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사실 자연의 동식물이나 곤충들도
사회적인 관계를 맺고 어울려 살아간다.
인간이 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비교"라는 엉터리 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각자가 마음대로 새겨 넣은 엉터리 자를 가지고
내가 옳다, 네가 그러다.
내가 잘났다, 네가 못났다.
내가 높다, 네가 낮다.
이런 소꿉놀이를 하며 살아간다.
그래도 조금 나을 줄 알고 투표로 뽑은
대통령들도 그런 소꿉놀이의 대가들 뿐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두들 그렇다.
사회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인간은
사회 속에서 영원한 허탈감을 안고 살아간다.
그 "엉터리 자" 덕분이다.
너 없이는 못 산다고 했다가
너 때문에 죽겠다고 하고
너 덕분이야라고 했다가
너 때문이야라고 한다.
조석으로 변하는 그 "비교"의 자를
내려놓지 않으면
우린 영원한 사회적 고아로 남겨질 뿐이다.
그런 영혼 없는 고아들로 넘쳐나는 사회를
지옥이라고 부른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죠.
그래서 신도 남녀를 만들고 자연을 만들어
생육하고 번성하며 만물을 경영하라고 이야기했죠.
여러분은 사회적으로 충분히 행복하나요?
아니면 혼자 있을 때 충만한 행복을 느끼나요?
만약 그 어느 것에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거나
어느 한 상황에서만 행복하다면 무언가 잘못된 거죠.
자연을 둘러보세요.
맹수들도 각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며
꽃들도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지 않아요.
흐르는 물도 아래로 아래로 길이 허락되는 대로 흐르죠.
그러면서 하나의 온전한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죠.
그곳에는 "비교"가 없고 "어울림"만이 있고
그곳에는 내세우는 "나"가 없고 오직 "존재"만 있죠.
그래서 평화롭고도 아름다울 수 있어요.
그런데 그 자연을 경영하라고 만들어 놓은 인간은
어떻게 살 아들 가고 있나요?
신을 앞세워 서로를 죽고 죽이는 전쟁을 게임처럼 즐기고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 폄하하고
남의 잘못은 죽음으로 다스리려 하고
자신의 잘못은 용서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죠.
내 자식은 잘되어야 하고
남의 자식의 내 자식의 종으로 살아야 하죠.
나는 주인이 되어야 하고
남은 나를 섬겨야 직성이 풀리죠.
예전 노예시대를 욕할 필요도 없어요.
지금이 더 노예시대 다운 세상이니까.
지금이 더 무도한 세상이 되어 버렸죠.
비바람 막을 수 있는 따듯하고 시원한 집에서
언제든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고
지금까지 인류가 맛보지 못한 진미를 먹고
집 안에 있는 위생적인 화장실을 사용하며
온갖 세상 일들을 편안히 들을 수 있는
이런 천국 같은 세상을 살면서도
마음과 영혼은 그 어느 때 보다 무도한 생을 살아 내고 있죠.
모두가 그 비교라는 엉터리 자 때문이죠.
내가 10억짜리 집에 살면
100억짜리 집에 사는 사람을 시기하거나 부러워하고
내 자식이 서울대를 가면
와튼이나 하버드대를 간 남의 자식을 시기하거나 부러워하고
내 남편이 의사면
판검사 남편을 둔 친구를 시기하거나 부러워하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뭐, 다들 이러고 살고 있지요.
수행이 뒤따르는 종교를 닦는 분들도
그 수행 조차 남과 비교하며 자신의 진도가 늦다며
한탄하며 수행을 고행으로 변질시키죠.
지나가는 개들이 보고 웃을 일이죠.
그런데도 우린 내일 또 다른 비교의 마음을 내기 위해
이 저녁 또 다른 잔머리 들을 굴리고 있죠.
그 잘난 비교라는 엉터리 자를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으며 말이죠.
죽음 앞에서는
인간이 만든 그 어떤 것도 초라해 짐을 깨달지 못한다면
우리는 사는 동안 행복해질 수 없죠.
그런데도 그 욕망의 전차는 멈추려 하지 않죠.
애초에 자신은 멈출 생각도 없으면서
남들이 멈춰 주기를 바라며 살아가죠.
심하면 그 남이 세상에 없어져 주기를 기도하며...
비교라는 선로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욕망이라는 전차를 버리지 못한다면
그 선로는 우리를 곧장 지옥행으로 이끌 거예요.
천천히 마음으로 걸어가는 세상
세상에 친절한 나를 만들며
행복에 마음 싣는 나날을 그려 보는 저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