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는 글

#60.

by 마음밭농부

언제부터인가

나는 글을 종이에 쓰지 않는다.

종이는 건조해서

생각이 자라지 못한다.

종이는 찢기기 쉬워

생각이 온전해지지 못한다.

종이는 크기가 정해져 있어

생각이 종이에 갇힌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글을 마음에 쓴다.

마음에 적힌 글은

필요 없는 것은 사라지고

욕심의 글은 탈색되며

마음의 온도로 숙성되고

경계 없는 자유로움에 물들고

온전함의 품속에서 자라난다.


내 마음은

그렇게 내 글과 함께 자라난다.




예전엔 메모를 참 많이 했어요.

자그마한 메모집과 펜을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가지고 다녔죠.

한 순간 떠오르는 생각들을 잡아 두기 위해

잠잘 때도 식사할 때도 화장실에서도 메모지와 펜은 함께였죠.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저는 메모지와 펜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죠.

왜냐고요?

메모지와 펜에 집착하는 제 마음속에서는

온전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그 집착의 마음에서 떠오른 생각은

온전한 생각으로 자라지 못하기 때문이죠.


메모지의 글들은 자라지 못하죠.

시간이 지난 후 그 메모들을 보면

조금은 유치하거나 여물지 못한 어설픈 생각들이거나

욕심이 묻어 있는 좋지 못한 글들인 경우가 많았어요.


단편의 글들로는 마음을 표현하기가 어려웠어요.

어차피 글은 마음은 담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마음에 메모를 하기 시작했어요.

마음은 언제든 저와 함께여서

따로 챙길 메모지와 펜이 필요 없어요.

마음은 페이지가 나눠지지 않아서

글들이 조각나지 않고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죠.

마음은 장소를 가리지 않아서

글들이 다양한 경험을 하며 성숙해지죠.

마음은 때가 타지 않아

글들이 순수해져요.

마음은 경계가 없어

글들이 자유로이 노닐며 자라날 수 있죠.


그래서 저는 글을 마음에 써요.

그래서 저는 마음을 일구죠.

그래서 저는 마음을 쓸 수 있죠.


지금처럼...


마음밭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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