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진단을 받으셨을 때 아버지는 빨리 마음을 수습하셨어요. 이렇게 기도한다고 하셨죠. ‘내게 일어날 힘을 주소서’ 그런데 시간을 갈수록 노회해 지자 아버지는 약한 마음이 드신다고 하셨어요. ‘왜 나를 보살펴 주지 않으시는 걸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하셨죠.
사람들은 우리를 욕할지도 몰라요. 아버지가 저 상태인데 왜 혼자 있게 하는 거냐고요. 저도 싫었어요. "우리 같이 살자", "남들이 뭐라고 하겠어?!" "남들이... ..." 남들이 뭐라고 하는 것이 대체 뭘까요? 우리의 사정을 남들에게 일일이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것 쉽지 않아요. 그리고 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 긴 이야기를 하며 이해받기를 원하지 않아요. 위험하지만 독립성을 확보하는 삶과 구속되지만 안전한 삶 중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누가 결정할 수 있는 걸까요? 저는 아버지에게 그 결정을 맡긴 것 같아요. 죄송하고 죄송했어요. 아버지가 선택한 그 방법으로 살기에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보자고 생각했죠.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이 최선이었나 하는 후회가 밀려와요. 전 '할 수 있는 만큼만' 한 것 같아요. 오늘도, 내일도 할 수 있는 딱 그만큼만 하고 나머지는 빈 공간은 아버지께 맡겼는지도 모르겠어요.
아버지께서 항암 부작용으로 인지력이 급격히 떨어진 그날 모르는 연락처로 여러 통의 전화를 받았어요. 요구르트 아줌마가 제게 연락을 한 거죠. 주인아저씨가 집 비밀번호를 잊으신 것 같다고. 어느 날엔 이발소 아저씨가 제게 전화를 주셨어요. 아버지가 지금 힘드신 것 같은데 도움이 필요한 것 같다고. 어느 날 아버지가 집에 전화를 받지 않으실 때, 저는 경비실에 전화를 해요. 현관문이라도 두들겨 달라고요. 그리고 앞집 아주머니와 아래층에서는 해마다 김장김치를 나눠주셔요. 처음에는 그런 것들이 싫었어요. 반찬은 내가 늘 해드리는데, 김장 김치도 내 손으로 만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서라도 드릴 수 있는데 말이죠. 남들이 아버지 식탁에 올라가는 반찬을 신경 쓰는 것이 정말 싫었어요. 끼니를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는 것이 정말 싫고 도리가 아닌 것 같았죠.
그런데 다른 사람의 도움의 손길을 반기는 아버지의 얼굴을 볼 때마다 자식에게는 저리 꼿꼿하신 분이 다른 사람의 선의는 흔쾌히 받으시는 것을 보고 참 놀라웠어요. 그리고 그것이 편하시고 좋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죠. 왜 나의 도움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할까 하며 자책하기도 하였고 죄책감을 가지기도 하였지만 부모 자식 간에는 기대라는 것이 섞여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어려운 관계라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당신이 믿는 신께서는 때로는 이발소 아저씨의 모습으로, 때로는 요구르트 아줌마의 모습으로, 때로는 119 구급 대원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나 봐요. 당신이 믿는 신이 다정한 이웃의 얼굴로 나타나 함께해 주셨나 봐요.