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질문)
내가 해본 아르바이트는?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바야흐로 2004년 중3 때 버즈를 보러 서울에 가기 위한 티켓, 차비를
벌기 위해 집마다 쌀가게 전단지를 테이프로 붙이는 알바를 했음.
그리고 고3 수시 붙고 GS25 알바도 했음.
이때 날마다 바나나우유를 줬던 사람도 있었고 끝날 때까지 기다리다가
집 앞까지 쫓아왔는데 마침 아빠가 내 연락받고 기다리고 있다가
아빠가 나타나니까 우사인 볼트 급으로 도망간 사람도 있었음
-젤 기억에 남는 건 편의점! 여러 가지 경험을 많이 했음!
-그리고 번외로 알바하고 임금 체불 당한 적도 있음.........
바로, 아빠 엄마 흰머리 뽑기!!!!!
회사 다니면서 시골서 배추 무 싣고 와서 차로 소매한 것도 알바라고 할까?
아빠 때는 알바라는 단어가 없었던 세대야. 소매할 때 사용하던 핸드마이크 들고.
운동회 때 선생님이 들고 자주 등장하는 마이크 알지?
알지ㅎㅎㅎ 아~ 창녕 슈퍼 했을 때?
녹음해서 스피커로 트는 거 말고 직접 하면서 다녔다는 거지??
그렇지 한 손은 운전하고, 한 손은 마이크 들고 방송해야지
ㅋㅋ 그래서 내가 뽑은 흰머리 정산은 어떻게 할 건지??
가끔 아빠는 술을 드시면 말씀하신다. 아빠가 20대 시절, 처음 입사한 회사에 계속 다녔으면 직급이 꽤 높이 올라갔을 텐데 하고 말이다. 당시에 나름 인정받는 팀장이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런데 서너 살 무렵 병치레가 많았던 나로 인해 아빠는 회사에서 잦은 조퇴를 했었단다. 조퇴가 잦은 만큼 병원비도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그 무렵엔 여동생도 태어났다. 회사 내 여러 가지 이유와 더불어 아빠는 자연스럽게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고, 지난 몇십 년간 다양한 일을 하며 우리를 키워냈다. 소개말에도 썼듯 아빠는 회사에 다니며, 슈퍼를 운영하면서 이른 새벽 채소배달을 하며, 세탁소를 운영하며, 가스 설비시공을 하며 삼 남매의 뒷바라지를 했다.
아빠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알게 된 건 세탁소를 열 무렵이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쯤 아빠는 슈퍼를 닫고 세탁소를 개업했다. 업종을 바꾼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다만 매일 과자가 한가득 쌓여있던 슈퍼를 더 이상 운영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나에게 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더 이상 슈퍼 집 딸이 아니라는 사실에 꽤 상심이 컸지만, 그것도 잠시 세탁소를 개업한 동네 사람들과 우리 가족은 금방 친해졌다. 동네 어른들은 나를 하얀 세탁소집 첫째 딸내미라고 불렀다.
어린 시절 학교가 파하면 집에 가는 대신 세탁소로 달려갔다. 그리고선 세탁소 한편에 마련돼 있는 조그마한 방에서 그 냄새를 맡으며 만화영화를 보고 숙제를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아빠의 세탁소에서는 늘 드라이클리닝 약품 냄새가 났고 미싱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중에서도 특히 아빠가 다림질하며 스팀을 분사할 때 나는 특유의 포근한 냄새를 좋아했다.
얼마 전 본가에 내려가 오랜만에 아빠가 다림질하는 모습을 봤다. 옛날과 같은 듯 다른 스팀 냄새를 맡으며 잠시 추억에 젖었었다. 이제 아빠는 더 이상 세탁소 사장님이 아니지만, 다림질할 때 포스만은 여전히 장인이었다. 문득 옛날에 다림질하는 아빠 옆에서 숙제하던 생각이 나 웃음이 났다. 나를 키워낸 그 익숙한 향기가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