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이스>에서 주연배우 변요한은 보이스피싱 조직의 본거지를 쫓는 전직 마약계 형사로 등장합니다. 영화에서 그는 자신의 와이프를 속인 보이스피싱범을 ‘목소리’로 기억하고, ‘목소리’로 찾아내죠. 귀에 꽂히듯 박히는 범인의 목소리와 그가 마주한 순간 영화는 절정으로 치닫습니다.
누구나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목소리가 있죠. 개인적으로 즐겨 보는 여행 유튜버가 있는데, 그 채널을 구독하는 여러 가지 이유 중 목소리도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깔끔한 딕션과 부드러운 톤이 오래 들어도 질리지가 않거든요. 기억에 남는 목소리는 마음속에 ‘어떨 것이다’라는 이미지와 함께 각인됩니다. 그렇게 한 번 각인된 목소리와 이미지는 좀처럼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높죠.
보이스앤톤(Voice&Tone) 디자인
UX 라이팅에서도 고유의 목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텍스트에 ‘목소리’를 입히는 것이죠. 바로 ‘보이스앤톤(Voice & Tone)’ 디자인입니다. 텍스트에 보이스앤톤을 적용하는 이유는 글투에도 말투처럼 감정을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이스앤톤에서 ‘보이스’는 늘 한결같은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반대로 ‘톤’은 대화 상대에 따라,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반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일종의 커스터마이징과 같은 것이죠.
무미건조한 텍스트에 보이스앤톤을 입히면 글맛이 살아납니다. 아무리 눈으로 읽는 텍스트라 할지라도 어떤 투로 말하느냐에 따라 느낌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마치 사람과 대화를 나누듯 친밀감을 더하기도 하고, 신뢰를 줄 수도 있죠. 그러면, 몇 가지 특색 있는 보이스앤톤을 띠는 서비스를 소개해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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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코리아: 단순하고 명료하게 일관된 표현으로 신뢰감을 주는 보이스앤톤을 지녔습니다. ⓒ애플
번역톤 뉘앙스가 풍기면서도 가독성이 좋은 편이죠.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전문용어가 섞여있지만, 웬일인지 거슬리지 않습니다. 애플 제품이 가진 프로페셔널한 이미지가 이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에게 전이되어, 이 정도쯤이야 충분히 소화해낼 수 있다는 자부심을 부여하거든요.
토스: 금융권에 ‘해요체’ 바람을 일으켰던 주인공이죠.
말해 뭐 하겠어요. 66세 저희 어머니도 혼자서 척척 토스하실 정도로 토스는 군더더기 없이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친절한 보이스앤톤을 지녔습니다. 딱 한 번 알려드렸을 뿐인데 말이죠. UX 라이팅 하면 딱 떠오르는 서비스 토스 짱입니다. :D ⓒ토스
29cm: 큐레이터처럼 친절하면서도 편안함을 주는 보이스앤톤을 지녔습니다. 감성 한 스푼까지 곁들여 갖고 싶은 욕망을 자극하죠. ⓒ29cm
긴 여운을 주는 목소리
엄지혜 작가가 쓴 <태도의 말들>이란 책에서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김중혁 작가의 인터뷰 중 한 부분을 옮겨 놓은 글이죠.
좋은 문장이 있을 때는 독자가 바로
‘오이시(맛있다)’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다 읽고 나서 책장을 덮고 한참 있다가
‘오이시캇타(맛있었다)’하게 되는 소설을 쓰고 싶은 겁니다.
읽는 순간에 맛있게 느껴지는 글도 좋지만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도 맛있었다는 생각이 들 만큼 긴 여운이 느껴지는 글이 지닌 힘이란 무엇일까요? 앞서 소개한 3개의 브랜드가 대중에게 사랑받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는 ‘보이스앤톤’에 그들의 다정하고, 일관된 목소리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 목소리가 기술과 서비스 곳곳에 스며들어 한 목소리를 내고, 긴 여운을 주는 것이죠. 책장을 덮고 한참 있다가 ‘맛있었다’고 하는 것처럼요.
아침 출근길, 지옥철 안에서는 날이 선 말투 하나로 금세 싸움판이 벌어집니다. 회사에서는 불쾌한 감정을 태도로 고스란히 드러내는 선후배와 마주해야 하죠. 어디 그뿐인가요? 빈정대는 말투, 무뚝뚝한 말투, 공격적인 말투, 영혼 없는 말투 등 ‘안 괜찮은 상황’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은 하지만, 나도 모르게 이미 저렇게 말하는 사람이 되는 순간도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사소한 말투 하나로도 관계는 쉽게 틀어집니다. 그래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기 전에 보이스앤톤을 점검해 봐야 합니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건 결국 표현의 문제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