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마음이야기 #201.
내가 알고 있는 나와
세상이 알고 있는 나는 다르다.
나 만큼 나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불행히도 그건 착각이다.
나 만큼 나를 모르는 사람도 없다.
내가 알고 있는 나는
세상 눈에 휘둘려 사는 껍데기일 뿐이다.
거울이 없으면 얼굴에 묻은 작은 티끌 하나
단번에 찾아내지 못하는 게 사람이다.
그러면서 세상을 구겨 넣어도 모자란 마음을
하루에도 수만 번씩 변하는 마음을
잘 안다며 거짓을 말한다.
나를 움직이는 것은 세상의 기준이지
나의 기준이 아니다.
나는 나에게 배워 베풀라 하지
학위를 따라고 하지 않는다.
나는 나에게 부요하게 누리라 하지
돈 모아 지랄하라고 하지 않는다.
나는 나에게 충분히 잘났다고 하지
세상 깔보며 잘난 척하라고 않는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
내가 얻고자 하는 것!
내가 되고자 하는 모습!
이런 것들이 진정 내 안의 내가 원하는 것들인지
세상이 나에게 원한다고 착각하는 것들인지
구분할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
하나뿐인 내 인생 소중히 누리는 사람 있고
세상이 부러워할 나를 만들려
악으로 고통으로 살아내는 사람 있다.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부처와 예수와 공자는 말했다.
우리가 곧 부처고
천국이 마음속에 있으며
세상의 원형이 마음에 세겨져있다고.
아주 오래전 학벌도 미천한 이방인들이 한 말들은
가슴에 깊이 세기며 살면서
자신의 마음속에 선명히 앉아 울고 있는
나의 신은 알아보지 못하는 그게 우리의 모습이다.
하여 자신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드물다.
우리는 내 삶은 무언가 특별하고 소중하다고 생각하며 살죠.
사람은 자신이 세상에 존중받고 귀하여 여겨지길 원하죠.
사람은 그런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 가며 살죠.
우리가 그리는 그런 풍족하고 귀한 삶을 위해
배우고, 모으고, 아끼고, 가지려 하고, 이기려 하며
이를 악물고 살아가죠.
그래서 행복하다면 좋아요.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는 행복을 느끼지 못하죠.
그렇게 세상 기준에 맞추려는 삶을 살아가다 힘들면
지금 세상 기준으로 보면
학벌도 낮고, 출신도 비천하고, 고리타분한 말들만 내뱉던
옛 성인들의 말에서 우리는 위안을 찾죠.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까요?
예수도 그 당시 사람들에게 그의 민족에게 죽임을 당했죠.
부처도 비슷했고 공자의 생도 비루했지요.
그 사람들이 지금 이 세상에 태어나면
그때보다 더 비극적인 삶을 살다 죽임을 당할 거예요.
왜냐하면 그 시대 사람들보다 지금 사람들이 더 사악해졌거든요.
사람이 만들어 가는 세상.
그 방향이 어디로 향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죠.
그 달콤한 욕심의 방향을 누구나 지지하지만
그 방향에는 모두를 위한 자리는 없죠.
오직 소수만의 쾌락을 위한 방향임을 알면서도
우리는 나는 그 꼭대기에 서리라 신앙하며
고통스러운 노예의 길을 기꺼이 걸어가죠.
그냥 이 길이 좋다면 계속하세요.
하지만 그것 하나만 잊지 말았으면 해요.
"내 속에 있는 나"를 만나려 노력해 보는 일 말이에요.
기억에서도 사라진 아주 어릴 적 늘 함께 였던 나.
이 세상 오기 전 존재했던 그 원초의 나.
"그 나"와 만나려 하는 마음은 놓지 않기로 해요.
삶이 힘겹고 시간이 무거워질 때
밖으로 향했던 마음 돌려
외롭게 홀로 앉아 있는
내 안의 나를 만나도록 노력해 보아요.
내 안의 나는
내가 원하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그곳에 어떻게 갈 수 있는지
그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모든 것을 할 수 있어요.
그런 소중한 나를 만나려는
마음 하나는 버리지 않는 삶이시길 바라요.
밤하늘에 반짝이는 저 별처럼
당신 마음에 반짝이는 당신을 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