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
사회 곳곳이 화합을 이야기한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국가에서, 인류에서
갈등에 지친 마음의 울림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화합의 진정한 실현은
가진 자의 양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힘을 가졌든, 돈을 가졌든, 권력을 가졌든
무엇을 가진 자들의 양보 없이는 변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끊임없이 화합을 강조하지만
힘 가진 자, 권력 가진 자, 재물 가진 자들은
양보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가지지 못한 자들의 굴종을 강압한다.
혁명이 일어난 대부분의 사회가
보여준 전형적인 패턴이 짙어지고 있다.
지금 이 사회는 병들었고 사람들은 지쳤다.
변혁이 가까이 다가왔다.
걱정이 되는 것은 혁명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따른다는 것이다.
그전에 가진 자들의 양심에
하늘의 한숨이 없는 자들의 절규가
울려지길 기원할 뿐이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혁명이나 전쟁과 같은
대 변혁의 시기는 대부분 극한 대립과 억압이 존재했다.
사회는 자정작용을 가진 생물이다.
무언가 병들고 썩어가면 스스로 도려낸다.
썩은 살이든, 생 살이든 도려낼 때는 극한 고통이 따른다.
그 고통에 예외인 것은 없다.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 심히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부의 편중, 권력의 세습, 주객이 전도된 지도층의 모습
일상을 지옥이라는 단어와 결부시켜
살아내어야만 하는 삶에 끌려가는 대부분의 사람들.
가히 지옥이라 할 만하다.
그럼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그 해법으로 누구나 이야기하는 것이 화합이다.
특히 가진 자들이 더 강조하고 떠들어댄다.
하지만 그들이 강조하는 화합은 "굴종"이나 "복종"이다.
여기저기 다른 목소리가 나오면 국민이 위임한 힘으로
국민을 억누르고 입을 틀어막아 버린다.
썩었다는 방증이다.
진정한 화합은 가진 자의 몫이 크다.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고
지불할 대가가 없다.
오직 가진 자라야 선택할 수 있고 대가를 지불할 능력이 있다.
그 몫을 자신의 배를 채우고
더러운 육신으로 맺어진 가족에게 세습하고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사교라는 이름으로 똘똘 뭉치는
그것은 화합이 아니다.
기부하라는 말도 아니다.
지금 당장 권력을 내려놓으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단지, 자신의 재력의 근원이 무엇이었는지 성찰해 보고
자신의 권력이 누구로부터 나오고 누구를 위해 써야 하는지
단지 그것만 알라는 것이다.
많이 배운 가진 자 일수록 무섭다.
마음이 방향을 알면 무서워진다.
그들의 마음 방향을 읽어 보면 소름이 돋는다.
더 늦기 전에 화합의 의미를 되새겨 보기를 권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