저 사람도 싫어합니다. 그것만 기억해주었으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나는 제과제빵을 전공했다. 기본적으로 빵과 과자류, 커피를 배웠다. 음식이다 보니 기초 영양학 정도와 식품위생학을 배운다. 학교가 보건대학교였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학교는 식품계열이 보건계열에 들어가 있었다. 기본적인 보건학도 함께 배웠다.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믿었던 친구에게 취업사기를 당해 졸업을 못 할뻔한 일이 있었고,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학교도 나가지 않았다. 학교를 나가지 않고 한 달 내내 술을 먹었고, 후에 이건 아니다 싶어 교수님들께 일일이 찾아가서 부탁드리고 겨우 졸업했다.


학교를 다닐 때 역시 너무 화려했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내내 제과제빵과는 전혀 상관없는 꿈을 꿔왔기 때문에 친구들은 이미 학교를 입학하기 전 자격증은 물론이고 대회를 섭렵하고 다녔다. 나는 빈손으로 아무것도 모른 채 입학해서 기초는 하나도 안 배우고, 호텔 실무과정만 배우다 보니 남들보다 세배는 힘들었다. 논문은 아니지만 논문을 쓸 만큼의 과제와 박람회, 기획전, 세미나 들을 쫓아다니며 아르바이트까지 해내느라 학교를 다니면서 따로 자격증 공부를 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전공은 제과제빵이지만 겉핥기식 하이레벨의 공부를 맛만 보고 졸업했다.


나는 서비스직에서 생각보다 오랜 기간 일을 했다. 서비스직은 언젠간 말한 적이 있지만, 웃음을 파는 일이다. 나는 처음에 미용실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가장 처음 했던 일이 전단지를 제외하고는 미용실이었던 것 같다. 미용실에서는 손님들의 머리를 감겨주거나 청소를 하는 일을 주로 했다. 조금 오래 일을 하고부터는 파마를 하는 것을 함께하거나 약품을 중화하는 일도 도맡아 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 미용실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대학생 때도 내내 미용실 아르바이트를 했다. 중간에 핸드폰 공장에서도 일을 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미용실에서 일한 기간이 훨씬 길었다. 미용실에서는 다행히 큰 진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냥 가끔 변태 같은 손님들이 와서 샴푸를 해줄 때 느끼는 것 빼면. 대학교 1학년 때까지 미용실 아르바이트를 했던 것 같다. 어차피 주말만 했던 터라 크게 무리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대학교 1학년이 끝나고 나서는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았다. 주말 하루 4시간만 하는 꿀 아르바이트였지만, 그마저도 시간이 나지 않아 그만뒀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것들을 채우기에도 시간이 모자랐다. 뭐 결국엔 취업사기나 당하고 말았지만. 뭐 그이야기도 곧 하게 되겠지만.


대학교를 졸업하고 아빠를 따라 경기도로 이사 와서는 파리바게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여기서는 오래 일을 하지 못했다. 사장이 좋게 말하면 악덕업주, 나쁘게 말하면 쓰레기였다. 교회 집사를 한다는 사장은 자기가 가진 매장이 서너 개 있었다. 진짜 무슨 이 지역 빵집 다 그 사장님 것인 줄. 나는 경상도에서 여기로 이사온지 얼마 안 되었고, 당연히 아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당시 명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평일 오후 아르바이트였던 것 같다.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는 날이나 시간에 길을 가다 사장과 마주치면 일을 하던 매장이 아닌 다른 매장으로 데려가 일을 시켰다. '넌 어차피 아는 사람도 없잖아.'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을 이유로 강제로 다른 매장일도 해야 했다.


그 빵집에서 일을 하면서 유독 잊지 못하는 일이 하나 있다. 혼자 밤늦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때였다. 동네에 아파트 단지 말고는 주변에 상가도 아무것도 없을 때였다. 당연히 지나다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간간히 아파트 단지 사람들이 와서 사가는 정도였다.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딸과 아빠가 왔다. 그 아빠와 딸은 2만 얼마치의 빵을 골라 계산을 했고, 계산을 하는 도중 아이가 슈를 쪼물딱 거리고 그걸 떨어뜨렸다. 당시 슈의 가격은 700원이었다. 죄송하지만 아이가 가지고 놀다 떨어뜨린 슈는 다른 사람에게 판매를 할 수 없으니 구매를 해주셔야 한다고 했다. 화를 낸 것도 아니고 정말 친절하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손님은 소리를 지르며 삿대질을 시작했고, 자신이 결제했던 2만 원어치의 빵을 환불해달라고 했다. 그 빵을 모두 환불하고 700원만 결제를 해달라고 했다. 나는 하는 수없이 환불을 하고 700원을 결제했다. 그러고 그 아저씨는 나가다가 그 떨어뜨렸던 슈를 내게 던지며 '씨발년아 좆같게 하고 있네 이 미친년이!!!!!!! 이따위로 장사하지 마! 아 씨발 기분 좆같아 진짜 700원 하! 씨발 애가 그럴 수도 있지 저 미친년이!!!!!!!!!!'라고 했다. 당시 내 나이 스물둘이었다. 너무 무서웠지만 그냥 그러고 갔다. 다시 생각해보면 정말 700원짜리 슈 하나 해가 가지고 놀다 버렸는데 그거 하나 책임 못 지고 저렇게 억울해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그렇게 얼마 안가 악덕업주에 질려 일을 그만뒀다.


이사를 온 지 1년이 다되어가고, 어느 정도 적응을 했으니 취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얼마간 뒤에 배스킨 라빈스에 입사했다. 본사 공채로 당당히 당시 14:1 경쟁률을 뚫고 입사했다. 나는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었다. 전공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1년을 채 채우지 못하고 그만뒀다가 재입사를 하고 다닌 것 까지 하면 3년 반 정도 일을 했던 것 같다. 배스킨 라빈스에서 일을 할 땐 매장으로 파견 근무되는 형태로 일을 했다. 시즌이 되면 하루에 12-15시간은 일을 해야 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일한 만큼 돈을 벌었고 복지도 나쁘지 않았다. 일이 힘들고 고돼도 버틸만했다. 하지만 거기서 일을 할 때 정말 많은 상처를 받았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땐 사투리를 가지고 욕을 먹었다. 어디 말을 하는 거냐, 말을 하는 거냐, 외계인이냐, 무슨 말을 하는지 도저히 못 알아먹겠다, 말 똑바로 해라. 이걸 진짜 거짓말 안 하고 두어 달을 내리 들었다. 거의 매일 들었다. 사투리를 좋아해 주시는 분도 아주 가끔 있었다. 아주 가끔. 근데 '아 씨발 어떻게 알아들으라는 거야. 뭐 저런 애를 주문받는 걸 시켜! 기분 나쁘게. 야, 네가 주문받지 말고 다른 사람 불러. 어디 촌에서 와가지고, 말도 제대로 못 하면서 주문을 받아!' 그 말이 가장 충격이었던 것 같다. 그런 말들을 듣고 충격을 받지 않을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 같다.


그 후로 3개월을 매일 울면서 일을 했던 것 같다. 아르바이트 애들한테 주문받는 일을 시켜놓고 아르바이트 애들 말투와 억양을 따라 했다. 그렇게 어렵게 바꿨다. 사실 말투를 가지고 시비를 거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진열한 물건을 훔쳐가서 싸우는 것은 늘 있는 일이었고, 팁을 주며 앉아보라며 술집 여자 취급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 무엇보다 어처구니가 없던 건 한 아주머니의 무례함과 무식함이었다.


손님이 별로 없던 아침시간에 딸아이와 젊은 엄마가 들어왔다. 무슨 대화를 했었는지 앞의 말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엄마의 말은 충격이었다. '딸 공부를 안 하면 저 언니처럼 되는 거야. 저 언니 봐봐 이런 데서 알바나 하고 있잖아. 공부를 얼마나 안 했으면 이런 데서 일하고 있겠어. 너는 그러니까 공부 열심히 해야 해 이런 데서 일 안 하려면. 알았지, 딸?' 진짜 어이가 없었다. 무례함의 끝이었다. 매장에 있는 내내 그 얘기를 계속했다. 한두 시간쯤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참다 참다 그 아주머니 들으란 식으로 아르바이트 친구에게 말했다. " 어머 ㅇㅇ야, 요즘도 저렇게 무식한 사람이 있나 봐. 내 연봉이 얼만데 내가 저런 소릴 들어야 해? 대기업 공채로 들어와서 직원으로 일하는 걸 알바 취급하는 것도 모자라 저런 무례한 말을 하네. 정말 배운 게 없나 봐. 저런 엄마 밑에서 크는 애는 엄마랑 똑같겠지. 엄마가 얼마나 못 배우면 저런 말을 딸한테 한대니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당시 내 월급여를 대충 계산해도 신입이 3천이 넘었다. 복지포인트로 받는 것 까지 하면 진짜 그 정도였다. 그게 거의 10년 전이다. 그런 말을 들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전공이라고 하면 또 전공이다. 식품 관련 서비스도 전공이었으니까. 그 아줌마는 부끄러웠는지 얼굴이 새 빨개져 선 도망치듯 딸아이의 손을 잡고 나갔다.


그런 식의 일이 너무 많았다. 서비스업이라고 해서 공부를 못해서 그런 거라는 둥의 말도 안 되는 편견을 잣대로 들이미는 무식하고 무례한 사람이 많았다. 그렇게 일을 하다 다시 전공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만뒀다. 그러고 케이크 회사로 옮겨 전공을 살려 일을 하기 시작했다. 케이크 회사에서 일을 하다 이유모를 불이 났고, 불이난 것들을 수습했고, 재고를 만드느라 계속 일은 했지만, 급여가 밀리고 준비하던 HACCP도 잘 안됐다. 3개월이 넘는 시간을 급여가 밀리고 나니 도저히 일을 지속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만두고 여기저기 옮기다 수제버거집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수제버거집에서 일을 할 땐, 주방에서 버거를 만들기도 하고 서비스를 하기도 했다. 매장의 전반적인 일을 다 했다. 나중에는 팀장으로 일을 하면서, 마케팅과 기획 같은 부분도 맡아서 했다. 여기서도 소름 끼치는 일들을 겪고 결국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면 진짜 제대로 말짱한 회사를 다닌 적이 없는 것 같다. 뭔가 진짜 슬프네. 남의돈 벌어먹고 살기가 어렵다고는 하지만 정말 말도 안 되는 일들을 많이 겪었던 것 같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또 기회가 되면 이야기해야겠다.


수제버거집에서 일을 했을 때 정말 경악스러웠던 일들이 있었다. 절대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일했던 수제버거집은 합정동에 위치해 있었다. 매장에는 외국인 손님이 적지 않았는데, 그중 유독 중국인 손님이 불편했다. 영어를 잘 쓰진 못하지만, 그래도 다들 불편함 없이 웃으며 대해줬고 무리 없이 일을 했다. 하지만 중국인 손님들은 달랐다. 자기의 말을 못 알아들으면 목소리가 커졌다. 음식을 먹고 난 자리는 늘 엉망진창이었다. 테이블 위는 물론이고, 테이블 아래 심지어 의자까지도. 여기저기 음식물이 떨어져 있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중국인 손님이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이 그랬다. 더 충격적인 것은 매장 안에 화장실이 있었는데, 다른 데와 달리 유독 화장실이 넓었다. 변기는 고작 한 개지만 정말 거짓말 안 하고 열명이 서있어도 비좁지 않을 만큼 화장실이 컸다. 그래서였는지 중국인들이 와서 여럿이서 버거 세트 하나 시켜놓고, 화장실 안에서 샤워를 하고 가는 일이 종종 있었다. 우리는 바빴고, 다른 손님들이 화장실에서 사람들이 안 나온다는 항의를 몇 번 받고서야 알았다. '사람들'이라니. 한참이 지나서야 '사람들'이 나왔는데 정말 화장실 안은 쑥대밭이었다. 화장실 전체가 물난리였다. 세면대도 유독 넓었는데 그 옆이 난장판이었다. 문제는 이런 일이 생각보다 훨씬 자주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가끔씩 중국인을 이해할 수 없었던 일이 있었다. 한 번이 아니라 몇 번 있었다. 화장실 변기는 물론이고 그 주변에 오줌을 갈려놓고 가는 것이었다. 진짜 말 그대로 오줌을 '갈겨'놨다. 차마 그 꼴을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다. 비위가 약했던 나는 팀장님이 화장실 청소를 혼자 다 하시는 동안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었다. 팀장님도 상당히 비위가 약한 분이셨는데, 꼭 그런 일들을 혼자 감당하려고 하셨다. 팀장님의 보호를 받고 다녔지만, 절대 잊히지 않았다. 하지만 그 회사도 문제가 많아서 그만뒀다. 매일 한두 시간 자고도 일을 계속할 만큼 일을 좋아했고, 함께 일하는 사람이 좋아 너무 좋았다. 하지만 짧으면 5분 길면 10분에 한 번씩 cctv를 보고 전화와 문자를 해대는 부장을 더 이상 견딜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매장 사람들과 일을 계속하고 싶었지만,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소름이 끼쳤다. 불법이라는 걸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낙하산으로 들어온 사람이 뜬금없이 일은 하나도 할 줄 모르면서 감시만 하고 하나하나 지적만 해대다니. 숨이 막혔다. 더 이상 일이 재미가 없었다. 내가 그만두고 그 매장은 그나마 있던 단골손님도 등을 돌렸고, 문을 닫았다. 물론 다른 매장은 아직 운영 중이지만.


버거집을 그만두고, 케이크 회사에서 만나 인연이 된 언니의 추천으로 언니가 일하던 빵집으로 옮겨왔다. 빵과 커피를 함께 판매하는 카페형 빵집이었다. 스타필드 안에 위치한 카페였는데, 주 고객층의 연령대가 다른 카페들보다 높은 편이었다. 거기서 일을 할 때에는 반말은 기본적으로 탑재되어 있다. 계산을 할 때에 돈을 던지거나, 냅다 소리부터 지르는 어르신 손님이 많았다. 모르면 물어보면 되는걸 그 몰라서 물어보는 게 자존심 상했는지 늘 역정을 냈다. 서비스를 달라고 떼를 쓰는 건 양반이고, 서비스로 달라면서 그냥 가져가는 사람도 많았다. 손님이라고 하기도 싫었다. 손놈. 그래 손놈이다. 손놈이 너무 많았다. 물론 점잖으신 분들도 계시긴 했지만, 어르신 고객의 70프로 이상이 손놈이었다. 70프로라고 하면 너무 과하게 말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건 매우 매우 안타깝게도 리얼 팩트다.


서비스직이라고 깔보고 무시하는 건 기본에, 자기 마음대로 안되면 냅다 소리부터 질렀다. 소리를 지르면 모든 게 해결되는 줄 아는 사람이 많았다. 아메리카노 따뜻하게 한잔을 시켜서 8명이서 나눠마시는 건 흔한 일이었다. '에? 어떻게 그렇게 하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근데 정말 카페에서 일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생각보다 훨씬 비일비재하다. 특히 50-60대 아주머니들. 커피를 한잔 시키고 뜨거운 물을 무한 리필하신다. 커피가 보리차가 되는 건 한순간이다. 정말 그렇게 하고는 평균 4시간 이상 자리하면서 매장이 떠나가라 깔깔거린다. 옆에 있는 다른 손님들은 자연스럽게 다들 도망치듯 가버린다. 그래 나도 싫은데 오죽하겠나 싶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무슨 놈의 장발장이 그렇게 많은지 잠깐 다른 일을 하느라 신경 못쓰면 자연스럽게 빵을 훔쳐가고 없다. 뿐만 아니라 애기들이 빵을 던지고 쪼물딱 거려서 도저히 판매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도 그대로 놓고 도망간다. 정말 맘충들 극혐이다. 맘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일을 불편해 하지만 이럴 땐 쓸 수밖에 없다. 맘충이 아닌 그 어떤 말로도 표현이 안된다. 그렇다고 모든 애기 엄마들을 깡그리 잡아 욕하는 건 아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안 그런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맘충'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신다.


애기들이 매장에서 뛰어다니고, 소리 지르고, 남들이 앉을 의자에 신발을 신고 올라가서 뛰고, 상품을 망가뜨리고, 훔쳐도. 직원이 정당한 요구를 하면 오히려 본인이 역정 낸다. 책임은 절대 지지 않는다.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우리 아기가 하는 거 봤냐. 우리 애는 그런 애가 아니다.'로 일관한다. 아이의 잘못을 덮어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텐데. 교육이 잘 못 되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면, 땅을 치고 후회하리라. 물론 아닌 사람들도 많지만 거짓말 안 하고 애기랑 함께 오는 손님의 70프로 이상이 그렇게 한다. 70프로를 너무 사랑하는 것 같지만, 반이상의 그렇지만 거의 다는 아닌. 진짜 70-80프로. 아무튼 그래서 맘충이란 단어를 쓰지 않을 수가 없다. 도저히.


정말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행동들을 많이 한다. 이유식을 아주 당연히 데워달라고 하거나, 애기 똥기저귀를 당당히 매장 테이블에서 간다. 모유수유도 대놓고 한다. 똥기저귀는 아주 '당연히' 매장에 두고 간다. 음식점인 매장 내에서 다른 사람들이 음식을 섭취하는 옆에서 똥기저귀라니. 그걸 갈아도 아주아주 가끔이지만, 화장실에 버리려 가지고 가는 사람은 그나마 배운 사람이라고 하겠다. 대부분은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이용하는 쟁반이나 접시, 혹은 테이블에 그대로 올려놓고 도망치듯 간다.


또, 매장 고객들의 편의를 위해 비치해둔 빨대와 냅킨은 가방에 한 줌씩 꼭 훔쳐간다. 이따금 매장 이용을 하지 않고 빨대와 냅킨만 훔쳐가는 사람도 있다. 절도죄라는 걸 모르는 걸까, 아니면 cctv가 장식품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물만 훔쳐먹고 가는 사람도 많다. 바로 근처에 공용 정수기가 있어도 꼭 매장에 들어와 물만 훔쳐먹고 달아난다. 그런 사람들을 옹달샘 토끼라고 불렀다.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 새벽에 토끼가.' 아주 손놈보다 더하다. 장발장과 옹달샘 토끼. 도벽이 습관인 사람들.


이런 것들은 누가 봐도 문제인 거고. 주문을 할 때, 물어도 대답 안 하거나. 이어폰을 꽂고 있는다거나. 전화통화를 하느라 대답을 안 한다거나. 것도 아니면 자기가 안 한다고 했다가 다시 해달라고 하거나. 주문을 하러 온 건지 아닌 건지 자기네들끼리 떠들거나. 자기네들이 주문을 할 때 제대로 안 듣고 귀찮다는 듯 대충 대답하거나, 대답도 안 해놓고선 왜 이렇게 했냐 두 번 세 번 확인해서 이렇게 하신다 하셨다고 해도, 억지를 부리는 일이 많았다.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을 겪으며 일을 해왔다. 과장되게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꼭 서비스업종에서 단 일주일만 근무를 해봤으면 좋겠다. 이 이야기들이 과연 정말 과장된 이야긴지 , 아닌지. 겪어본 사람만 아는 얘기일 테니. 카페형 매장에서 일을 했던 나도 이런 일들을 겪었는데, 알코올을 함께 판매하는 매장은 어떻겠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매장을 이용할 때 웬만하면 내가 싫어했던 행동들은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내가 싫었던 것은 분명 저 사람도 싫을 테니까.


이야기를 하다 보니 드는 생각인데 서비스직군에 근무하시면서, 웃음을 잃지 않으시는 분들 정말 존경합니다. 응원합니다. 모든 서비스 업종 종사자분들 리스펙!

물론 그렇다고 불친절한 게 괜찮다는 것은 아니다. 진상고객에 하도 많이 상처를 받아, 친절이 매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불친절을 정당화할 순 없습니다. 어쨌든 정말 다시 곧 또 이 일을 하게 되겠지만, 늘 이 일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고 쉽게, 벗어날 순 없을 것 같다.


서비스 직종의 모든 분들, 오늘도 파이팅입니다! 당신들 덕분에 오늘도 편히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