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결국 나를 용서해 내어야 한다.
아프게 나를 용서해 줘야 한다.
그렇게 나를 꼭 안아 줘야 한다.
용서의 대상은 결국 나다.
자신을 용서한 사람은
더 이상 원망도 한도 남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감옥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세상을 웃을 수 있다.
내가 숨 쉬려면
내가 살려면
나를 결국 용서해 내어야 한다.
살다 보면 억울하거나 한이 서릴 정도의
힘든 일을 겪곤 하죠.
그런 고통이 지나고 나면
마음속에 원망의 대상이 생기기 마련이죠.
그 대상은 죽지도 않고
내 마음 한가운데 자리 잡고서는
어느 시간, 어느 장소, 꿈에서 까지 나타나
나를 괴롭히는 무서운 괴물로 자라나죠.
어떤 사람은 종교에 의지하고
어떤 사람은 술에 의지하고
어떤 사람은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지요.
그럴 땐 곰곰이 되짚어 보는 거예요.
진정 용서해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
그 원망의 대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고 있죠.
오히려 더 잘 살아가는 듯 보이기도 하지요.
그럼 그 원망의 대상이 비참해지면 혹은 죽어버리면
내가 겪은 고통이 사라질까요?
전혀 그렇지가 않지요.
사실 내가 그토록 고통스러워하고 힘든 시간을 보냈던 건
나 스스로가 그랬던 거죠.
그 원망의 대상은 딱 한번 혹은 어느 정도의 시간에만
나에게 힘든 경험을 만나게 해 준 것뿐이죠.
그리곤 사라져 버리죠.
그 이후의 시간이 진정한 고통의 시간이 되어버리죠.
칡뿌리 보다 질긴 그 시간을 고통의 쓴 물을 내어가며
나 스스로 곱씹고 되뇌며 원망의 어둠 속에 나를 가두어 버리죠.
누구나 살다 보면 실수할 수 있어요.
누구나 한 번은 아주 못되게 남을 괴롭힐 수도 있어요.
사람은 누구나 그래요.
우린 단지 그 실수나 그 괴롭힘을 한번 경험했을 뿐이죠.
그 경험을 곱씹는 건 정작 자기 자신임을 모르고
원망의 대상에 모든 원망을 던져 버리죠.
그래서는 마음이 타버려요.
내 마음 다 타버리면 우린 살 수가 없어요.
그 시점이 나를 위로해 줄 시간이에요.
그 원망의 시간이 나를 감싸줘야 할 시간이에요.
그게 용서예요.
원망의 대상을 용서해 주는 게 아니에요.
진정한 용서는 나를 용서해 주는 거예요.
슬프도록 여렸던 그 마음을 알아주고 안아주는 그게 용서예요.
그 용서가 있어야 내가 자유로와 질 수 있죠.
그 용서가 있어야 내가 웃을 수 있죠.
그 용서가 있어야 내가 세상을 살 수 있답니다.
원망의 마음이 들 때는 나를 용서해 주세요.
내가 숨 쉴 수 있도록 그렇게 자유케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