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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udie Dec 22. 2022

마이크로카피 톺아보기: 가져오기 / 불러오기




프로젝트를 하다가 생긴 궁금증 하나.

가져오기 / 불러오기는

도대체 어떤 상황에서 쓰는 단어일까?

이 고민의 시발점이 됐던 바텀시트 마이크로카피는 다음과 같다.



안타깝게도 내부에서는 “그냥 가장 많이 쓰이는 걸로 가자!”고 해서 일단락했지만, 도대체 어떤 상황에서 ‘가져오기 / 불러오기’를 쓰는지 궁금해서 좀 더 알아보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이크로카피는 마이크로하다는 이유로 우선순위에 밀린다. 더 알아보는 건 개인의 몫이다.)


위 상황은 데이터 스크래핑*을 위한 이전 단계다. 데이터 스크랩(Scrap), 말 그대로 데이터를 긁어온다는 의로 본인인증 후 외부기관에서 개인 데이터를 가져오는 과정이다.(현재 사용자가 보고 있는 화면 기준) 그러면, ‘불러오기’는 외부에서 데이터를 가져올 때 쓰는 말이라고 할 수 있을까? 확답하기 어렵다. ‘가져오기’를 쓰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일반적으로 ‘가져오기’를 많이 쓰는 경우는 은행이다. 인증서 [가져오기/내보내기]가 실과 바늘처럼 같이 다닌다. 아래 예에서는 인증서 [이동 / 복사]의 개념을 [가져오기 / 내보내기]로 치환했다. 위 경우에서처럼 인증서를 외부에서 가져오는 거라면 ‘불러오기’를 쓰지 않은 이유는 뭘까?



추측컨대, ① ‘내보내기’는 가져오기 또는 불러오기 모두와 상응하는 의미이기 때문에 둘 중 무엇을 써도 크게 다르지 않기도 하고, ② 내보내기 하면 가져오기, 가져오기 하면 내보내기가 자동으로 연상되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나름의 결론에 도달했다. 또한 ③ 인증서 가져오기 / 내보내기는 거의 일반화된 표현이기도 하고. 이 상황 역시 위 사례와 같은 개념인데 불러오기가 아닌, 가져오기를 쓴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하기란 여전히 어렵다.


또 한 가지 드는 생각은 포토샵이나 일러스트 프로그램의 경우에도 이미지를 내외부로 이동할 때, 이미지 가져오기(Import)/내보내기(Export)라고 번역했는데 그 이후로 이 표현이 대중화된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해본다.


그렇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우리 회사의 보스는 왜 ‘불러오기’가 더 많이 쓰이고 있다고 봤을까? 나는 [가져오기 / 불러오기]가 쓰인 거의 대부분의 상황을 스크래핑 했다. 생각보다 쓰이는 상황은 그리 다양하지 않았다. [화면을 불러오지 못했어요]의 경우 ‘가져오지 못했어요’보다 확실히 자연스럽다. 불러오기를 가져오기로 대체할 수 없는 유일한 예시였다. (페이지를 열 수 없다는 표현도 가능)




혹자의 의견을 덧붙이면, [불러오기]란 컴퓨터에서 드라이브에 저장되어 있는 파일을 화면으로 불러오는 기능이라 한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불러오기]란 개발자가 자주 사용하는 언어의 흔적이 남아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져오기]가 쓰인 상황도 [불러오기]가 쓰인 상황 만큼이나 예상 가능했다. 여전히 명확한 선긋기는 어려웠다. 결국 [가져오기/불러오기]란 무엇을 선택하느냐의 문제일 뿐, 정확히 그 쓰임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래도 설득을 위한 논리를 세울 필요는 있다는 관점에서 한번쯤은 즐거이 고민해볼 만한 주제라고 생각한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 회사 보스가 말한 “불러오기를 더 많이 사용한다”는 발언은 100% 사실이 아니다. 활용도를 굳이 따지자면 [가져오기]가 더 많은 상황에서 쓰인다. 그래서 나는 [가져오기]를 더 깊이 파보기 위해 토스뱅크와 카카오뱅크도 함께 살펴보았다.



[가져오기 활용 번외편]



[가져오기]란 오픈뱅킹 서비스가 생기면서 하나의 금융앱에서 흩어진 자산을 가져올 수 있게 되면서 생긴 새로운 기능이다. 먼저 토스뱅크에서는 [토스뱅크 송금]이라는 상위개념 하에 [채우기]와 [보내기] 두 가지 기능을 두고 있다. 오픈뱅킹 특성상 어디서든 돈을 가져오고/보낼 수 있기 때문에 상위개념을 송금(돈을 보내는 행위 자체)으로 둔 것 같다. * 송금(돈을 부쳐 보냄: 앱, ATM, 무통장 등) / 이체(네 계좌 to 내 계좌)


토스뱅크의 [채우기] 버튼문구는 ‘(다른 계좌에서 돈을) 가져와서 (내 통장에) 채운다’는 뜻을 함축한다. [채우기]를 누르면 등장하는 바텀시트 메시지(어떤 계좌에서 돈을 가져올까요?)가 이에 대한 방증이 아닐까. 아마도 라이터는 다른 곳에서 돈을 ‘가져온다’는 행위보다 가져와서 ‘채운다’는 결과에 더 방점을 두고 쓰지 않았을까 싶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가져오기보다 채우기가 더 이점이 될 수 있으므로 그 이점을 강조한 문구가 아닐까? 그렇다면, 카카오뱅크는 [가져오기]를 어떻게 쓰고 있을까?



카카오뱅크는 [가져오기]로 쓴다. 간단명료하다. 토스뱅크의 [채우기] 기능이 어려운 건 아니지만, 모든 단계(가져오기 > 가져올 금액 > 가져오시겠습니까? > 가져왔습니다 > 가져오기 완료)에 걸쳐 가져오다 동사를 일관되게 사용하므로 한결 정돈된 느낌을 받는다. 본디부터 ‘가져오기’란 말이 더 익숙해서 편안함을 느끼는지도 모르지만.






고민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그동안의 생각을 글로 옮겼다.

아쉽게도 명쾌한 결론에 다다른 건 아니지만, 어느 것을 쓸지에 대해서 나름의 소신이 생겼다고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설득을 위한 지식을 쌓고 나만의 로직 세우기 실전에서도 중요하니까.


「마이크로카피」, 232p

어떤 것이 더 적절한지 논의 중이라면 그건 아마 어떤 것이 옳다고 대답하기 모호한 경우로 어떤 선택을 하든 그다지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마이크로카피는 효과적이고, 간단하며, 실제로 사용자의 불편함을 줄여준다는 것이다. 


결론.

가져오기를 쓰든 불러오기를 쓰든 큰 차이 없음.

마이크로카피의 역할만 잊지 않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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