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
나에게 내일이 찾아온다는 보장은 없다.
자연 어느 것도 보장된 내일은 없다.
화려한 꽃도 지는 날이 찾아오고
자유롭게 하늘 날던 새도 잡혀 먹히고
넓은 호수도 마르는 날이 온다.
나의 내일도 마찬가지다.
보장되지 않은 내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내일에 오늘을 미루고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한다.
온전한 삶이란 지금에 충실하고
오직 지금을 영원처럼 사는 것.
지금이 행복하지 않으면
내일에도 미래에도 행복할 수 없다.
미래는 오늘이 쌓인 곳이니까.
슬프게도 지금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내일을 위해 열심히 지금을 낭비하며
뿌듯해하며 살아가고 있다.
의미 없는 숫자가 나열된 통장을 움켜쥐고
허탈한 웃음 지으며 그렇게 살아낸다.
오늘은 내 남은 생의 첫날이자
내 생에 보장된 마지막 날임을 잊지 말자.
열심히 사는 것! 좋은 것이죠.
미래를 준비하는 마음가짐! 나쁘지 않죠.
하지만 열심히 사는 것이 괴로움의 연속이라면
미래를 준비하며 지금을 희생하고 있다면
옳지 않은 일이죠.
마음이 방향을 알면 무서워져요.
우리 마음은 관성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에요.
한 번 기운 마음은 무섭게 그 방향으로 쏠리죠.
그 방향이 욕심이란 날개를 달면 통제불능이 되죠.
우린 그렇게 욕심이란 날개를 달고 미친 듯이
탐욕의 싸구려 향수 냄새 풀풀 나는 화려한 미래를 향해
내달리며 살아가죠.
지금이란 소중한 친구를 무참히 짓밟으며 말이죠.
미래에 대한 희망 만으로 지금의 고통이 행복하다면
그렇게 살아도 좋아요.
하지만 지금이 불행하다면 지금이 힘들다면
다시 생각을 해보아야 하지요.
자연 어떤 것도 내일을 위한 행위를 하지 않아요.
오직 지금 순간순간에 충실할 뿐이죠.
하여 자연의 모든 것은 힘들이지 않고
아름답고도 조화롭게 살아가죠.
오직 인간만이 '내일'이란 관념의 노예로 살아가죠.
그걸 교육이란 그럴싸한 관념 포장기를 통해
우리의 자녀들에게 오늘 정도는 가볍게 무시하라며
많은 돈을 들여 가르치죠.
또 부모들은 그 그릇된 가르침에 드는 돈을 벌기 위해
악마의 화신처럼 악착같이 살아들 가죠.
자녀들은 그런 애처롭고도 고달픈 부모의 모습을 통해
세상이란 추하고 악하게 살아야 하는 곳이라 느끼죠.
한번 정해진 악순환의 고리는 이렇게 이어져 왔죠.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건가요?
많이 배웠다면서요?
많이 안다면서요?
그런데 왜 그렇게 불행하게 사나요?
배움의 목적이 불행하게 살기 위해서인가요?
그 불행의 대가로 돈을 버는 것이 삶의 목적이고
그 추한 삶을 물려주는 것이 생육하고 번성하는 문명인 가요?
어떤 문명도 영원한 문명은 없었죠.
지금 우리의 문명도 거의 끝부분에 왔다는 생각 안 해보셨나요?
무언가 썩은 냄새가 나지 않나요?
많이 배운 여러분은 아시지 않나요?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지위 있는 당신은 알지 않나요?
공자, 예수, 석가를 가뿐히 무시하며
내가 그들보다 더 많이 안다고
자부하며 사는 당신은 잘 알지 않나요?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면
잘못을 인정하고 바꾸어야 하지요.
그걸 용기라고 하지요.
우리에게 보장된 내일은 없어요.
신은 어느 순간에 우리를 데려갈지 몰라요.
그곳이 이 곳보다 더 좋은 곳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 곳에서 불행하게 살던 마음이
그곳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말했죠? 마음이 방향을 알면 무서워진다고.
하늘나라에 가서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죠.
천국이란 곳에서 지옥의 삶을 세세토록 누릴 수도
있다는 뜻이죠.
오늘에 충만하고
지금에 충실하며
나와 내 주위의 행복을 위한 삶을 누려 보아요.
더 늦기 전에.
오늘은 내 남은 생의 첫날이자
내 생에 보장된 마지막 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