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래서, 그러므로
2026 미션: 대중 앞에서 전문 분야에 대해 말하기
그동안 두 어번 저술 의뢰를 받았다. 온라인 교육 플랫폼에서 강의 제안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 고사했다. '아직 충분하지 않아'라고 생각해서다.
올해 '강연'이란 미션이 주어졌을 때, 이제는 나에게 기회를 한번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분야를 끊임없이 탐닉했고, 실무에 적용했고, 작고 하찮은 실패와 성공도 경험했다. 그 모든 순간이 응축된 에너지를 이제는 발설해야 할 때가 왔다는 걸 직감했다. 한 번은 발설해야 비워낼 수 있고, 그곳에 새로운 걸 채워 넣을 수 있는 법이니까.
강연의 주제이기도 한 이번 프로젝트는 각별한 애정이 깃든 프로젝트였다.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아주 사소한 부분일지라도 '내 지문'을 남길 만큼 마음을 쏟았다. 마음을 쏟는 데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단지 콘텐츠 표준화 전략을 짜는 데 재미를 느꼈을 뿐이다. 호소다 다카히로의 책 <더 센스: 당신도 센스가 있다>에 나온 표현을 빌리자면 '지금까지 이렇게 해왔다'는 접어두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그 시간이 마냥 소중했다.
UI/UX라이팅을 넘어서 CX라이팅으로 확장된 시야만큼 난 자유롭다고 느꼈다. 이제는 UI/UX뿐만 아니라 CX도 할 수 있는 그 지점에 난 매료되었다. CX라이팅에 브랜딩 관점을 접목했고, 이를 언어화하는 방법을 체계화하고 설득했다.
프로젝트 진행 과정은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 사이 경계를 넘어서고 또 지경을 넓히는 일이었다. 체력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무리가 될 만큼 무언가를 보여주기엔 한없이 짧은 여정이었지만,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을 정도로 우리는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배 아파 낳은 자식 같은 느낌이 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다행히도 산출물은 우량아(?)였고, 시부모(고객)님도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수행사로서 우리의 노고는 연극 무대 뒤 소품 스태프의 노고와 같다. 비록 스포트라이트는 우리 것이 아니지만, 오리지널리티는 우리 손에 있다. 그 자부심만으로 충분하다.
이번 강연의 모토는 단 하나였다. (내가) 하고 싶은 말과 (청중)이 듣고 싶은 말을 잘 콜라보하자!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넌 어때?' 이 물음이 오가는 자리이길 바랐다.
CX라이팅 가이드를 (혼자) 눈으로 읽는 것과 (강연 자료를) 눈으로 보며 (강연자의 말을) 귀로 듣는 것 사이엔 약간의 다름이 있다. 맥락을 잇는 행위는 같으나 후자는 '편집의 기술'이 가미되어야 매끄럽게 이어진다. 작업 파일 개수가 늘어날수록 강의 기획에 대한 고민도 깊어갔다. 다듬고 또 다듬으며 내가 관철시키고 싶은 나만의 포인트와 청중이 듣고 싶은 말 사이의 접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확실한 건, 머리로 이해하며 언어로 체계화한 글들이 '말하기'를 통해 '확신'이란 옷을 입는다는 사실이다. 어느 구간이든 말하다가 애써 '힘주어 말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강조다. 반대의 구간도 있다. 말하기에 강약이 있다는 건 강연 내용에 대한 '확신'이 있어서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 강연을 마치고 시계를 보니 50분이 지나 있었다. 두 번째 강연은 60분이었다. 세바시, TED도 15분인데 혼자서 60분 가까이 말하는 일은 무척 고된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후들후들 후들후들. CX라이팅을 주제로 한 강연을 회고하며, 개선점을 세어 본다. 그리고 그날의 기억을 이곳에 기록으로 남기며 다짐한다. 남은 한 해는 명사를 동사로 만드는 해로 보내자고 말이다. 배운 것을 입 밖으로 내는 일. 지식이란 명사를 머리에서 입으로 옮기는 일을 주저하지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