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삶은 죽음의 결론에 다다른다.
누구든, 어느 것이든 예외는 없다.
한 사람의 삶의 가치도 그의 죽음으로 규정된다.
생은 그 죽음을 향한 아름다운 여정.
그 과정이 세상과 동행하는 행복한 여정이었는지?
힘겹게, 추하게, 마지못해 떠밀린 고행이었는지?
그 과정을 통해 쌓아온 수많은 인연과의 관계와
세상에 내어 놓은 가치가 모이고 모여
죽음 앞에 다다른다.
죽음 앞에 발가벗겨 세워진 그 가치를 통해
이 세상에서의 삶의 가치가 결정되며
그 가치를 통해 다음 생의 신분이 결정된다.
우리는 그것은 모른 채
아무런 의미 없는 재물을 모으고
탐욕으로 마음을 물들이고
원망과 한 만을 세상에 남기고
다음 생의 고행을 선택하고야 만다.
끝이 없는 영원한 고행의 길을 가고 싶다면
지금과 같이 살아도 좋다.
그것이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마음을 돌려세워야 한다.
마음은 방향을 알면 무서워진다.
지금까지의 삶이 아무리 악마와 같았다고 하더라도
지금 그 방향만 바꾼다면
마음은 무서운 힘으로 그리고 놀라운 능력으로
그대 삶의 가치를 변화시켜줄 것이다.
선택은 오롯이 그대의 몫이다.
그것이 신이 우리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다.
우리는 죽음이라는 결정된 생을 살아가게 되지요.
자연 모든 것이 예외 없이 그렇게 살아요.
꽃이 아름다운 건 언젠가 시들기 때문이고
사자가 용맹한 것도 언젠가 죽기 때문이죠.
변화무쌍한 구름도 흔적 없이 스러지고
거친 태풍도 어느새 잠들지요.
우리네 삶도 그래요. 언젠가 흔적 없이 사라지죠.
하지만 우리의 오염된 마음은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욕심을 품게 하고
당장 차지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조바심을 품게 하죠.
그런 마음은 용암보다 뜨거워 내 본마음을 태우고 말죠.
그렇게 살아가며 쌓아놓은 재물이
그렇게 생각하며 키운 자녀가
그렇게 상처 줬던 나의 주위가
그렇게 쌓아 올린 나의 명성이
과연 죽음 앞에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가질 수 있을까요?
120년도 되지 않는 인생을 살아가며
행했던 그 수많은 악행들을
어찌 갚아 나가려고 그리 살까요?
고작 생각한다는 게
노후 준비를 위해 지금 악착같이 살아야 한다는
그런 어리석은 마음뿐이지 않나요?
자연 어떤 것도 노후준비를 하지 않아요.
그래도 모두들 온전히
자신에게 주어진 생을 누리며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지요.
오직 인간만이 슬퍼하죠.
그 죽음 이후에 영생을 얻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극락왕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인데도
그 죽음 앞에 무언가 마음의 부채가 있는
사람만이 서럽게 서럽게 울어대죠.
그 슬픔이 정작 그 죽음에 당도한 사람을
욕보이는지도 모르고 말이죠.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있죠?
가족이나 타인의 죽음 앞에 슬퍼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한을 그 죽음 앞에 풀어놓는 것 밖에 안되죠.
죽음은 우리에게 삶을 온전히 살라고 가르쳐 주는 존재죠.
죽음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지옥과 같을 거예요.
탐욕이 창궐하고 아름다움은 흔적조차 없어질 것이요
나태와 추악한 타락만이 가득한 그런 삶이 되고 말겠지요.
먼 훗날 죽음 앞에 발가벗겨진 마음으로 섰을 때
우리는 당당할 수 있어야 하죠.
삶의 과정을 통해 쌓아온 가치를 통해 떳떳이 평가받아야 하죠.
그 평가를 통해 내 죽음의 가치를 선명히 드러낼 수 있고
그 죽음을 통해 지나온 내 삶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죠.
삶은 한 순간 한 순간 아름다워야 하지요.
그 아름다움을 내 순수한 마음은 알고 있어요.
현상에 붙들린 오염된 마음을 지워내면
환한 빛으로 세상을 읽어 나갈 수 있는
마음의 눈이 밝혀지죠.
그렇게 살아야 해요.
매 순간 나와 너를 위해 최고로 선한 선택을 하며
그 선택으로 쌓인 그 곱고 연한 가치를 통해
우리의 죽음을 영생의 길로 가는
아름다운 문으로 만들어야 하죠.
오늘이 그런 날로 이어지는 삶이시길
두 손 곱게 모아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