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
우리는 우리 생각만큼 선하지 않다.
우리는 우리 생각만큼 아름답지 않다.
우리는 우리 생각만큼 나를 모른다.
늘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걸 아는 선한 사람이 있고
그걸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 있다.
선한 사람은 자신을 어리석다 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을 선하다 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을 악하게 만들고
선한 사람은 그 세상을 묵묵히 정화한다.
그나마 세상이 선하게 유지되는 이유다.
사람들은 남을 비방하거나
남의 잘못을 찾아내는데 달인이죠.
정작 자신의 잘못은 알지 못하고 말이죠.
우리의 뇌는 강력한 '편집' 기능이 있죠.
그 편집 기능 덕분에 우리는 수많은 정보를
정리하고 필요한 부분은 꺼내 일고 쓰기 쉬운 곳에 저장하고
필요가 덜한 부분은 깊숙한 곳이나 무의식의 영역에 저장하죠.
그 덕분에 우리는 스스로를 아주 선한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살죠.
어떤 사람이 나에게 무례한 언행을 했을 때
이렇게 선한 나에게 감히 저런 사람이 지적을 해? 라든가
나 만큼만 하고 살면 세상이 살만할 텐데... 라든가
나 정도는 돼야 나와 어울리지... 라든가
나만 선해서는 살기 힘들어...
이런 생각들이 자주 떠오른다면
당신은 선한 상태와 너무 멀리 떨어져 버렸다는 증거다.
심리치료법 중에 상황극이나 역할극이라 불리는 것이 있다.
이는 가상의 상황을 만들어 자신이 아닌 다른 역할을 맡아
상황극 속의 자신을 보게 함으로써
감정이나 심리를 치료하는 게 목적인 방법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상황극을 하고 나면
자신의 평소 모습에 놀라거나 충격을 받는 사람들이 많다.
그만큼 자기 자신의 모습을 모르고 살았다는 것이다.
나는 심리치료를 받을 만큼 나를 모르지 않아요? 혹은
나는 내가 잘 아니까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예요?라는
생각을 계속해서 한다면 당신은 중증 중에 갑이라 볼 수 있어요.
누구나 잘못된 언행을 할 수 있고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고
실수를 할 수 있죠.
그게 사람인 거죠.
하지만 그런 잘못을 부정하면
해결의 실마리를 없애버리는 폭력이 돼버리죠.
아들이 보는 엄마
엄마가 보는 아빠
부하가 보는 상사
사장이 보는 직원
모두들 서로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이 세상은 갈등과 폭력만이 난무하는 무도한 세상이 되고 말지요.
다행한 것은 자신의 못난 구석을 잘 알고
그것을 인정하고 수행하듯 고치며 살아가는 선한 사람들이 있다는 거죠.
그나마 그런 사람들 덕분에 이 세상이 온전히 굴러가게 되죠.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를 절대 선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악하다고 이야기하죠. 그래야 수행을 유지할 수 있죠.
그래야 선행을 유지할 수 있거든요.
그 반대되는 사람들만이 교회에서나 성당에서나 절에서 머물며
예수를 앞세우고 하나님을 욕보이며 부처를 마음 밖의 대상으로
만들어 가며 자신만이 선하다고 신의 자녀라고 떠들며 살아가죠.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선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는 천국에 갈 수도 없고,
견성할 수도 없으며,
사람으로서의 대접도 받기 힘든 것이 세상이 이치지요.
당장은 자신의 왜곡된 선함으로 빛나는 듯 보이나
머지않은 시간에 치욕의 무대에 발가벗겨져 오르게 되죠.
그런 시간이 오기 전에
내 주위의 선한 사람들이 나를 외면하기 전에
나를 알아야 하죠.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선하지 않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