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진 그날
누구도 감히 알지 못한다, 그날의 일들을. 우레 같은 땅울음이 울리고 땅이 일어섰을 것이다. 길이 갈라지고 일월성상日月星象 또한 이지러지니 혼비백산하여 새들은 날아올랐을 것이다. 머리채 잡힌 듯 나무들이 몸부림쳤을 것이다. 여기에서 저기로, 저기에서 여기로 갈지자를 그리며 들짐승들이 각자도생 하려 날뛰었을 것이다.
비틀거리다 무너지는 절집 사이로 비구와 비구니들이 흩어진 사정을 남산을 스치던 비와 바람만은 알고 있을 터, 솔숲 적시는 빗줄기와 대숲에서 쓰라리게 우는 바람소리에 기대어 다만 짐작할 뿐이다.
폐허가 된 절집들이 서서히 스러지고 인적도 기억도 시절 따라가 버리니 불국佛國 하나가 속절없이 사라졌다.
장장한 위용으로 사부대중의 우러름을 받던 마애입불磨崖入佛 또한 정면으로 넘어져 엎드려 버렸다.
열암곡에 낱낱으로 흩어진 돌덩이들은 빛나던 날들을 품고 있다. 한때는 이 몸이 불상이고 석등이고 주춧돌이었다고, 어떤 돌은 앉은 형상으로 옛일을 짐작케 하고, 어떤 돌은 지상을 나뒹굴며 과거를 증거 한다. 마애불상의 본색과 정체는 은폐되었다.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고 알아보지 못하는 너럭바위일 뿐이다. 등만 남은 존재로 살아가는 천년 동안 바람이 위로하듯 쓸어주었고 날짐승 들짐승의 무수한 세대가 몸을 뉘어 쉬어갔다. 나무들이 이따금씩 꽃잎과 낙엽을 흩뿌려주었다. 진면목을 알아봐 줄 누군가를 기다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비로소, 다시금 알아본 그 이는
이곳을 최초로 발견한, 아니 다시 알아본 이는 작은 몸집의 연구원이었다. 그녀는 열암곡의 세 번째 절터를 조사하기 위해 임시파견되었다. 한 달간의 파견기간 종료를 앞두고 절터 진입로를 찾는 중이었다. 마지막 임무를 위해 가파른 비탈길을 기다시피 오르던 그녀 앞을 거대한 암반 하나가 가로막았다. 그녀는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꼈다.
땅과 암반 사이 작은 틈에 손을 비집어 넣어보았다. 돌을 다듬은 자국이 만져졌다. 암반에 새겨진 부처님의 발과 옷자락이었다. 황급히 주변에 쌓인 흙더미와 나뭇가지를 들어냈더니 놀랍게도 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마애석불이 정체를 드러냈다.
취할 수 있는 가장 낮은 자세로 부복俯伏한 덕분이었으리라. 작고 여린 몸집 덕분이었으리라. 가늘고 연약한 팔이라서 좁은 틈을 비집어 부처님의 발을 만져 낼 수 있었다. '어디가 길이며 어디가 문이었는가', 알아내려는 청정한 염원이 있었다. 애타게 절터 바닥을 손으로 더듬은 노고가 있었다. 스물여섯 살 젊은이의 ‘낯설고 새로운 눈’ 또한 발견의 원천이 되었다. 그러한 덕목을 두루 지닌 그녀에게 기적이 우연처럼 찾아왔다.
'알아보는 자'의 눈에 의해 비탈진 암반 하나가 부처님으로 현현顯現하였다.
엎드린 부처님
엎드려 있었기에 이토록 생생하고 깨끗할 수 있었다. 천년 후에도 본디 모습 그대로인 것은 가려져 있었으므로 가능한 일이었다. 비바람으로부터, 세월의 마모로부터, 믿는 바가 다르다는 이유로 가차 없이 도끼를 휘둘렀던 자들로부터 감추어져 있었다. 이러한 신기한 방식으로 본래면목이 여여如如할 수 있었다. 묵묵하고 단단하고 믿음직한 등이 되어 천년의 세월을 버텨낸 덕분에 우리는 처음 그대로를 다시 만났다.
이제껏 나는 입불立佛과 좌불座佛과 와불臥佛만 알고 살았는데 열암곡에서 ‘엎드린 붓다’를 처음으로 만난다. 부복俯伏하신 부처님은 스스로 그늘이 되었다. 어둠을 자처하고 신음하는 땅에 귀 기울이신다. 엎드린다는 것이 회피나 굴욕만은 아니라는 것을 이곳에서 알게 되었다. 엎드려 숨죽여 땅의 숨소리를 듣는 부처님이 여기 계신다. 땅에 몸을 맡겨 땅의 진동으로 전해져 오는 세간의 기도와 울음을 들으신다. 잠든 듯 고요한 자세로 세상과 공명共鳴하는 부처님이 여기 계신다.
앉아서 삼매에 들고, 누워 열반에 들고, 세간 한가운데 서서 법을 설하시던 부처님이 열암곡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세상을 들여다보신다. 5센티 거리에서 중생과 마주 보며 호흡을 맞추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단 하나뿐인 ‘엎드린 부처님’이다.
또 하나의 불국佛國
수많은 불상과 불탑과 여러 개의 절터가 흔적으로 증언하는 천 년 전 남산은 빛나는 불국이었다. 그런데 열암곡에서 눈 비벼 다시 보니 이곳은 다시 불국이다. 아니, 그때나 지금이나 항상 불국이었다. 다른 듯 다르지 않은 또 하나의 불국에서는 솔숲에 내리는 비가 대숲을 뒤흔드는 바람이 법어法語이다. 스러진 절터, 천년을 땅에 나뒹굴다 비로소 제 몸을 다시 찾은 불두, 흩어진 돌멩이, 등만 보이며 천년을 버텨낸 부처님 모두가 금당金堂이다.
열암곡에 모여든 사부대중이 한 소리로 발원문을 외우고 있다. 서원의 본래면목이 무엇인가. 원을 세운다는 것은 어쩌면 이미 이루어진 것이 아니겠는가. 부처님을 다시 세우자는 염원이 울려 퍼질 때 불국 또한 다시금 현현하고 있음을 본다.
마애불상이 전해주는 이야기
열암곡 부처님을 오래 보다가 문득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마애불상이 전해주는 것은 돌 안에 깃든 불성의 이야기였다. 본디 돌은 부처님의 형상과 불성을 품고 있었다. 쪼아내고 깎아내는 석공의 노고는 돌의 마음과 협업하는 것이었다. 석공과 돌은 감추어진 진여眞如를 드러내기 위해 줄탁동시啐啄同時로 작업하여 마침내 부처님이 되었다.
언제나 있었으되 어둠과 적요 속에 잊혔던 부처님이, 알아보는 밝은 눈에 문득 깨어나 현현하신 이곳 열암곡에서, 마애불상을 바로 세우는 일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넘어진 것은 무엇이며 누가 일어서야 하는가
산중 비탈의 거대한 바위를 세우겠다는 염원이 울려 퍼진다. 불자들의 기도 속에서 이미 일어서고 계신 부처님을 본다. 모두의 돌 같은 껍질 안에 온전한 붓다의 형상이 숨어있다. 각자의 본디 마음자리를 발견하는 날이 바로 열암곡 마애불상이 바로 서는 날이 아닐까.
그때 엎드려 있던 부처님은 스스로 떨치고 일어나실 것이다. 혼자가 아니다. 함께 엎디었던 것들과 함께 일어나는 것이다. 사부대중과 세상과 부처님이 함께 꼿꼿하게 걸어 나갈 때 그 걸음 닿는 사방 모두가 빛나는 연꽃이 된다.
#2024,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모시기 문학공모전> 수상작을 수정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