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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udie Nov 02. 2023

사용자 여정을 이해하는 무해한 방법

협업의 경험에서 사용자 경험으로


유일한 여정은 마음속의 여정이다

Rainer Maria Rilke




사용자 여정. UX라이터가 늘 지나는 길이다. 그 여정에서 만나는 이정표는 UX라이팅으로 채워진다. UX라이터의 역량에 따라 사용자 경험은 질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다. UX라이터가 여정을 톺아보며, 어떤 경험을 선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똑같은 여정이라도 어떤 이해관계로 얽혀있는지에 따라 경험은 다르게 전달될 수 있다. 여기에서 어떤 이해관계에 얽혀있는 자들이란,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고자 협업을 위해 모인 사용자들(메이커: 기획자/리서처/디자이너 등)이다. 저마다 미세하게 다른 지점에 좌표를 찍고 있는. 협업한다는 건, 경험 이면의 세계를 부유하는 또 다른 여정과도 같다.

손을 맞잡고 같이 부유해서 어떻게든 살아남거나 동 떨어져서 부유하다 우주 미아가 되거나 하는 오묘한 여정이다. 최근에 난 그 여정이 녹록지 않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때때로 그 깊이를 가늠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한 길 사람 속이 어렵다.




협업은 단순한 백지장 맞들기가 아니다. 엉뚱하게도 백지장의 네 귀퉁이가 모두 라이터 차지가 될 때가 있다. 한 번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UX라이터가 감당해야 할 부분인지 헷갈릴 때가 있었는데 숏한 연차 탓이겠거니 생각하고, 자책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난 협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상대는 요청이라고 생각했다. 난 같이 고민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상대는 “응 난 많이 생각함. 이젠 네 차례임“이라고 생각했다. 난 의견조율이라고 생각했는데 상대는 나의 이해 부족이라고 생각했다. 양극 사이에 회색지대는 없는 것인가 돌아보고 또 돌아봤지만, 오롯이 감당해야 할 '내 몫'만 있을 뿐이었다. 라이팅을 할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 부족까지도.




협업이라 생각한 건 내 착각인 걸까? 의사결정 이론 중 하나인 여섯 개의 생각하는 모자처럼, 스스로 6개의 인격을 가진 라이터로 다시 태어나야 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대표 전략으로 상대의 머릿속 여정을 밟아 보기로 했다. 명확한 UX라이팅 요청사항이 없다면, 스스로 알아낼 수밖에.

세부 전술로는 미팅 때 나온 상대의 말을 단 한 자도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받아 적었다. 미팅이 끝나면, 토씨 하나하나 정독하고 이해가 어려운 건 재차 물었다. 프로세스를 파다가 도무지 라이팅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하면 지체 없이 물었다. 진짜로 앙- 물고 싶은 순간도 많았지만, 교양인답게 꾹 참았다.




돌아보니, 웃프게도 이 과정이 썩 나이스하단 결론에 이르렀다. 눈앞에 없는 사용자를 생각하기보다 당장 눈앞에 있는 사용자를 생각하는 게 어쩌면 더 현실적이었으니까. 상대의 여정을 따라가며, 물음표 괴물이 되어보니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이 과정의 경험이 사용자 경험으로 전이된다는 거다.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마다 물음표 딱지를 달았다. '이렇게도 생각해 봤어? 저렇게도 생각해 봤어?' 묻고 또 묻다 보니 어느새 상대보다 더 깊이를 갖고 과업을 이해하는 라이터가 되어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하나 더. 사용자를 100% 이해할 순 없지만, 보다 가깝게 수렴할 수 있다는 걸 캐치했다.





이 과정의 레슨런Lesson-learned을 롱블랙에서 따온 메시지 카드로 표현하고 싶다.



때론 논리보다 공감이 더 힘이 셀 때가 있다


아이디어를 뾰족하게 만들랬지, 태도를 뾰족하게 하라고는 안 했다


라이팅 요청을 한 상대보다 더 잘 아는 UX라이터가 되라는 말로 받았다



지식이 축적되는 만큼 잘 싸울(?) 수 있다. 센스는 덤이다



사용자를 이해한다는 것
경험을 이해한다는 것
진심으로 공감한다는 것은
실제로 경험하기 전까지는
신의 영역이다.


똑같은 사람이라고 다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엄청난 착각이다



산책길에 발견한 이 사진 앞에 한참을 머물렀다. '한때는 나도 갓난아기여서 아기 맘을 잘 알아', '난 아기 엄마라서 잘 알아', '내 조카가 있어서 잘 알아' 정도로 우리는 갓난아기가 느끼는 경험을 다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할머니도 마찬가지다. 젊은 우리, 아직 할머니가 되어 보지 못했는데 할머니랑 살아 봐서, 울 엄마가 할머니라서 그런 정도의 이야기로 할머니 사용자를 온전히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을까? 사용자를 100% 이해할 순 없지만, 100%에 가깝게 수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또 다시 물음표 괴물 모드로 지내던 어느 날, 체헐리즘 남형도 기자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유니버설 디자인의 선구자 패트리샤 무어를 인터뷰한 기사였다.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봐야지,

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거니까요.

Patricia Moore


https://n.news.naver.com/article/008/0004955485?sid=102&type=journalists&cds=news_edit



그리고 또 하나. 모두를 위한 디자인(Design for all), 디올연구소에 관한 이야기다. 국내 최초로 유니버설디자인 폰트를 개발한 사회적기업이다. 일반적인 폰트와 달리, 시력약자(저시력, 노안자) 모두를 위한 폰트를 개발했다. 국내에 있는 서체 중 가장 작은 크기인 6pt에서도 선명하고 정확하게 읽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한다. 실제로 삼성카드, 삼성생명, 빙그레, 춘천시청, 사회연대은행, 호주 CANVA 등 국내외 50여 개 기업과 기관에 판매되어 시력약자들을 위한 다양한 인쇄물과 콘텐츠에 활용되고 있다.



불편함은 주변에 이미 존재한다.

내가 직접 그 불편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이를 인식하거나, 공감하기가 어렵다.

이종근 대표


이런 서체가 있다는 걸 알고, UX라이터로서 한 가지 꿈이 생겼다. 이렇게 목적이 뚜렷한, 유니버설디자인폰트로 라이팅 하는 꿈이다. 모든 것을 포용하는 자세로 어떻게 쓸지를 고민하는 경험은 또 얼마나 특별할까. 궁금하다.






epilogue


내 마음속 여정을 걷다가

UX라이터를 하면 좋은 점 중 하나는 역지사지를 몸소 체험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설령 일부는 불완전할지라도, 시도해 보는 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좀 더 확장해 본다면, UX라이팅이란 기술이 더 포용적으로 쓰이도록 의미 있는 일을 찾고 싶다.



공부가 뒷받침되지 않은 계획은
시나리오일 뿐이죠.
세상은 내 시나리오처럼 흘러가지 않아요.
하고 싶은 것, 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배우고 움직여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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