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학교 앞에는 둘리 문방구가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나면 문구점에 들러 불량식품을 사 먹던 일이 일상이었다.
어느 날 나는 어김없이 불량식품을 사러 문방구에 들렀고, 문구점을 나오면서 주인아저씨 몰래 가방에 계산하지 않은 5색 사인펜을 넣어온 적이 있었다. 그때 나에게는 검은색 사인펜밖에 없어서 여러 가지 색깔을 쓰는 친구들이 부러운 마음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말았다.
하교 후 아빠가 운영했던 세탁소에 돌아온 나는 사인펜을 꺼내 노트에 색색으로 글씨를 썼다. 옆에서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거 처음 보는 사인펜이네?”
친구가 빌려준 거라고 대답했는지, 용돈을 모아서 샀다고 대답했는지는 그때 내가 한 대답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히 들킬 수밖에 없었던 거짓말이었다. 하루 용돈이 3백 원이던 시절 그 용돈으로 2천 원이나 하는 사인펜을 살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친구 역시 새로 산 사인펜을 자기가 써보지도 않고 나에게 빌려줄 리 없었을 테니 말이다.
아빠가 종종 우리에게 ‘아빠는 너희가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안다~ 아빠는 너희 머리 꼭대기 위에 있다‘고 말했었다. 어릴 땐 정말 그런 줄 알았다. 결국 나는 아빠의 유도신문에 넘어갔고, 사인펜을 몰래 가져왔다고 실토했다.
상황을 들은 아빠는 내 손을 잡고 문방구로 향했다. 문방구로 향하는 내내 나는 주인아저씨가 화를 내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불안했고, 사과를 건넬 용기도 나지 않았다. 그사이 문방구에 도착했다.
주인아저씨를 만난 아빠는 딸이 이걸 갖고 싶었는지, 실수로 이걸 가져와서 돌려드리러 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주인아저씨께 고개 숙여 사과하셨다. 아빠가 사과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용기를 내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주인아저씨가 크게 화내실 거라고 예상했던 것과 달리, 다신 그러지 말라는 충고와 함께 사과를 받아주셨다. 생각해 보니 그날 아빠는 나를 혼내는 대신, 잘못된 일을 했을 때 어떻게 사과해야 하는지 방법을 알려주신 거였다.
그날 이후 나는 남의 물건에 손을 댄 기억이 없다. 소리를 지르며 꾸짖는 대신, 다른 방법으로 잘못을 일깨워주고 사과할 용기를 준 그날의 아빠에게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